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공습경보에 숨어버린 ‘자유’

천남수 2023. 8. 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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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무기 사용을 가정해 국민대피 훈련을 하는 것은 마치 핵무기가 한반도 땅에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를 한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한반도에 핵이 폭발한다면 남북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 어쩌면 대응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 23일 오후 2시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통해서도 전파됐다. 물론 실제상황이 아닌 훈련상황이었다. 몇 주 전부터 거리 곳곳에는 민방공훈련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매스컴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까닭에 국민들은 차분하게 대피훈련에 응했다. 적의 공습에 대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방공훈련은 2017년 8월 이후 6년 만이다. 전쟁 이전 국지도발과 전쟁발발 시 국가총력전 연습을 통해 국가비상대비태세 확립을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을지연습 중 이날 공습 대비 훈련이 실시된 것이다.

매년 실시되고 있는 을지연습은 1968년 무장공비침투사건을 계기로 비정규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실시됐다. 각급 행정기관들이 연계해 시행되는 을지연습은 1976년부터 군사연습과 정부연습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을지연습은 전국적 규모로 실시되는 훈련이지만, 일반 국민들이 생활하는 데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공습경보 등 민방공 훈련을 실시할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교통을 통제하고, 국민들은 통제에 따라 대피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상황에 대비한 훈련에 참여한다.

을지연습은 관계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유사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세계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런 훈련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록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급박한 사이렌 소리와 민방위 복장을 한 관계자의 호각소리가 난무한다면, 필요성보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한순간에 깨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정부도 민방공 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의 자유로운 일상을 위해 훈련 실시를 자제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전 국민을 상대로 6년 만에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사람들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 그저 덤덤히 통제에 따랐다. 각급 행정기관과 학교에서는 매뉴얼에 따라 훈련에 참여했다.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훈련상황은 1970년대의 모습이 재현된 듯했다. 문득 공습경보가 다시 발령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당연히 북한의 도발이 현실화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북한의 현실적 위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한미일 동맹 강화로 북한이나 특히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가 조성된 것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사용에 대응하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행태다.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는 자유가 없는 나라다. 이번 공습경보로 대피한 것은 국민만이 아니었다. 국민의 자유도, 심지어 경제마저 대피시키고 말았다.

우리를 가장 위협하는 상대는 북한이다. 70년 전 전쟁은 멈췄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대화와 교류도 많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불안정하다. 특히 동아시아를 둘러싼 미·중 간의 대치는 한반도의 또 다른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한미일 공조강화가 북중러의 반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특히 북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다. 만약 한미일 동맹이 북중러와 정면으로 대치된다면, 그 전장은 한반도일 수밖에 없다.

을지연습이 시작된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오늘날 전쟁은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전과 심리전, 테러를 동반한 비정규전,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이버전, 핵 위협을 병행한 정규전 등 모든 전쟁을 혼합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핵전쟁의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가짜뉴스와 사이버전을 언급한 것이 이채롭다. 하여간 대통령의 언급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로 읽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실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전쟁이 발발한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안보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세계인들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상황은 우리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등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핵무기 사용을 가정한 국민대피 요령 등을 훈련한다는 것은 마치 핵무기가 한반도 땅에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한반도에 핵이 폭발한다면 남북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 어쩌면 핵무기 공격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핵무기는 1945년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살상력과 파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피해는 한반도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는 핵무기가 지구상에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핵사용에 대한 대응보다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상황관리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부가 할 일이다. 아예 핵사용이 없도록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다. 그런데 핵무기 공격에 대응하라니, 이는 국민에게 겁을 주는 것과 같다. 나아가 세계를 향해 한반도가 위험하다고 자백하는 것과 다름 없다. 무엇보다 국민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과 세계를 안심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공격에 대응하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자유에 반하는 행태다.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는 자유가 없는 나라다. 결국 이번 공습경보로 대피한 것은 국민만이 아니었다. ‘국민의 자유’까지 대피시키고 말았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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