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키우고 성 비위로 몰락…스페인축구협회장의 아이러니

이의진 2023. 8. 2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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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자월드컵 우승의 '숨은 공신'…선수 처우 개선하고 투자 키워
언론·스페인 정치권·축구계 거센 비판 속 사퇴 전망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이 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3.3.2 pual07@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사퇴가 임박한 스페인축구협회의 루이스 루비알레스 회장의 커리어는 정점을 찍자마자 바닥을 쳤다.

스페인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지켜본 그의 위상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성 비위'로 땅에 떨어졌다.

AFP통신, ESPN 등 주요 외신들은 25일 루비알레스 회장이 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봤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2023 여자 월드컵 우승 직후 시상식에서 자국 대표팀의 헤니페르 에르모소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에르모소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직접 밝힌 직후 뉴욕타임스, 엘파이스 등 세계적으로 힘 있는 매체들이 '동의 없는' 성폭력의 일환이라 비판하며 불을 붙였다.

이후 스페인 총리, 장관 등 정치권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질타가 이어졌고, 스페인 여자축구리그·선수협회는 퇴진까지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 단체도 가세한 가운데 국제축구연맹(FIFA)까지 징계를 예고하면서 루비알레스 회장의 운신 폭도 사실상 사라졌다.

여자 대표팀이 이룬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감격을 누려야 할 스페인 축구는 수장의 잘못된 행동 탓에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얄궂게도 루비알레스 회장은 스페인 여자축구를 지금의 위상에 올려놓은 핵심 인물이다.

특히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15일 루비알레스 회장은 여자 선수들에게도 2027년까지 월드컵,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주요 대회 참가에 따른 포상금을 남자 선수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지급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2018년 취임 당시 "모두를 위한 협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이 협정을 발표하면서 "여성 스포츠를 장려하며 남성 스포츠와 간극을 좁히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선수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행정가 경력의 기틀을 다졌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반테에서 뛴 루비알레스 회장은 재정 위기가 닥친 구단이 선수단에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자, 일선에서 '보이콧'을 이끌었다.

2008년 4월 26일 결국 구단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루비알레스 회장은 기자회견에 나서 파업을 취소하고 경기 일정을 정상 소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선수 노조 격인 스페인축구선수협회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 시기 루비알레스 회장은 국가대표 선수 처우 개선을 위해 두 차례 '파업'을 주도했고,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라리가)가 중계권료의 일부를 선수들에게 지급하도록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스페인축구협회 수장이 된 후 중점은 둔 분야가 여자축구다.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루비알레스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여자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3월 방한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남녀 대표팀이 차별이라고 느끼는 부분 없이 나란히 나아가는 게 스페인 축구의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여자축구 분야 예산을 4억600만유로(약 5천804억원)로 전년 대비 3배가량 늘린 것도, 자국 최상위 리그에 최저 임금제를 도입한 것도 루비알레스 회장이었다.

루비알레스 회장 체제에서 스페인 여자팀은 꾸준히 성과를 냈다.

2018년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지난해 열린 유럽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8강에 올랐다.

당시 우승팀 잉글랜드와 연장 접전 끝에 패하며 전력이 크게 강화됐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마냥 선수 편만 든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스페인 주축 선수 15명이 돌연 현 수장인 호르헤 빌다 대표팀 감독의 지도 방식이 강압적이라며 반발, '보이콧' 의사를 보였다.

선수들의 반발에도 루비알레스 회장은 빌다 감독이 자리를 지키도록 굳건한 신뢰를 보였다. 협회의 지지를 등에 업은 빌다 감독은 결국 12명의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했지만, 지도력을 발휘해 우승을 이뤘다.

굳은 표정의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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