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 맞는 교사 그저 방치한 교감···법의 심판 받기를”

2023. 8.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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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학생 관련 두 차례 지원 요청 묵살돼
“학생은 용서…교감 의무 일깨우려 법정 투쟁”
현재 전남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24년차 교사 장혜진씨가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 송윤경 기자



예진이(가명·당시 17세)는 자꾸만 학교 앞 도로로 뛰어들었다. 아이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사력을 다해 아이를 붙잡는 와중에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예진이의 주먹이 뺨으로 날아들었다. 머리채가 잡혀 고꾸라졌다. 발에 차여 바닥에 뒹굴었다. 크고 작은 폭행은 90분간 계속됐다.

24년차 교사 장혜진씨(49)의 삶을 흔든 2021년 3월의 이 사건을 어떻게 명명하면 좋을까. ‘교사가 학생에게 맞은 사건’이란 표현으로는 지금까지 계속되는 괴로움이 담기지 않는다. 그는 진작에 예진이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학교의 대응’에 있다. 당시 장씨는 예진이와 실랑이를 하며 “누구든 나와달라”고 학교에 두 차례 ‘지원 요청’을 했다. 이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교감은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는 교문 밖에 나와보는 듯했지만, 길 건너편에 있는 장씨와 예진이를 찾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장씨는 그렇게 아이와 홀로 씨름했다. 자신이 맞는 것을 지켜본 학생들도 있었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이초의 20대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사의 인권·교육권 침해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장씨는 말한다. “그런데요, 다들 진지하게 묻지 않는 것이 있어요. 서이초 사건에서 교장·교감은 왜 교사를 지켜주지 않았나요? 이영승·김은지 교사가 자살한 학교의 교장과 교감은요?” 혹자는 “지금의 학교 시스템에선 교장·교감도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장씨는 “그런 말을 하기엔, 다수의 교장·교감들은 자신의 역할을 너무 잊고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얻어 2년 반가량 휴직 중인 그는 아직까지도 교감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교감 A씨는 2021년 다른 학교의 교장으로 승진한 상태다.

최근 장씨는 용기를 냈다. 예진이를 용서했음에도 계속되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감 A씨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법정에서 싸우기로 한 것이다. 장씨의 법정 투쟁은 “그저 학교가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상당수의 교장·교감들에게 ‘교사 보호 의무’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주간경향은 지난 8월 15일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인 장혜진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건의 개요부터 여쭤보겠다. 왜 예진이와 학교 앞에서 실랑이하게 된 건가.

“그날 오전, 교무실에 경찰이 찾아왔다. 예진이가 교문 밖에 있다고 해서 나가보니 심하게 취해 있었다. 알고 보니 상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이 학교로 데리고 온 거였다. 이미 그때부터 예진이는 학생부장을 발로 차고, 저를 밀쳐서 구르게 하고 그랬다. 아이가 학교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저항해서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그 자리에서 제가 데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 학생부장 교사는 경찰로부터 인계된 또 다른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들어가려 하더라. 그때 간곡히 부탁했다. 아이를 홀로 감당할 수 없으니, 들어가시면 다른 교사 누구든 한분만 꼭 보내달라고.”

지난 7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아동학대 관련법 즉각 개정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누가 나왔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학생부장은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제때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한 시간 동안 예진이와 씨름하다가 교무실에 다시 전화했다. 제 얘기를 들은 교무부장 선생님이 교감에게 보고했다고 들었다. 당시 교장은 출장 중이었고, 학교의 총책임자는 교감이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 후 교감 선생님이 교문 밖으로 걸어나오는 듯하더니 금세 들어가더라. 그때 저는 길 건너편에서 예진이에게 맞고 있었다. 연락이 왔단 보고를 받고 나왔으면서, 찾지도 않고 그냥 간 거다. 나중에 ‘못 봤다’고 하더라.”

이날 장씨는 교무실로 들어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보고서를 만들어 올리고 연차를 낸 후 병원에 갔더니 교감이 뒤늦게 전화했다. 그는 “내일 학교 못 나올 정도로 아프냐, 선생님 못 나오면 골치 아프다”라며 타박하듯 말했다. “아이에게 많이 맞았다”는 내용도 함께 담긴 보고서를 전달했던 장씨는 교감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그날밤부터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학교에 있는” 꿈을 꿨다. 맞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해 일하라는 교감의 태도가 더 아팠다. “학교는 왜 이리도 폭력에 무감각한가”라는 질문만이 맴돌았다. 이튿날 출장에서 돌아온 교장이 상황을 파악해 1주간의 특별휴가가 겨우 주어졌다. 그럼에도 ‘출근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다. 평생 겪어본 적 없는 발작과 구토가 찾아왔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었다. 나중엔 공황장애,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다. 정형외과와 신경정신과 진단서로 두 달여의 공무상 요양 휴가를 얻게 됐을 때, “그제야 입에 밥이 들어갔다”고 장씨는 말했다. 그는 이 이야길 하며 왼쪽 뺨을 어루만졌다. “이상해요, 이 얘기만 하면 여기가 아파요.” 예진이의 주먹이 날아왔던 곳이었다.

-예진이에게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 같다.

“사실 예진이에 대해선 빨리 용서가 됐다. 예진이는 학기 첫 주부터 상담을 자주 했던 아이였다. 지각, 결석, 조퇴가 잦았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까지 모시고 셋이 대화를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잘 풀렸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예진이에게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 네가 원하는 반려동물 미용 학원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 얼굴이 좋아져서 돌아갔다. 그런데 예진이가 다시 결석했다. ‘엄마는 똑같았다, 제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더라. 제가 맞았던 그날 예진이는 아버지가 온 뒤에도 격렬히 저항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을 들으니 방황의 이유가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게 잘되지 않았다.”

폭행을 당한 직후 장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며, 예진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군가 곁에 끼고 어르고 달래며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장씨가 공황장애 등과 사투하며 공무상 요양 휴가를 연장하는 사이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예진이를 학교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몸이 아파 교권보호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장씨는 “얘기를 전해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나중에 장씨는 예진이와 통화하며 사과를 받았고, “선생님은 너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7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써 있다. / 권도현 기자



-실업계 고교의 교실엔 한국사회 모순이 응축돼 있는데, 그걸 일선 교사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같다.

“실업계 고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커녕 하루하루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많다. 학교폭력 등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정리하지 못한 채 진학을 한 아이도 많고, 부모가 아이 양육에서 손을 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공교육은 한번 망해봐야 해’라고 말하면서도 공립에 계속 남아 있었던 건 그나마 돌보고 걱정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님밖에는 없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예진이를 용서했음에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90분간의 구타 사건 당시 교장은 출장 중이었고 교감 A씨가 학교책임자였다. 제가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을 보고받았다고 하는데, 저를 끝까지 혼자 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건 이후 출근을 압박한 것 역시 제겐 큰 위협이었다. 제 사건이 있고 나서 A교감은 한 학기 만에 다른 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승진을 한 거다. 자신의 중요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다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최근 강해졌다.”

-교감 A씨에게 법적으로 어떤 잘못이 있다고 보는가.

“교원지위법에 근거한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에는 교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교장·교감, 교권침해대응담당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교감 A씨는 피해 교원인 저를 (학생과) 즉시 분리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의 대응을 해야 했다. 또한 특별휴가, 조퇴, 병가, 공무상 요양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교육청에 해당 사안을 보고한 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A씨는 그중 한 가지도 한 게 없다. 교장이 출장에서 돌아온 뒤 교권보호위원회 등의 몇 가지 조취를 뒤늦게 취했을 뿐이다. A씨의 행동은 형법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8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이초 교사 사건과 관련한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 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이초 사건 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장·교감이 뒤에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교장·교감이 자신을 일선 교사를 지원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를 소모품으로 알고 감시·통제 대상으로 여기는 이도 많다. 그들의 준거집단은 교사들이 아니라 교육청 관료들이다. 이들은 승진할 생각만 하기 때문에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한다. 서이초 사건과 이영승·김은지 선생님의 자살 사건에서 다들 진지하게 묻지 않는 게 있다. ‘그동안 교장·교감은 뭘 했느냐’ 하는 점이다. 저의 법적 대응이 교장·교감들에게 교사 보호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나온 교권침해 대책은 어떻게 봤나. 교감,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으로 구성된 민원대응팀을 학교마다 꾸리겠다고 한다.

“‘어이 장 선생, 학부모한테 민원 왔어, 전화해봐’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그리고 애초 행정사 역할이 왜 생겼는가. 교사들의 수업 외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생겼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감 비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골치 아픈 민원 업무도 행정사 등 공무직들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학생지도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없는 이들이 학부모 민원 업무를 맡는 게 옳은가. 돌이켜보면 행정사님들이 일선 교사의 행정적 업무를 맡아주던 학교에서 그래도 즐겁게 일했다. 교장·교감 중심으로 굴러가는 학교의 비민주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게 뻔하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침해가 심각해졌다는 식의 인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학교에서 교사 인권침해가 더 심각한 것으로 안다. 학교가 폭력에 무감각한 곳이 될수록 교사든 학생이든 인권침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학교를 둘러싼 모순들에 대해 장씨의 답은 거침이 없었다. 열정이 넘쳤던 24년차 교사다웠다. 10여 년 전 그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한 뒤 <마음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졸업 후 연락을 유지하며 지내는 제자도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예진이에게 맞은 날 이틀 뒤엔 옛 제자와의 캠핑이 약속돼 있었다. 캠핑을 하던 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밤새 울었다고 한다.

이제 장씨는 교사를 그만둘 작정이다. “더는 교단에 설 수 없겠다는 마음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폭행당하는 자신을 홀로 둔 학교책임자(교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계속되는 정신적 고통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장씨는 현재 한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A씨(2021년 당시 장씨 근무 학교의 교감)에 대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주간경향은 A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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