[김윤세의 산정무한] 무거운 쌀자루 머리에 인 어머니가 오르던 길

김윤세 2023. 8.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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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재에서 함양읍 방향의 전경.

올해 들어 지난 7월 말까지 모두 49차례 산에 올랐다. 이상 기후에 따른 폭우와 태풍, 불볕더위로 지구촌이 어느 해보다 들끓고 있어서 모든 인류가 무척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조그만 산그늘조차 드리우지 않고 지평선만 보이는 허허벌판 땡볕의 새만금 야영장에서 전 세계 4만 3,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참가한 잼버리 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들었다. 연일 38℃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10여 일 연속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 다행히 새만금에서 철수해서 분산개최로 방향을 트는 모양이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가 그 어느 해보다도 늘어난 올여름 삼복더위 중 중복中伏의 끝자락이요, 계묘년 가을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입추立秋 이틀 전인 지난 8월 6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건 말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산으로 향하는 마음따라 무더위를 무릅쓰고 올해 50번째 산행길에 올랐다.

삼복 무더위 속 50번째 산행

오전에 이런저런 일을 마치고 차로 삼봉산 오도재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50분경. 오도재에 세워진 '지리산 제일 문'과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함양읍 전경 등의 풍광을 사진에 담은 뒤 아내와 함께 12시에 오도재를 출발해 서쪽으로 난 임도를 걷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산맥의 흐름이 덕유산을 거쳐 영취산·백운산·월경산을 지나 봉화산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곁가지 하나가 왼쪽의 서남쪽으로 뻗어나갔는데 그 산맥을 '연비燕飛지맥'이라 부른다.

연비지맥은 옥잠봉(705.5m)-안산-연비산(843.1m)-오봉산(878.5m)을 거쳐 삼봉산(1186.7m)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오도재(773m)를 지나 법화산(992.9m)으로 다시금 솟았다가 또다시 몸을 낮춰 화장산(585.3m)에 다다르고 마침내 남강에 이르러 흐름을 마무리한다.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오도재를 경계로 하여 남쪽은 변강쇠 '가루지기타령'의 무대로 유명한 등구마을로 현재 행정지명은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이고, 북쪽은 휴천면 월평리 살구쟁이 부락이다.

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용화사 터 마애불 아래 농막에서 태어난 내가 어머니 등에 업혀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살구쟁이 마을로 들어온 것은 두 살 때인 1956년 초가을 무렵이었다.

함양읍에서 30리 거리요, 마천면 소재지에서도 30리 거리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인지라 3,000여 평의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동네로서 그 당시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궁핍한 삶의 터전이었다.

아버지 인산 김일훈金一勳(1909~1992)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정중히 사양한 다음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을 깊은 산중 마을로 거처를 옮겨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삼봉산 임도에서 오봉산을 바라보는 아내 우성숙.

가실 때는 함지박, 오실 때는 쌀자루

깊은 산속에서 큰 나무를 베어 함지박을 만들고 어머니는 그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함양 장으로 가서 팔거나 오도재를 넘어 마천장 장으로 가서 판 뒤 쌀과 생필품을 사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다섯 살 난 형과 두 살의 나, 네 식구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 이후 3년 뒤 동생 윤수가 태어나고 온 가족이 제대로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운 궁핍한 삶을 이어갔다. 이듬해인 1960년 여름, 세 아들을 남겨둔 채 어머니 장영옥은 한 많은 삶을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났다.

장에 갈 때는 무거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오도재를 넘었고, 되돌아올 때는 다시 더 무거운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오도재를 넘어 살구쟁이 보금자리로 돌아오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떠올리며 지금은 고속도로처럼 잘 닦인 오도재 임도를 출발한다. 번뇌를 잔뜩 담은 배낭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오도재에서 출발한 이후 약간의 오르막 경사로를 걸으니 20분쯤 뒤에 약초 재배단지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흐르는 계곡물로 얼굴을 씻은 뒤 무더운 바람이 이따금 몰아치는 평균 해발고도 700여 m의 임도를 걷는다.

산길 임도를 걷노라니 무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간간이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그때마다 숨을 돌리곤 하면서 4.4km 지점 독종골에 다다르니 시원한 계곡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계곡으로 내려가 맑고 시원한 계곡물에 머리를 적시고 웃옷을 벗은 뒤 등목을 한 다음 갖고 간 '탁여현' 농주를 한 잔 들이켜니 그 즉시 산행의 고단함을 잊을 뿐 아니라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신선놀음' 그 자체다.

1시간 남짓 삼봉산 독종골 너른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산행의 발걸음을 옮겨 서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땡볕이 내리쬐는 길, 높은 산 그늘이 드리운 길을 번갈아 걷고 또 걷는다.

하운다기봉… 한산 스님이 읊은 그 풍경

무더위 속 산길을 걸어서 5시간 40여 분 만에 '인산 죽염 특화농공단지'에 인접한 금강송 숲에 다다른다. 오도재로부터 9.9km 거리이고 해발고도 771~506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은 '막바지 무더위 속 산행'을 마무리했다.

이날 산행은, 어느 시인이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이라고 읊은 시가 말해 주듯 가는 곳마다 하얀 뭉게구름으로 기이한 봉우리를 만들어 보여 주는 특별한 산행이었다.

한산에는 오로지 흰 구름뿐이라

세상 티끌 벗어나 늘 고요하네

산속 초가에 있는 건 풀밭 자리

밝은 달은 외로운 등불이라

푸른 연못가에는 돌 평상 자리하고

호랑이·사슴 찾아와 벗이 되네

조용히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늘 '세상 밖의 사람'으로 사나니

寒山唯白雲 寂寂絶埃塵 草座山家有 孤燈明月輪

石牀臨碧沼 虎鹿每爲隣 自羨幽居樂 長爲象外人

이날의 풍광은 1,000년 전, 세속의 티끌이 미치지 못할 깊은 산속 초가에 홀로 기거하며 유유자적했던 당나라의 전설적인 인물 한산寒山 스님이 읊은 시에 그려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라 하겠다.

삼봉산과 법화산 사이의 오도재에서 필자.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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