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그라운드 제로’의 첫 생명은 송이버섯[책과 삶]
처음 등장하는 생물 ‘송이버섯’
인간과 곰팡이, 소나무 ‘협력적 생존’의 방식
인류학자 저자가 생물학·경제학 넘나들며
폐허에서 희망을 탐색하는 이야기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노고운 옮김|현실문화|544쪽|3만5000원
<세계 끝의 버섯>이라니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모험소설의 제목 같다.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란 부제와 연결시켜 읽으면 아포칼립스(종말)를 다룬 SF 소설이 연상되기도 한다.
둘 다 틀렸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이 쓴 문화인류학 연구서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재앙으로 닥쳐오고 경제 발전이 더 이상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암울한 현주소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묵시록적이며, 미국 오리건주의 캐스케이드 산맥과 일본의 숲을 탐방한다는 점에서 모험적이기도 하다.
저자는 송이버섯에 얽힌 사람들과 이들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 다양한 관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모색한다. 송이버섯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버섯이자 고급 식재료이긴 하지만 위기로부터 세계를 구하기에는 미미한 존재로 보인다. 저자는 송이버섯이 세계를 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송이버섯이 자라나는 방식, 채집되고 판매되는 방식을 따라가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능성’을 엿본다. 인류학, 생물학, 경제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공급사슬망, 산림 산업,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생물과 인간, 문화의 연결과 마주침을 이야기한다.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매끈한 이야기가 아니다. “짧지만 다채로운 장”들이 “비 온 뒤 쑥쑥 올라오는 버섯”과 같으며, 이야기들이 모여 만드는 것은 “논리적 기계가 아니라 열린 배치”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살아난다. 불확정성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불확정성의 공포’. 이것이 저자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자 우리 대부분이 공유하는 것이다. 24일 일본은 태평양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1년 뒤, 10년 뒤, 방류가 끝난 30년 뒤, 더 먼 미래에 바다에서 벌어질 일을 예측하기 어렵다. 바닷물은 지상의 생물들, 인간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는 진보를 향한 믿음이 사라진 현재를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의 세계로 인식한다.
송이버섯은 여러모로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생물을 대표하기에 적합하다. 1945년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수천 명의 시베리아인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달려갔다.
이민자·농민의 채집 공동체에서
수출 위한 자본주의 상품으로
다층적으로 얽힌 경제·생물학
송이버섯 산업·생태 넘나들며
우리 시대 불안정성을 꼬집다
송이버섯은 대규모 벌목으로 인간이 파괴한 숲이나 불타버린 숲에서 자라난다. 영양분 없는 척박한 토양을 분해해 소나무에 양분을 공급,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인간이 ‘교란’한 황폐한 숲에서만 자라며 인공적 재배가 불가능하다. 저자는 송이버섯에서 환경 교란과 폐허 속 공존의 가능성을 본다. 인간과 소나무와 송이버섯은 스스로를 위해, 다른 생명체를 위해 “다종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 정치경제의 균열도 보여준다. 북반구 전역 숲에서 채집돼 일본에 배송되는 ‘글로벌 상품’인 송이버섯의 주 채집인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난민, 이주노동자 등이다. 이들은 터전에서 쫓겨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등 끔찍한 일을 겪었다. 채집인들은 자영업자이며, 임금이나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다. 야생버섯 채집은 사회보장이 제공되지 않는 불안정한 생계의 한 예다.
책은 마르크스 경제학과 종간 상호의존성을 이야기한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개념에 기반해 논의를 발전시킨다. 서구가 주도해온 근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송이버섯 숲은 대규모 단일재배인 플랜테이션과 대척점에 위치한다. 유전적 다양성을 없앤 작물과 아프리카에서 데려와 지역 내 사회관계가 전무해 탈출도 불가능했던 노예들은 자립적이고 언제든 호환 가능한 단위가 됐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다른 생물과 변형적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송이버섯이 자라는 숲은 역동적이고 다종적인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세계 전체에 빈틈없는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체제로 보는 대신 세계 여러 지역의 패치(조각)들을 연결하면서 작동하는 체계로 본다. 자본주의 내부이자 외부인 주변자본주의적인 장소에서 토착 지식과 기술로 모은 가치가 자본주의적 이윤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구제와 번역으로 부른다. 토착 지식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가치가 자본주의적 수익으로 전환되는 것이 ‘구제’이며, 이는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공간을 가로지르는 ‘번역’을 필수로 한다. 제3세계에서 이뤄지는 강압적 노동, 위험한 영세 제조업체, 무책임한 환경오염 등에 기반한 글로벌 공급사슬은 ‘번역’을 통해 이뤄진다. 저자는 “구제는 폭력과 오염을 이윤으로 번역한다”고 말한다.
오리건주 캐스케이드 산맥
‘새로운 백금’을 찾아 모여든 참전용사·인도차이나 난민
‘자유’를 위해 송이버섯을 찾아나서
구제나 번역 같은 용어가 낯설 수 있다. 저자는 캐스케이드 산맥으로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송이버섯이 소나무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번성해 숲을 이룬 풍경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송이버섯 특유의 향, 채집인들의 다양한 삶의 질감과 역사 또한 이 책에 가득하다.
송이버섯의 주요 생산지인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숲은 1960~1970년대엔 ‘나무의 플랜테이션 농장’과 같았다. 목재로 쓰이기 좋은 폰데로사 소나무가 벌목으로 베여나가자, 척박한 땅에서도 살 수 있는 전나무와 로지폴 소나무가 자라났다. 좋다고 할 수 없는 경치 속에 송이버섯이 등장했고, 일본이 높은 가격에 송이버섯을 수입하자 실직 상태인 인도차이나 난민과 참전 군인 등 수천 명이 ‘새로운 백금’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다. 미국이 벌인 인도차이나 전쟁 여파로 1980년대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지에서 ‘반공주의자 난민’이 미국에 왔다. 하지만 미국은 이들이 정착하게 돕는 복지를 제공하지 않았고, 돈도 없고 서구식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은 사회적 공공망에서 벗어난 일자리로 옮겨 갔다. 정글 속 전투로 숲에서의 생존술을 익힌 이들에게 캐스케이드 숲은 최적지였다.
저자는 2004~2011년 미국과 캐나다, 일본, 중국, 핀란드 등지에서 송이버섯 시즌 동안 현지조사를 벌였다. 저자는 몽인, 미엔인들을 따라 숲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갔고, 송이버섯이 승리의 트로피처럼 판매되는 구매 텐트에도 참여했다.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흥미로운 부분이다. 송이버섯을 따러 몰려온 사람들은 다양했다. 밤마다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질러대 숲으로 들어온 베트남전 참전 용사 등 백인 남성들, 정글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였던 동남아시아인들이 함께했다.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적 장소다. 이들은 저마다 ‘자유’를 위해 송이버섯을 딴다고 말했다.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백인 참전 용사와 동남아시아 난민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백인 참전 용사는 숲에서 전쟁 트라우마를 상연하고, 크메르인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몽인은 전장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버섯 채집을 통해 ‘자유’를 실천했다. 이들은 송이버섯 채집을 결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딴 송이버섯을 ‘사냥의 트로피’처럼 여기며 가격을 높이려 경쟁을 벌이는 경매를 통해 버섯을 판매했다. 송이버섯은 농경지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되는 대신 자유를 원하는 다양한 프리랜서 채집인에 의해 모이고 팔린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송이버섯에 숨겨져 있다. 송이버섯은 일본으로 운송되기 직전 무역회사에서 크기에 따라 규격화되어 분류되는 과정에서 오리건주 숲과 구매 텐트에서 벌어진 요란한 과정을 지워버리고 자본주의 상품으로 ‘번역’된다. 다른 반전이 기다린다. 일본에서 고급스러운 선물로 거래되는 송이버섯은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들, 구매자, 판매자와 관계를 형성하며 다시 한번 상품에서 비켜간다. 소원해진 가족과 친족 간 관계를 되살리고, 향과 맛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해 시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송이버섯 이동 경로를 쫓지만, 한국의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일본의 송이버섯 사랑이 8세기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들에 의해 비롯됐다는 부분이다. 지금은 보편화한 세계적 공급사슬을 만드는 글로벌 하청 구조를 일본이 처음 시작했으며, 전후 미국이 일본산 수입품에 할당량 제도를 시행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식민지 한국에 경공업을 이전하는 식으로 공급사슬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은 구식 제조업을 동남아시아의 더 가난한 국가로 이전하며 또 다른 공급사슬을 만들었다.
신자유주의는 ‘번역’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의 것들(주변자본주의)을 자본주의로 끌어들이지만 고용불안정, 사회복지 감소 등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며 주변자본주의적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다양한 송이버섯 채집인들을 만들어냈다. 또 송이버섯 숲은 다양한 생물들과 연결되며 미국, 일본, 중국, 핀란드 등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숲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끝의 버섯>은 땅속에서 끊임없이 균사를 뿜어내며 뻗어나가고 다른 생물과 얽히는 곰팡이(버섯은 곰팡이의 자실체다)처럼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송이버섯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작은 것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또한 눈 밝고 명민한 학자의 자질과 능력이다. 저자는 송이버섯이라는 작은 유기체를 실타래 삼아 자본주의적 파괴와 다종의 풍경 속에서 협력적 생존이 가능할 수 있는지 통찰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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