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의령장 나들이, 정겨운 맛 새록새록[지극히 味적인 시장]
한 달에 두 번 오일장을 다니며 사진 찍고 글을 쓴다. 책도 몇 권 냈기에 작가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낯선 부름이다. 나는 28년째 식품 MD이고 그리 불리는 것이 좋고 익숙하다. 의령 오일장을 가기 전에 경북 의성에 들렀다. 본업인 식품 MD 일로 여름 사과인 산사와 신품종 루비에스를 보기 위함이다. 의령에서 일 보고는 집으로 가는 길에 산청에 들려 여름 배인 한아름 배를 볼 예정으로 길을 떠났다.
경남 의령 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23년 전 거래했던 한과 회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는 그다음이 홍의장군 곽재우다. 한과 업체는 잠깐 거래한 정도지만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팀원의 추천으로 거래를 진행했던 업체인지라 그런 듯싶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고향이 의령인지라 길 이름, 다리 이름 하나하나에 ‘의병’이 붙어 있다. 이 두 가지를 빼고는 의령에서 나는 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별로 없다. 많이들 아는 ‘망개떡’ ‘국밥’ ‘소바’ 정도는 알고 있다. 의령 시장이든 의령 곳곳을 다니다 보면 잘 알려진 세 가지 음식을 쉽게 만난다. 이 세 가지를 빼고는 의령의 맛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눈에 띄는 먹거리가 별로 없었다. 잘 되는 곳은 몇 군데나 있는 로컬푸드 매장조차 충북 단양처럼 읍내에 없었다.
경남 의령장은 3, 8일장이다. 8이 두 개가 겹치는 8월8일, 삼복더위의 끄트머리인지라 아침부터 나가기 싫을 정도로 햇빛이 강렬했다. 그런데도 장터는 사람이 넘쳤다. 장을 보고 가는 이, 보러 오는 이로 활력이 넘쳤다. 가을 문턱이라는 입추가 코앞이더라도 장터는 여름것들이 많았다. 산이 많은 의령, 초피(제피) 열매 파는 곳이 꽤 많았다. 할매들이 들고나온 것도 있고 약초 파는 매장에서는 말린 것과 말리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가격은 1kg 3만원. 놀라는 표정을 지으니 “아재요 인건비가 하루 15만원이요, 15만원”이라고 한다. 이 작은 초피 열매를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따면 얼마나 딸까 싶었다. 인건비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야 가격에 수긍이 갔다. 가끔, 본의 아니게 가격만 보고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상품이 내 앞에 놓여 있기까지의 수고는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수고를 생각한다면 결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입구에 혼자 떨어져서 앉은 할매 앞에 초피가 놓여 있었다. 조금 더 햇빛에 말려야 하는 푸른빛 도는 초피다. 원래 사고자 했던 토란대 말린 것도 하나만 달랑 있기에 같이 샀다. 2년 전에 안동에서 샀던 토란대를 다 먹어서 시장 다닐 때마다 사야지 했다가 까먹고 있었다. 아마도 다녔던 시장에서도 말린 토란대를 봤을 것이다. 메모하지 않으면 잘 잊을 나이인지라 까맣게 잊고 다녔을 것이다.
시장 초입의 생선 좌판, 빨간고기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보통 적어 혹은 빨간고기로 불리는 생선의 본이름은 장문볼락. 우리나라에서는 잡히지 않는 생선이다.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잡은 것을 수입한 것이다. 생선구이 집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다. 한번 맛본 적이 있다. 근해에 잡힌 생선은 살의 고소함이 매력이다. 빨간고기에서는 그 맛을 느끼기 어렵다. 빨간고기 옆에는 ‘민어 조기’로 파는 영상가이석태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생선이다.
사진 찍고 다니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장 잠시 볼 생각으로 봐뒀던 곳으로 갔다. 시장에는 여름 반찬 3대장을 많이들 팔고 있었다. 내가 꼽는 3대장은 고구마순(단양장에서 샀기에 이번엔 패스), 호박순, 깻잎이다. 이번에 살려고 마음먹은 것은 깻잎. 여름 반찬으로 깻잎지 이길 반찬은 없을 듯싶다. 깻잎을 잘 씻고는 물기를 뺀 다음 양념장을 한 장 한 장 바르면 끝이다. 쉽다. 사실 한 장 한 장 양념장 바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깻잎 어떻게 해요?” “세 묶음 2000원요.” 집어서 드리니 봉지를 계속 열고 있었다. 그냥 빤하게 쳐다보다가 돈을 꺼내려 했더니 “아재요, 두 개 더 집어요” 한다. “예? 묶음 하나에 세 개를 묶은 거 아닌가요?” “아재 같은 사람만 있으면 우린 금세 부자 되것따.” 뒤에 앉아 있던 할매가 말을 건네며 웃는다. 그제야 묶음을 두 개 더 봉지에 넣었다. 집에 돌아와 풀어 보니 한 묶음에 대략 깻잎이 40장 넘었다. 깻잎을 씻은 다음 물기 빼는 사이 양념장을 만들었다. 고춧가루, 참기름 아주 조금, 다진 마늘, 설탕 아주 조금, 간장에 멸치액젓을 넣었다. 필자는 MSG의 감칠맛을 멸치액젓으로 대신한다. MSG만큼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감칠맛을 준다. 요리할 때 멸치액젓을 빼먹지 않는다. 양념장을 만들고는 간을 보면서 소금을 넣는다. 간장과 멸치액젓에도 소금이 들어 있기에 소금은 간을 본 다음 마지막에 넣는다. 그래야 간을 맞출 수가 있다. 130장 넘는 깻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발랐다. 이틀 정도 지나면 양념이 깻잎에 잘 물들어 있다. 찬물에 말든 아니면 따듯한 밥 위에 올리든 이만한 여름 반찬이 없기에 여름이 오면 가끔 한다.
의령장에는 박도 꽤 있었다. 일찍 장본 할매의 쇼핑 카트 안에는 커다란 박이 몇개 들어 있었다. 잘게 잘라서 팔기도 했다. 깻잎 사면서 어찌 먹는 게 좋은지 여쭸다. “그냥 기름에 볶아, 그게 맛나.” 충남 서산에서는 낙지국에 넣기도 하는데 여기는 볶는 요리인 듯. 얼추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오이가 눈에 띄었다. 오동통한 짧은 몸통, 토종 오이였다. 이것저것 산 게 있어서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와 샀다. 백오이나 가시오이도 나름 맛이 있다. 토종 오이의 고소함은 그들 오이에서는 맛볼 수가 없거니와 어느 장터에서 언제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진안장에서도 토종 오이를 샀었다. 여름에 장터에서 토종 오이를 만나면 무조건 사야 한다. 단단하기에 씹는 맛도 좋고 즙까지 많아서 맛이 괜찮다. 시장을 나오는 내 손에는 깻잎, 토종 오이, 초피, 토란대 말린 것이 들려 있었다. 목적한 대로 산 것은 깻잎뿐, 나머진 충동구매다. 오일장의 재미는 이런 충동구매라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던 식재료를 만나는 재미가 있는 곳이 오일장이 아닐까 한다.
의령을 대표하는 먹거리에 국밥, 망개떡 그리고 소바가 있다. 1박2일 있으면서 다른 것을 찾아서 먹을까 하다가 의령에서 이름난 세 군데 국밥집을 다 들렀다. 작년 의령 옆 함안에서도 소고기 국밥 거리에서 유명한 집 두 곳의 국밥을 먹어 봤기에 궁금함이 밀려왔다. 함안과 의령 국밥은 큰 차이라고 해봐야 선지의 유무. 함안은 선지가 들어 있다. 유명한 식당이 여러 곳일 때의 궁금함은 ‘어디가 맛있을까?’다. 처음 온 외지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궁금증이지 않을까 싶다. 세 군데 모두 국내산 한우와 육우를 비롯해 모든 재료가 국내산으로 같았다. 국물은 함안보다는 순했다. 함안이 얼큰한 육개장과 비슷했다면 의령은 곰탕처럼 국물이 부드러웠다. 세 군데 식당 중에서 수정식당이 가장 얼큰했다. 고기양은 거의 비슷했고 고기의 고소한 맛은 중동식당이 좋았다.
망개떡은 멥쌀로 만듦에도 찹쌀처럼 쫀득쫀득했다. 만드는 방법이 궁금했다. 쌀가루로 떡을 찔 때 물을 보통보다 조금 더 넣으면 식감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그보다 조금 덜 넣으면 가래떡이고 그보다 적으면 백설기의 식감이 된다고 한다. 떡 만드는 법을 들으니 그제야 망개떡의 쫄깃한 식감에 대한 궁금함이 풀렸다. 망개떡 중에서 지역에서 나는 아랑향찰 현미로 만드는 망개떡이 가장 특이했고 맛있었다. 쌀알이 살아 있는 모양새, 씹는 맛에 현미의 구수함이 더해져 달기만 한 흰 망개떡과는 다른 맛이었다. 흰 망개떡은 시장보다는 시장 밖에서 파는 것이 쫄깃하고 팥소의 맛이 더 좋았다. 시장 것은 팥소가 묽었다. 방앗간 안지 (055)573-4887
소바는 70년 된 식당에서는 맛을 보지 못했다. 오일장 둘러보고 맛볼 생각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 장날이 쉬는 날이었다. 시장에 있는 가맹점 본사의 본점이라는 곳이 가장 사람이 많았다. 가맹점 본사의 의미인 본점을 원조와 헷갈리는 듯싶었다. 다른 곳에서 맛을 보니 멸치육수 맛이 꽤 괜찮았다. 다대기를 풀고 난 후 육수 맛을 보니 서울식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의 딱 중간 맛이었다. 멸치육수에 장조림 국물을 섞어 만든 육수 맛이 그렇다고 대변하는 거 같았다.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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