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갈수록 수산업 힘들어지는데”…40년 수산물 가게 사장의 한숨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 오후 7시. 서울 관악구의 한 전통시장은 한산했다. ‘자반(국산) 1손 5000’ ‘목포 갈치 1바구니 5000’ 등이 손글씨로 적혀 있는 수산물 가게 모퉁이에서 사장 정인천씨(가명·64)는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원래였다면 꽃게가 있어야 할 가판대는 텅 비어 있었다.
“인천에서 꽃게를 가지고 오려다가, 내일 오염수를 방류한다기에 두려워서 못 가지고 왔어.” 정씨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집에서 새벽 3시반쯤 나서 서울 노량진이나 인천 등에서 그날그날 생물을 떼 오는 일은 40년 가까이 수산물 가게를 꾸려 온 정씨의 일과였다.
하지만 정씨는 이날 인천에 가려다 말았고 이 때문에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부인 김영희씨(가명·61)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마누라가 그러더라고. ‘어찌 꽃게를 안 사가지고 왔소. 방류는 내일 한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사다가 냉장고에도 넣어놓고 판다고도 하던데.’” 정씨는 그저 “비도 오고 영 마음이 안 끌려서 몇 번 생각하다가 그냥 왔다”고 대꾸했다.
오염수 방류가 정확히 언제 시작될지를 모르던 때부터도 소금값이 급등했다느니 하는 연관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매출은 반토막씩 났다고 했다. 정씨는 “작년에 비해 손님도 매출도 많이 떨어졌다”며 “수산물 파는 사람은 어느 집 하나 물어볼 것 없이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소비심리는 이미 얼어붙어 있어 ‘이보다 더 손님이 떨어질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정씨는 상황이 더 안 좋아져도 버틸 각오를 다 마친 상태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안 사가서 다 버릴 바엔 오늘처럼 떼오는 생물 양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동안 힘들겠다고 하는 정씨의 말투엔 체념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정씨의 깊은 한숨과 무관하게 일본은 예고한 대로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25일 가게를 다시 찾았다.
오염수 방류 당일 김씨가 손님들로부터 가장 많은 들은 말은 “지금 이거 먹어도 괜찮냐”는 말이었다고 했다. “아직 우리 바다에 오지도 않았다”고 말해봤지만 “오늘만 사 가고 앞으로는 안 먹어야겠다”는 손님들의 말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못 먹을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위기 심리 때문인지 오히려 방류 당일이 요 근래 중 장사가 가장 잘 된 날이었다고 했다.
수산물 상인들에게 무덥고 습한 여름은 원래 비수기다. 가뜩이나 비수기에 전해진 오염수 방류 소식은 이들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김씨는 “시장 임대료도 보험료도 내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곧 철이 다가오는 꽃게·새우·전어 상인들도 걱정이 크더라”고 했다. 이날 매대에는 이틀 전과는 달리 꽃게가 있었다. 김씨는 “오염수는 오염수고, 일단 꽃게를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들여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 버리게 되는 게 아닌지”라며 걱정했다.
이들 부부는 가게 상황이 이미 한 해가 다르게 힘들어지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그는 불경기라거나, 손님들을 대형마트나 새벽배송에 빼앗겼다는 이유보다도 “바닷물 온도가 올라서 물고기 어종이 많이 없어졌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김씨는 “오징어도 수확량이 반토막 났고, 우리 바다에서 안 잡히기 시작한 종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수십년간 바다의 산물을 가져와 파는 일을 한 부부는 ‘바다가 점점 이상해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김씨는 새벽 경매를 나갔을 때 기형인 물고기를 보는 일도 늘었다고 했다. 그는 “아가미를 보면 모양이 딱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나, 꼬리가 확 줄어들었거나 배만 불룩한 물고기가 가끔 있다”고 했다. 이어 “나와 부인은 장사 할 날이 얼마나 남았겠냐만은, 누가 새로 수산업이나 장사한다고 하면 반대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 바다에 오염수를 30년씩이나 방류한다니, 이들 부부에게는 걱정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한두 해도 아니고 30년을 붓는다는데, 이걸 정부고 국회의원이고 막는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혹시나 찾아올 손님을 기다렸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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