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맨체스터에서 흰 나방이 모두 사라진 이유는?"
스티브 존스 (1944~)
"호숫가에 사는 곰이 고래 같은 동물로 진화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곰이 필요에 의해 고래가 되려면 엄청나게 많은 세월이 걸린다. 그렇다. 진화(Evolution)는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 동안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다.
하지만 런던대학 유전학 교수인 스티브 존스가 쓴 '진화하는 진화론'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존스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진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고 말한다.
19세기 말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흰 나방이 사라지고 검은색 나방만이 남았다.
왜일까. 수많은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인해 나뭇가지와 벽이 검게 그을렸고, 눈에 잘 띄게 된 흰 나방이 집중적으로 새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살아남은 검은 나방만이 종족을 번식했고, 결국 흰 나방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급속한 진화의 사례는 더 많다. 가장 우수한 황소로 뽑혔던 네덜란드 황소 서니 보이는 살아 있는 동안 전 세계 200만마리의 암소들에게 정자를 제공하고 죽었다. 서니 보이가 수백만 마리의 후손을 만드는 동안 다른 대부분의 황소들은 유전자를 전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선진국 농장에는 결국 서니 보이를 비롯한 몇몇 황소의 후손만이 남게 된다. 불과 몇십 년 만에 다양한 황소의 유전적 특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선택되지 못한 종이 도태되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과학과 교통 통신의 발달, 인간의 욕망과 기호 변화, 날씨 변화 등에 따라 현대사회에서의 변화는 점점 빠르고 명백하게 일어난다. 지정학적 변화 역시 진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 홍해와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는 서로 많이 달랐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양쪽 바다의 고기들은 뒤섞여 진화하기 시작했다. 수십만 년 동안 진행됐을 진화가 훨씬 앞당겨진 것이다.
이 같은 빠른 자연선택 과정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금 북미의 대농장에서 경작하는 옥수수는 거의 같은 종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엄청나게 많은 종의 옥수수가 생산량과 맛을 확대시키려는 인간들에 의해 교배되면서 점점 동일 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종 다양성이 소멸되면 단 한 번의 병충해로도 옥수수가 전멸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물론 그러면 또 다른 진화가 진행될 것이다. 옥수수를 먹지 못한 인간과 동물이 도태되고 다른 종이 번성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사실 진화는 거역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상 그 어떤 지식인도 진화를 부정하지 못한다. 진화는 과학 이상이다. 진화는 그 자체로 지구라는 행성의 역사이고, 운명이며, 묵시록이기 때문이다.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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