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대혁신 이번엔 '눈'에서 시작
스마트안경 통해 현실 확장
측정한 뇌파로 기분을 분석
보고싶은 도시풍경에 초점
보는 법이 달라지면서
인간의 생각하는 법도 변할것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10년을 주기로 등장한다. 1990년대 인터넷, 2000년대 모바일이 세상을 바꿨다. 2007년 아이폰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목격했다. 다음은 뭘까. 바로 지금 애플, 구글, 삼성은 모두 인간의 눈에 주목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과학자이자 연쇄 창업가인 데이비드 로즈는 공간 컴퓨팅의 선구자로 불린다. 와비파커에서 가상으로 안경을 착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버추얼 트라이온을 개발하기도 했다. 로즈가 쓴 이 책은 인간의 눈을 확장하는 슈퍼사이트(Super sight)를 갖기 위한 노력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슈퍼사이트는 인공지능(AI), 공간 컴퓨팅, 컴퓨터 비전이 결합한 새로운 시각적 현실을 말한다. 나아가 보고 생각하는 법을 바꿀 시각 혁명을 뜻하기도 한다.
슈퍼사이트가 바꿀 미래는 삶, 교육, 놀이, 비즈니스까지 아우른다. 차근차근 미래를 만나보자.
12월 아침, 스마트안경을 쓰고 뉴욕을 걷는다. 초고화질로 구현되는 홀로그램 디지털 이미지는 가짜가 현실에 '달라붙는다'. 내가 보는 풍경은 나만을 위해 제작된 것. 옆의 행인에겐 또 다른 시야가 펼쳐진다. 시선이 아파트를 향하면 부동산 광고가 붙고, 식당을 향하면 평점이 높은 식당이 추천된다. 중요한 건 이 증강현실(AR)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우리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거나 오로지 긍정적 측면만 부각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사라진, 가장 멋진 뉴욕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화장을 바꾸듯, 도시의 표정도 바뀐다. 관자놀이에서 측정한 뇌파로 기분을 분석해 하늘이 밝아지고, 여름의 햇살이 더해진다.
슈퍼사이트에 주목하는 것은 사람의 눈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1억2000만개가 넘는 광수용체 세포는 1000만가지가 넘는 색을 구현하며 인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근육으로 구성돼 있다. 경이로운 능력에도 눈은 수천 년간 진화하지 않았다. 슈퍼사이트는 현실에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쌓아올려 눈의 진화를 이끈다. 거리 측정 카메라와 헤드셋 홀로렌즈 등의 개발로 가능해진 시야의 확장은 AR, 혼합현실(MR), 가상현실(VR) 등을 구체화했고, 올해 들어 애플이 '비전프로'를 발표하면서 공간 컴퓨팅으로 귀결됐다.
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엄청나다. 금융분석가들은 2028년 3000억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빅테크만 뛰어든 건 아니다. 엑스리얼 같은 스타트업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가벼운 AR 안경을 500달러에 내놨다. AI와 웨어러블, 5G 통신, 초개인화, 감성 컴퓨팅 등 지난 30여 년간 발전돼온 거의 모든 기술이 집약될 슈퍼사이트 기기의 미래를 두고 저자는 초기에 애플 워치가 걸었던 길을 따를 거라고 예상한다. 비싸고 소비자가 알아서 사용해야 하며 충전해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서다. 하지만 애플워치도 패션 아이템이나 브랜드를 상징하는 유행 상품이 된 뒤 영역이 급속히 확장됐다.
슈퍼사이트의 가장 큰 잠재력은 우리가 온종일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일종의 '보철물'이 될 수 있다는 점. 사용자와 기기가 일심동체가 돼 우리 몸의 능력을 진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정보를 불러오고 시각화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박쥐처럼 어둠이나 안개를 꿰뚫어 보고, 눈에 엑스레이라도 달린 듯 기계, 건물, 물속을 투시할 수 있게 된다. 슈퍼사이트는 초능력과 흡사하다.
주방을 둘러싼 정보기술(IT) 전쟁도 펼쳐진다. 밀키트의 단점은 쓰레기다. 슈퍼사이트는 식품회사 대신 냉장고를 들여다보고 필요한 재료만 계산해 맞춤형 레시피 키트를 배달한다. 유통기한을 잊고 음식을 버릴 일이 줄어들며, 재고가 떨어지면 주문도 알아서 이뤄진다. 요리와 식사가 간편해지면 즐거운 식사의 가능성은 커진다.
의료, 공공보건, 소방 등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도 궁극적인 진화가 이뤄진다. 슈퍼사이트는 비대면 진료의 효율을 높여주고 진단 도구의 접근성을 높여준다.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적 등급을 나누는 게 아니라, 공공장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알림을 보낼 수 있다. 구글의 딥마인드는 이미 신경 네트워크 훈련을 통해 시력검사를 하는 동안 망막을 스캔해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50개 이상의 질병을 진단한다. AI를 통한 주행보조 기능이 테슬라 등 자동차 스크린에 적용되면 사고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춰주는 비서 역할도 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술의 가능성을 엿본다. 비정부기구(NGO)를 위해 난민의 이동 상황을 알려줘 어떻게 구호 작업에 나서는 게 효과적일지 돕는 오비탈인사이트, 전쟁범죄 현장을 찾아내는 포렌식아키텍처 등 여러 기업이 소개된다. 슈퍼사이트는 화학무기 사용, 무법적 살인, 환경오염 등의 실태를 조사하는 탁월한 기술도 갖췄다. NGO 와일드미는 야생동물의 개체 추적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관광객이 찍은 사진 데이터가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눈이 돼 지구 생태계 보전을 위한 역할까지 수행하는 셈이다.
저자는 "보는 법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법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주는 기기를 통해 인간은 한 단계 높이 진화할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이 미래학자의 진단에 따르면 슈퍼맨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망토가 아니다. 넓고 멀리 보는 눈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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