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성장성에 초점 맞췄더니 …"애플보다 엔비디아"
투자 순위가 달라졌다
PER을 성장성으로 나눈 'PEG'
급성장 AI기술株 가치 설명해줘
엔비디아 구글·애플보다 저평가
메타는 '1.88배'로 여전히 양호
국내선 네이버가 가장 유망
삼성전자·SK하이닉스 '보유할 만'
증시에서 최근 회자되는 것이 '기술주의 역설'이다. 분명히 굴뚝주보다 상대적으로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사람들은 이 주식에 더 몰린다. 미래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디아다. 이 회사 주가는 올해 들어 3배나 올랐지만 여전히 '배고프다'고 외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강력한 '성장 엔진'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으면서 고평가 논란을 헤쳐나간다.
엔비디아의 주장은 근거가 있는 걸까. 찬찬히 살펴봤다. 먼저 고전적 주가 판단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12개월 선행 기준)로 보면 엔비디아는 57.72배. 애플(29배)의 2배다. PER이 높다는 것은 주가가 이미 많이 올라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달 들어 21일까지 서학개미들의 엔비디아 주식 매도 금액은 3억5853만달러(약 480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개별 주식 기준 테슬라(약 1조원 매도)에 이어 2위다. 이미 충분히 올랐으니 엔비디아나 테슬라 같은 고성장 주식의 주가가 곧 꺾일까봐 투자자들이 겁을 먹고 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의 주가 성장 여력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엄청난 AI '마력'을 발휘하는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카드)를 고려하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온다. AI 첨단 기술주의 미래 주가를 전망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지표가 주가수익성장비율(PEG)이다. 이 비율은 PER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로 나눈 값이다. 현재 주가의 저평가 여부보다 향후 성장성을 감안했을 때 이 주식이 얼마나 저평가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값이다. PEG는 고성장 엔진(이익 성장)을 갖춘 기업은 빠른 속력(가파른 주가 상승)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지표로 따지면 엔비디아가 여전히 애플보다 저평가 상태라는 역설이 나온다.
고평가 엔비디아 PEG는 애플보다 낮아
매일경제신문은 22일 블룸버그 상장사 예상 수치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과 미국의 10대 AI 관련주 PEG를 분석했다. 한국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카카오 등 4곳이 포함됐다. 미국에선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엔비디아·메타 등 6곳이다. 각국 시가총액 순서로 AI 사업 관련도가 높은 기업들이다. PEG는 월가의 전설적 펀드매니저였던 피터 린치가 주로 성장주를 발굴하는 데 썼던 방법이다. 기업의 성장성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는지를 판단한다. 린치는 0.5 이하를 '매수 추천', 1.5 이상은 '매도 고려'로 제시했다. 통상 12개월 선행 PER을 향후 5개년 EPS 성장률로 나눠서 계산한다. 여기서 EPS 성장률은 매년 단순 산술평균이 아닌 연평균 복합 성장률(CARG)을 적용한다. CARG는 산술평균보다 성장률의 전반적 특성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술평균보다 낮게 나와 PEG가 과소평가되는 것을 막는다.
최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화제의 엔비디아를 먼저 살펴보자. 이 AI 대장주의 이번 분기 주당 순익은 2.48달러로, 1년 전보다 무려 854% 급증했다. 분기 순이익률은 45.8%에 달한다. 순이익률은 이익 성장의 '기울기'다. 비교 대상 10곳 중 1위다. 엔비디아 주가는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3배 이상 올랐다. 이미 고지대에 올라왔지만 이익 성장 '기울기'가 높으니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내년 연간 예상 EPS가 8.14달러로 올라선다. 5년 후엔 19.58달러로 추정된다. EPS 성장률은 19.19%가 나온다. 변함없는 자사주 매입·소각은 이 같은 성장률에 힘을 싣는다.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상장사는 설비나 연구개발 투자 후에 남는 돈을 자신의 주식을 사서 없애버리는 데 쓴다. 이는 배당과 함께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높이는 행위다. 국내 상장사는 이런 소각이 거의 없어 순익 증가율과 EPS 증가율이 대부분 일치한다. 실적 발표와 함께 엔비디아는 250억달러(약 33조3750억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도 내놨다. 엔비디아 PER(57.72)을 EPS 성장률(19.19)로 나누니 3.01배가 나온다. 이익 성장에 비해 주가 상승 속도가 3배나 빠른 셈이다. 피터 린치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비싼 가격이다. 다만 빅테크끼리 비교하면 얘기가 다르다. 같은 식으로 애플을 계산해보니 PEG가 3.71배에 달했다. 애플을 살 바에야 엔비디아를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애플이 더 높게 나온 것은 주당 이익이 연평균 7.82%씩 성장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엔비디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AI 관련주 유일한 저평가 기대주 네이버?
이처럼 PEG는 주가에 따른 고평가 정도를 이익 성장률로 할인해주기 때문에 초고속 성장주에 유리한 지표다.
최악의 상황에서 반등하는 주식에도 유리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일하게 '보유할 만한 주식'(PEG 1.5 미만)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PEG 지표도 약점이 있다. 작은 이익이 순식간에 급성장하는 스타트업과 같은 소규모 성장기업을 저평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꾸준히 이익을 내긴 하지만 유동자금이 없어서 갑자기 도산하는 '흑자도산' 기업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PEG와 함께 봐야 하는 지표는 잉여현금흐름(FCF)이다. 기업이 사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 설비투자 등을 빼고 남은 잔여 현금흐름을 말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말 기준 FCF가 각각 -8조원, -6000억원이다. 막대한 설비투자에도 메모리반도체 호황이 돌아오지 않으면 흑자도산 리스크가 높아진다. 분석 대상 10곳 중 FCF가 플러스(+)이면서 PER이 가장 낮은 곳은 네이버(1.86배)다.
네이버 주가는 올해 들어 22일까지 22% 올랐고, 카카오는 8% 떨어졌으니 카카오가 저평가된 것처럼 보인다. PEG는 카카오(1.92배)가 네이버보다 비싼 주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카오보다 빠른 AI 행보가 주가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지난 24일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며 글로벌 AI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네이버의 검색 능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광고, 콘텐츠 소비, 커머스(전자상거래) 등을 통합하는 데 AI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국내 경쟁사인 카카오보다 AI 서비스 출시도 빠르다. 카카오는 내년이 돼야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AI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5개년 연평균 EPS 증가율은 18.6%다. 아마존은 18.7%다.
순이익률 32% 메타 더 날아오른다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메타는 한동안 고전했지만 올해 들어 주가가 130% 오르면서 화려하게 부활 중이다. 맞춤형 광고의 최강자인 메타는 여전히 저평가 영역에 있다. PEG는 1.88배로, 미국 주요 빅테크 중 유일하게 2배 이하다.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PER이 21.56배로 미국 빅테크 6곳 중에서 가장 낮은 것도 저평가를 유지하는 이유다. 많은 R&D 비용이 필요한 엔비디아와 달리 비용 부담이 작아 순이익률(6월 말 기준)이 31.5%에 달한다. 구글(25.3%)보다 한 수 위다. 뭐니 뭐니 해도 메타의 순이익률 증가는 최근 1년 새 2만명이 넘게 직원을 해고하며 비용을 줄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직원의 고통이 주주의 행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PEG(주가수익성장비율)
주가수익비율(PER)을 주당순이익(EPS) 성장률로 나눈 지표다. EPS 성장률은 보통 향후 5개년 예상치를 적용한다. PER은 빠르게 이익이 성장하는 기업을 무조건 고평가로 분류할 수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다. 보통 1.5배 이상이면 고평가됐다고 보는데 초고속 성장주 엔비디아의 출현으로 이런 기준도 상향 조정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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