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건너는 토토를 위해 불경을 읽어주었다···“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책과 삶]
‘명왕성에서 이별’ 등 에세이집
16년 함께한 반려견과의 일상부터
죽음·인간·사랑에 관한 단상까지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352쪽 | 1만8000원
작가 이응준은 죽어 가는 토토를 보듬어 안고 부처가 제자에게 한 말을 반복해 읽어줬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아난다여! 무너져 가는 것들에게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한들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대반열반경> 중).
토토는 이응준을 16년간 위로하고 지켜준 강아지다. “일생 가장 아름다운 인연. 그 어떤 인간보다 순수한 내 친구”였다. 토토가 치매 때문에 “머리를 요란하게 흔들고, 정처 없이 헤매며, 어두운 구석으로 처박히듯 들어갔다가는, 이윽고 함정과 늪에 빠진 것처럼 되돌아 나오질” 못할 때 이응준도 거의 아무 일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안락사를 시키라고 했다. “무조건 절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생은 결국 망한다. 게다가 암 같은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환이라면 나는 토토를 토토의 죽음까지 잘 배웅해 주어야 했다. 녀석이 단 하루라도 더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나는, 단 하루만큼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였다. 꼭 끌어안고 있는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토토는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반려동물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 “반려동물이 죽고 나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가 과장이 아님을 체험”했다. 잊고 있던 어머니의 죽음도 떠올렸다. “죽음도 암기과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삶의 허튼 짓거리들을 그만하게 된다.” 삶과 존재에 관해서도 생각한다. “우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견뎌야 한다. 산속의 그 어떤 짐승들도 스스로에게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존재는 의미에 선행하는 것. 의미를 자꾸 추적하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의미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은 곧 죽음이다. 살아 있으니, 무조건 사는 것이다.”
죽은 토토는 ‘시니어 토토’다. 이응준은 지금은 ‘주니어 토토’랑 산다. 반려견과 사별한 뒤 다시 반려견을 입양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아이를 입양할 적에 그 아이가 자신보다 일찍 죽을 것을 당연시하고 입양하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반려견을 입양하는 보호자는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아이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 것이며 그 과정을 돌보고 그 결과까지 견뎌 내야 한다는 태양 같은 사실을 도저히 외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만남의 첫날부터 사별의 트라우마를 각오하고 극복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무지개다리 건너편 토토를 위해 다시 힘을 내려 유기견 보호소로 갔다. 2016년 11월 14일이다. “백여 마리의 개들이 철창 안과 비닐장판 바닥에서 발광을” 해하는 곳이다. “배신당해 버려진 개들이 인간을 증언”한다. 이응준은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유기견 보호소로 가보라고 한다.
입양하려는 개는 먹이다툼에서 뒤처진 탓에 너무 말랐다. “지나치게 선량해서 슬픈 얼굴”을 한 보호소 청년이 거지꼴을 한 작은 개에게 말했다. “잘 가, 리치(Rich). 행복해야 해.” 이응준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붙은 개”를 안고 보호소를 떠난다. 보호소 가기 전날 “어렵게 찾은 내 행복”이란 뜻으로 ‘행복’이라 이름을 정했다. 집으로 오는 길 “단 하루라도 토토가 죽은 그날로부터 어서어서 더 멀”어지길 바라면서도 다시 ‘토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응준은 산문집에서 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샤를 드골은 “정치인을 많이 알게 될수록 개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고, 블레즈 파스칼은 “사람을 오래 관찰할수록 내가 기르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아나톨 프랑스 “한 번도 개를 사랑한 적이 없다면, 영혼의 일부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범죄물 작가 하세 세이슈는 이런 말을 했다. “(개에 관해 쓴 소설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개라는 생명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쓰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응준은 하세 세이슈를 두고 이렇게 썼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홀로 멀리서나마 알게 된다는 건, 기쁨 이전에 충만한 위로를 준다. 그게 책의 힘이겠지. 글의 힘이겠지.”
죽은 토토를 애도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듯 정성”을 다해 쓴 글이 그랬다. 추모·애도의 글은 쓰고 읽는 모든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토토에 관한 여러 글 중 ‘명왕성에서 이별’은 자신을 위로하고, ‘내’가 살고 싶어 쓴 글이다. ‘명왕성에서 이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 사별한 이들에게 큰 위안을 건넸다. 산문집 여러 글은 ‘반려동물 추모·애도 문학’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꼭 넣어야 할 듯하다.
이응준은 산문집에서 독서와 문학 즉 쓰고 읽는 일에 관한 단상도 풀어낸다. “기본적으로 쓴다는 것은 그게 아무리 선하고 유익한들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 따위가 감히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려 하다니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쓴다고 해서 구원”받지도 못한다. 단 “아무리 하찮은 글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인간은 구원”받는다. “읽으면서 인간은, ‘보는 인간’과 ‘보고 듣는 인간’ 전부를 잊는다.” 이응준은 “쓰는 자보다 읽는 이를 존경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보다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선하고 아름다우니까”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응준은 또 쓰고 쓴다. 그 일은 ‘작은 신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루하루를 그 비좁은 생의 참호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무슨 병든 세계를 치유하듯 더럽혀지고 망가진 구두를 빛나고 온전케”하는 컨테이너 안 구두 수선공 일에 자기 일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무 살에 썼던 시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다만 몇 명이라도 요즘의 스무 살들이 돌려 읽는다는 것, 이것보다 더 신비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내 하는 일의 ‘작은 신비’를 잃어버릴 때 무기력이란 현상이 일어난다고도 했다.
이응준은 산문집 책머리 작가소개 같기도 작가의말 같기도 한 공간에 이런 말을 썼다. “글로 하는 거의 모든 장르들을 다룬다. 영화. 음악 같은 다른 일들도 한다. 인간을 좋아하지 않지만, 개를 사랑하는 인간은 안 싫어하는 편이다.”
산문집의 또 다른 줄기는 싫어하고 혐오하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우선 자신이 혐오와 부정의 대상이다. “좋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20대 주안 3년간 대소변 수발을 하며 병간호를 할 때 “어머니의 삶이 차라리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생각까지” 품은 일도 고백한다.
사람들이 죽기보다 싫어 죽은 사람 책만 읽는다. 이응준이 그토록 싫어하는 살아 있는 인간은 “불굴의 의지와 환한 희망과 강철이론으로 무장한 자들” “남 위하는 척들(하는 이들)” “나는 세상 사는 게 즐겁다고 그러니 우리 모두 즐겁자고 권하는 얼굴들” “(‘인간의 제일 더러운 짓’으로 제 욕심과 욕망을 채우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작가들”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광장에서 외치는 사람들” “혼자 역사를 짊어진 듯 구는 자들”이다.
“증오가 무분별한 세상도 지옥에 가깝지만, 기실 그것보다 더 끔찍한 세상은 존경이 무분별한 세상”이라고 여긴다. “누군가는 거짓말쟁이의 거짓보다는 거짓말쟁이를 존경하는 대중에게서 더 깊이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타인을 추종하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 무섭다”고도 했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08181414001
산문집은 한국 사회에 관한 비평도 담았다. 이응준은 극단적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를 두곤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편을 갈라 멸시하고 증오하는, 죽일 수만 있다면 정말로 죽여 버릴 사람들끼리 득실득실 우글우글한 세상이 불구덩이 지옥 같다”고도 말한다.
한국 사회에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좌파 특권층 우파 특권층과 그들의 노예들만이 있을 뿐이다. (…)오래전부터 이 세계의 노예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가 아니다.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를 못 알아보는 자이다.” “세상이 우익이 되건 좌익이 되건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우익 파시즘과 좌익 파시즘일 뿐이다.”
트럼프 당선 예측을 한 예로 든다. 트럼프를 지지한 적도 지지하지도 않는 이가 이런저런 연구와 실증으로 당선을 맞췄을 때 정치적 모독과 인격모독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온종일 비가 많이 내릴 거라고 기상 예보관의 예보가 정확히 맞았을 때 “야외로 소풍 가고 싶었던 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부도덕하다며 침을 내뱉는” 일에 빗댄다.
이응준이 강조하는 건 ‘자유’다 2015년 신경숙 표절 사실을 폭로한 그가 검찰 수사에는 반대한 일과 이어지는 것이다. 그가 열입곱 살 때 처음 구입한 뒤 너덜너덜해지면 아무 갈등 없이 서너 차례 새로 산 책이 <김수영 전집> 1·2권이다. 이응준은 김수영 문학을 두고도 “그의 문학은 ‘자유’였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존재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아둔하고 잔인한 짐승들이지만, 타인의 상처를 함께 나누면서 치유받는 용한 존재”이기도 하다.
‘의형제를 맺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의 장례식 때 사회적으로 약자인 아버지 친구와 후배들이 많이 찾아와 애통해 하는 걸 본 일도 떠올린다.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의형제를 맺지 않아도 누군가의 의형제가 되고, 굳이 보증을 서지 않아도 누군가의 증명이 된다”고 썼다.
칼 세이건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한다. “이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포장된 사후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 나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 서서 죽음을 똑바로 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게 낫다.”
혼돈의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선도 이야기한다. “세상과 인생은 카오스다. 우리는 이 사실을 순순히 인정해야 하고 여기에서 자포자기보다는 겸손과 아이러니 같은 여유를 얻어야 한다. 오히려 그리하여, 부족한 우리 각자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고 잔인무도하고 황당무계한 이 세계를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응준 하면 <국가의 사생활>을 쓴 작가, 신경숙 표절을 폭로한 작가를 주로 떠올린다. 한국언론재단 빅카인즈에 이응준을 검색하면 847건 중 664건이 신경숙 관련 내용이다. 최근에는 이른바 ‘진보 진영’을 비판하는 글과 인터뷰를 두고 ‘우파 지식인’ ‘우익 작가’로 부르는 이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나온다. 산문집은 세속의 잣대와 시선과는 무관한, 또는 그 너머의 작가 이응준을 볼 수 있다.
이응준이 생각하는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자가 아니라 타인을 세상에 번역해 주는 사람”이다.
다시 개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응준은 훗날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해뒀다고 한다. 대신 책에 남길 묘비명은 정해뒀다. “개 같은 세상에서 개처럼 살면서 인간을 가장 미워하고 개를 가장 사랑했지만 노래를 잃지는 않았던 사내. 잠깐 이 별에 있다가 완전히 이별했으니, 개 같은 걱정일랑 하지들 마라. 다시는 만날 일 없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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