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피하세요"...MBC 드라마국 흥분시킨 '연인', 그 역전의 비결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금토 드라마 <연인>이 둘째 주 주인공 길채(안은진)의 '서방님 피하세요'를 기점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8월 4일 동시에 방송을 시작한 <소옆경> 시즌2와 <연인>, 첫 화는 <소옆경> 시즌2가 가뿐히 승기를 잡았으나 지난 6화 성적표는 <소옆경> 시즌2가 6.1%. <연인>이 8.8%로 <연인>이 앞서고 있다. MBC 금토 드라마가 SBS 금토 드라마를 이긴 게 대체 얼마만인지. 역전의 비결이 뭘까? 일단 주인공 길채가 예쁜 척 하기를 끊은 게 한몫을 했지 싶고 또 운 좋게 호재가 따랐다. SBS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의 주인공을 초반에 하차시킨 유례없는 헛발질, 그리고 TV조선 <아씨 두리안>이 그 주에 종영을 한 것도 살짝 보탬이 됐을 게다.
방송 전에 드라마 <연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광복절 특집극 <절정>, 일일극 <제왕의 딸 수백향>,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을 쓴 황진영 작가 때문이다. 작가가 사극을 워낙 짜임새 있게 잘 써왔고 MBC가 또 사극 명가이지 않나. 지지부진했던 2021년 MBC 드라마를 일으켜 세운 것도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과 남궁민 씨 드라마 <검은 태양>이었으니까. <연인>의 김성용 감독이 <검은 태양>도 연출했다. 이 셋이 모였으니 어찌 기대를 아니 하리요.
그런데 뚜껑이 열리는 순간 '이게 뭐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때는 효종 10년, 사헌부 관료가 이미 폐기되었어야 옳을 사초에 적혀 있는 이장현이란 사내의 행적을 쫓게 되는데 소현 세자를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는 기록이 사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혜민서에 갇혀 있는, 이장현의 측근인 소리꾼 량음으로 추측되는 광인의 뒤태를 보여주고 그 다음 장면이 바닷가에 피범벅이 되어 서있는 비장한 기색의 남궁민이다. 바로 이 사람이 이장현이다.
병자호란 후 20여년이 흐른 효종 10년에 사헌부에서 왜 이장현을 추적하는 걸까? 역사에 따르면 효종은 바로 그 해, 1659년에 타계를 하는데 그가 누군가.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갈 때 동행한 동생 봉림대군이 아닌가. 짐작컨대 이장현과도 가까이 지냈을 터,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효종이 이장현을 복권시켜줄 마음을 먹은 것으로 예측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1636년, 병자호란 발발 직전의 능군리 마을이 나온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 상식인 조선시대가 배경이거늘 처녀 총각이 사사로이 어울려 사랑 고백을 주고받다니.
황진영 작가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떠올리며 썼다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인 남북전쟁은 1860년대 아닌가. 그보다 200여 년 전인 조선시대에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처녀 총각이 어울려서 노닥인다?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나. 시대와 문화, 풍습이 판이하게 다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설정을 가져온 것이 득보다는 오히려 실이지 싶다. <연인>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진취적인 여성이 전쟁 통에 식솔들을 지켜낸다는 점에서 설정이 같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관계 설정이 엇비슷하다 해도 어차피 <연인>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가는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선의 역사가 스포일러니까.
머지 않아 이장현이 소현 세자를 따라 청나라에 갈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에 따르면 8년 뒤 1645년 2월에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 세자는 두 달 뒤에 갑자기 숨을 거둔다고. 소현 세자가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인조가 며느리 강빈과 손자들까지 차례차례 처단했다고 하니 이장현 또한 무사했을 리 없지 않나. 하지만 첫 화 시작 부분에 너무 대놓고 비극적인 장치를 해놓은지라 오히려 반대로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조와 대신들이 화친이냐 싸움이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성을 지키던 승병이 얼어 죽은 장면, 그리고 인조가 고양이 쥐 생각한답시고 앞으로 닭고기를 상에 올리지 말라고 명하는 장면,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출이 좋았다. <연인> 1,2화 보고 마음 접으셨던 분들, 4화부터 다시 보시길 권한다.
정석희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MBC,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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