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에 선을 긋지 마라?..."퍼팅은 '감'이다"
성문규 기자 2023. 8. 25. 17:17
#1.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47살 노장 어니 엘스는 60cm도 안 되는 파 퍼트를 남겨놓고 있었다. 악몽의 시작은 이 때부터였다.
어드레스 후 신중하게 친 공이 홀 왼쪽으로 벗어나더니 툭 친 두 번째 공마저 홀을 외면했다. 세 번째 네 번째 퍼트도 실패. 무심하게 쳤던 10cm도 안 되는 다섯 번째 퍼트도 홀컵을 타고 흘렀다. 이 홀에서만 6번의 퍼트를 한 엘스는 1라운드를 8오버파 80타로 마쳤고, 2라운드를 끝낸 뒤 결국 컷탈락을 하고 말았다.
벌써 7년도 더 된 얘기군요. 2016년 4월 7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0회 마스터스 대회 1라운드 1번 홀(파4)에서 벌어진 '재앙'이었습니다.
#2.
2023년 8월 13일,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인 세인트주드 챔피언십 연장전. 루카스 글로버는 빗자루처럼 생긴 자신의 브룸스틱 퍼터로 그린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7m 버디퍼트는 공을 홀 옆에 세웠고, 무난히 파에 성공. 세계랭킹 4위 패트릭 캔틀레이를 따돌리며 PGA 투어 2주 연속 우승을 완성시켰다.
8월 초까지만 해도 페덱스컵 포인트 랭킹 112위였던 루카스 글로버는 한 주 전 정규시즌 마지막 대회 윈덤 챔피언십 우승으로 순위를 49위까지 끌어올렸고, 이날 세인트주드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하며 단숨에 4위까지 뛰어오르게 됩니다.
PGA 투어 역대급 퍼트 실수 영상에 단골로 등장했던 글로버가 올해 자신의 23년 골프 인생에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건 '빗자루 퍼터'로 바꾸면서 시작됐습니다. 처음 이 퍼터를 사용했던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공동 4위, 존 디어 클래식에서 공동 6위, 바바솔 챔피언십에선 단독 5위를 차지했죠. 그리고 마침내 최고령 역대 3위로 2개 대회 연속 PGA 우승이라는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8홀 플레이에서 퍼팅은 결정적인 순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린 위에서 정성스럽게 공을 닦고, 공에 그려진 선을 이용해 자로 재듯 '에이밍'을 합니다. 오른 쪽으로 한 컵, 왼쪽으로 공 하나, 혹은 홀 안 쪽... 한 쪽 눈을 감고 정말 손을 덜덜 떨며 미세 조정을 하곤 하죠. 하지만 정작 퍼팅은 밀리거나 당겨지며 "오늘 참 이상하네"를 남발합니다.
자, 그럼 이런 방법을 써 보는 건 어떨까요?
공에 그려진 선을 무시하는 겁니다. 집중을 해서 선을 따라 쳐도 모자랄 판에 선을 무시하라니... 말도 안 돼! 2018년 존 디어 클래식에서 우승을 한 재미교포 마이클 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주말 골퍼들은 그린을 제대로 읽고 퍼팅을 똑바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점을 에이밍하지만 정작 어드레스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죠. 공 위의 그어 놓은 '선'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린을 읽거나 퍼팅을 똑바로 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대신 자신의 머리(brain)와 몸(body)이 이끄는 곳으로 방향을 잡는 겁니다. 퍼팅을 하기 위해 스트로크를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는 거죠."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 중)
마이클 김은 여기에 한 마디 덧붙입니다.
"내가 공 뒤에서 한 컵 정도의 브레이크를 읽었는데, 볼 위에서 다시 바라보면 브레이크가 두 컵으로 보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앞으로 계속 볼 위에서 보는 겁니다. 왜냐면 볼 위에서 보는 시점이 내가 퍼팅을 할 때 시점이니까요."
라인이 없으면 그것에 꼭 맞춰야겠다는 부담이 줄어들고, 그걸 맞추려고 할 때 생기는 어색한 움직임도 훨씬 덜 하기 마련입니다. 마이클 김은 어차피 라인대로 100 퍼센트 맞춰 굴리지 못할 바에야 한마디로 자신의 본능에 맡겨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능을 따르자는 말이 아무렇게나 스트로크를 하자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자신의 머리와 몸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려면 이 역시 많은 연습이 필요할테니까요.
너무 완벽하고 철저한 계획은 삶을 경직시킨다고 하죠. 때로는 마음도 체합니다. 릴렉스~ 릴렉스~ 가끔은 내 몸이 가는 데로 본능에 맡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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