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미디어의 미래] '뉴스쇼' 15주년 김현정PD "소리꾼 신명나게 판을 벌일 수 있도록 깔아줘야"

박재령 기자 2023. 8. 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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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의 뉴스쇼' 진행자 김현정PD
'비주류'였던 초창기… "성패 기본은 섭외와 질문"
"당사자 섭외 위주, 15분 인터뷰 위해 7시간 준비도"
"15년 전 돌아간다면 뉴스쇼 안 맡을 것 같아, 조금은 즐길 길 찾을 것"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단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로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진행자 김현정 PD가 '비주류'로 시작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시사프로그램 성패의 기본은 '섭외'와 '질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날 가장 궁금해하는 이슈를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로 프로그램 15주년을 맞은 김현정 PD는 '뉴스쇼'가 뼈를 갈아 넣은 '자식'이라며 진행하는 동안 포기한 것이 많아 돌아간다면 다시 진행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지상파 시사라디오, '100만 유튜버' 되다]

▲ 지난 24일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세 번째 세션 '질문의 힘 :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에서 발제하고 있는 김현정 PD. 사진=미디어오늘

지난 24일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세 번째 세션 '질문의 힘 :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에서 김 PD는 척박했던 '김현정의 뉴스쇼' 초창기 시절을 떠올렸다. 김 PD는 “그 시간대 청취율이 0에 수렴했다. 그래서 오히려 '너희 마음대로 만들어봐'하며 시작한 게 '뉴스쇼'”라며 “당시 전 남자, 박사, 정치인, 기자 등 일반적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기준에 해당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완벽한 '비주류'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성공하기 위해 매일 연구하던 '뉴스쇼'팀이 낸 결론은 '섭외'와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그날 아침에 가장 궁금해하는 이슈를 이슈 당사자에게 쉬운 말로 '직접' 묻자. 볼이 간지러운데 코를 긁지 말자는 게 김 PD의 표현이다. “2008년 런칭할 때 첫 인터뷰가 아프가니스탄 테러 조직 탈레반의 대변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무모했지만 탈레반 홈페이지에서 이메일을 찾아 섭외했다. '당사자주의'를 고심했던 결과였다.”

▲ 지난 24일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다양한 인물군을 인터뷰하며 '질문의 달인'이 된 김 PD가 이희정 미디어오늘 사장과 '질문'의 본질을 찾기 위해 대담을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오늘

BTS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인물군을 인터뷰하며 '질문의 달인'이 된 김 PD가 이희정 미디어오늘 사장과 '질문'의 본질을 찾기 위해 대담을 진행했다. 다음은 두 대담자의 일문일답.

- 15년 동안 주 5일 꼬박 아침 생방송을 한다는 게 저로선 상상이 안 된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면 4시 반에 도착한다. 편성국 앞에 가면 문이 닫혀 있고 신문이 6~7개 쌓여 있다. 그 신문을 집어 들고 옆에 연습장을 펴 놓은 채 쭉 정리한다. 7시20분부터 9시까지가 생방송이다. 빵으로 식사하면서 팀원들과 포털에 송고할 텍스트 기사 제목 작업을 하고 10시30분부터는 그 다음날 회의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12시 전에 반드시 10분 정도 자야 한다는 거다(웃음). 그래야 오후를 버틸 에너지가 생긴다. 이후로는 집에 가서 온라인으로 회의하고 아이도 챙긴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일을 하기 위해선 다른 한 명의 여성이 아이를 봐야 한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니 제가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더라. 아이들에게 '숙제해라', '공부해라' 잔소리하다가 저녁 뉴스까지 보고 나면 10~11시 취침한다. 그리고 다시 3시 30분 기상.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 하루에 4~5시간도 못 잔다는 것 아닌가.

“이제 리듬이 그렇게 잡혀서,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다.”

- 처음 '김현정의 뉴스쇼'를 시작할 때부터 이슈의 당사자에게 직접 질문한다는 '당사자주의'를 내세웠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왜 이런 방침을 세웠나.

“이슈가 터지면 참 다양한 방법으로 인터뷰할 수 있다. 기자가 나와서 브리핑할 수도, 시민단체를 연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힘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당사자가 머뭇거릴 때 생기는 공백조차도 메시지가 된다. 한 예로, 훈련병이 군대에서 뇌수막염을 두통이라고 잘못 진단받아 숨지는 일이 있었다. 그때 제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건 전문가, 기자 등이었다. 하지만 또 이렇게 하나의 사고로만 넘기고 대중들의 가슴은 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절절하게 이 사건을 보고 있는 사람을 찾자고 했다. 그렇게 사망한 훈련병 아버님에게 연락을 했는데, 처음에는 쌍욕을 하시더라. 인터뷰를 하면 죽은 내 아들이 돌아오냐면서.”

“그 이후로 매일 매일 연락을 드렸다. 절대 인터뷰를 조르지 않았다. 오늘은 어떠신지 문안 인사를 계속 드렸을 뿐이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먼저 말씀하시더라. '가슴이 답답해서 못 살겠다' 하시면서. 아버지가 울지도 않으시면서 담담하게 그 일들을 방송에 나와 풀어가셨다. 군대에 가서 본 아들의 첫 번째 모습,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들이 손을 잡으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라고. 의사는 의식이 없다고 했지만 아버님은 분명히 보셨다고 했다. 그때 저도 울고, 앞에 있는 엔지니어도 울고, 밖에 있는 PD도 울었다. 청취자들도 지금 출근길인데 눈물이 나서 운전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인터뷰가 있고 나서 기사가 포털에도 송고됐는데, 다음 날 군에서 발표가 났다. '군 의료체계 전면 재검토'라고. 이것이 당사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 '당사자'를 섭외한다는 게 모두가 알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뉴스쇼'만의 섭외 노하우가 있나.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마땅한 노하우가 없다. 그냥 죽어라 성실하게 하는 거다. 아까 말씀드린 아버님 사례처럼 누군가 언젠가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기는 순간이 온다. 이전에 '김영란법'이 한참 이슈였을 때 김영란 대법관께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으셨다. 막내 PD가 그때 한 달 동안 연락을 드렸는데 그때도 역시 조르지 않았다. 문안인사만 드리면서 꾸준히 연락했더니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생기시더라. 그 다음엔 대법관께서 먼저 인터뷰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두 번 했다.”

“2011년 당시 고 박원순 변호사와 안철수 교수가 단일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박 변호사가 그때 인터뷰를 하지 않았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단일화 공식 발표를 하고 나서 택시를 탈 때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그 택시 뒤에 탔다. 그때 정말 주변에 기자들이 많아서 정작 회견장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을 때였다. 박 변호사한테 '뉴스쇼 진행자 김현정입니다. 제 문자 계속 받으셨죠' 했더니 일단 내리라고 하시더라. 그 다음날 박 변호사가 정말 출연하셨다. 모든 언론을 통틀어 첫 인터뷰가 그때 이뤄졌는데 그 전에 매우 문자를 공들여 보내고 했던 게 효과를 발휘한 거다.”

▲ 25일 '김현정의 뉴스쇼'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현정PD. 유튜브 갈무리.

- 어렵게 섭외에 성공하고 난 뒤에는 어떻게 질문을 던지나. 질문에도 노하우가 있나.

“인터뷰어는 판소리판의 '고수'다. 인터뷰이는 '소리꾼'이다. 소리꾼이 신명나게 판을 벌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다는 뜻이다.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고수가 판을 까는 방법도 다르다. 일반인분들은 방송 경험이 없고 떨려서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편하게 그분들의 눈높이에서 장단을 맞춰주면 된다.”

“정치인들은 말을 잘한다. 대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말만 하고 나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다. 우리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말인데, 그 말을 할 생각을 잘 안 하신다. 이럴 때 제 원칙은 '반론 인터뷰'다. A당이 나오면 B당 입장에서, B당이 나오면 A당 입장에서 질문을 날카롭게 한다. 그럼 마음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이건 양쪽에서 욕먹는 길이다. '누구 편드냐'는 댓글이 막 달린다. 전문가가 나왔을 때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가장 축소한다.”

[관련 기사 : 홍준표, 라디오 생방 중 한동훈 질문 문제삼아 “전화 끊읍시다”]

- 그런 노련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평소에 어떻게 준비하시나.

“인터뷰는 '보물찾기'다. 예전에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많이 갔다. 거기서 보물찾기를 하는데 서울대공원의 지도를 내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보물 찾기 힘들다. 15분간 하는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시간제한 안에 답을 찾아야 하는 보물찾기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나 하기 위해 인터뷰이보다 더 많이 알고 들어가자는 목표가 있다. 그래야 그 사람 말이 어느 지점쯤에 있는 건지 알아챈다. '이만큼 가면 보물이 있겠구나' 모르는 척 질문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지도를 읽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15분짜리 질문을 준비하는데 정말 6~7시간 걸린 적도 있다. 근데 하다 보니 내공이 생기더라. 젊은 후배들 젊은 친구들 만나면 늘 이야기한다. 100만 원짜리 월급을 받는다고 100만 원어치만 일하지 말고 너를 위해 투자하라고. 그럼 고스란히 그게 자신의 내공이 된다고. 그러면 그 다음엔 50만 원어치만 일을 해도 1000만 원의 값어치를 얻어낼 수 있다.”

- '뉴스쇼'에 대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너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

“기계적 중립은 나쁜 건데 중립 자체는 언론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다. 어떤 차이가 있냐면, '기계적 중립'은 어느 사안이든 반드시 가운데 있는 거고, '중립'은 사안에 따라 나의 성향,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은 채 균형을 가지고 사안을 보는 거다. A당이 옳은 소리를 하면 A당이, B당이 옳은 소리를 하면 B당이 잘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너희는 어느 진영인데 왜 이번엔 이랬다 저랬다 하냐는 식이다. 생방송할 때 우리 댓글창을 보면 한 페이지 안에 '국힘 대변인', '민주당 대변인'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너희들 정체성을 똑바로 해'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럴 때는 있다. 양당 의견이 서로 일리가 있고 뚜렷하게 대립할 때는 양쪽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합리적인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중계한다. 대중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 그게 언론의 역할,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도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정치를 하려고 했으면 벌써 했다(웃음). 정치할 생각 없고, 전 언론이 사회의 나침반이라고 생각한다. 나침반은 정확한 북극을 찾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떤다고 하더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그 역할을 하고 싶다. 사람의 능력치와 상관없이 경험이 쉽게 쌓이는 건 아니지 않나. 쌓였으니 사회 공헌하는 것도 제 몫이다 생각하고 방송을 열심히 하겠다.”

▲ 지난 24일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다양한 인물군을 인터뷰하며 '질문의 달인'이 된 김 PD가 이희정 미디어오늘 사장과 '질문'의 본질을 찾기 위해 대담을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오늘

- 15년 전으로 돌아가도 '김현정의 뉴스쇼', 다시 할 건가.

“그동안 인터뷰 꽤 많이 했는데, 이 질문은 처음이다. 15년 전으로 돌아가면 뉴스쇼 진행 안 한다. 다른 답을 기대하셨겠지만 저는 아니다. '뉴스쇼'는 제 자신도 아닌 제 '자식'이다. 이 녀석을 키우느라 뼈를 갈아 넣었다. 15년 동안 얻은 것도 굉장히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하는데 마음 놓고 약속을 잡은 적이 별로 없다. 인터뷰에서 보물을 찾으려면 정신을 엄청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맑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사람들하고 즐기면 정신 집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다 포기했다. 가끔은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싶은데 두 손에 꽉 진 것들 때문에 하나만 더 욕심 내도 다른 걸 놓칠 것 같았다. 더 욕심내지 말자, 그렇게 지내온 15년이었다. 자식은 낳으면 잘 키워야 한다. 다음 생이라면 조금은 제가 즐기는 쪽으로 살겠다.”

- 마지막으로, 한국의 예비 저널리스트, 미디어 업계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한국에서 제일 신기한 게 '일기예보'라고 한다. 어떻게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경우가 있냐는 것이다. 미국이 전국이 비가 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그만큼 한국은 '동질성'을 가진 나라다.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잘 용납하지 못한다. 그냥 모두가 다 비슷해야 한다고 자라왔던 것 같다. 내 편은 늘 옳고, 상대편은 늘 틀린다. 가끔은 상대를 악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15년 방송을 진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분열'이다. 예전에도 분열은 있었는데 지금처럼 갈라질 수 있는 모든 형태로 갈라진 건 처음이다. 근데 우리는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하지 않나. 다른 생각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저널리스트가 같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그 길을 찾아줘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 주셨으면 좋겠다. 저도 부족하지만 계속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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