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14. 산에서 만나는 '돌탑'의 미학

최동열 2023. 8. 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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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쉰움산 중턱에서 만나는 돌탑군

■산에 어울리는 유일한 인공 장식품

-정성과 기원의 산물

산은 자연의 영역이다. 임도(林道)를 닦든, 비탈길에 계단을 만들든, 벼랑을 건너뛰는 철다리를 놓든, 인공의 기교는 그 어떤 것도 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산길 들머리에 예쁘게 단장된 화단조차도 한복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입은 것처럼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결벽적 비호감일까. 그러할진대 산을 마구잡이로 깎아 노천 광산을 개발하고, 에펠탑처럼 높디높은 철탑을 세워 산등성이에 거미줄처럼 고압선을 가로지르는 인공적 개발의 극치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람이 헤집고, 깎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산에는 상처를 내고, 불편한 부조화를 연출해 내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산에 어울리는 인공이 딱 하나 있다. 돌탑(塔)이다. 인간이 산에서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절묘한 장식품, 돌탑은 형태도 참으로 다양하다. 아무렇게나 손 가는 대로 툭툭 돌을 던져놓듯이 쌓은 돌무더기가 있는가 하면, 큰 돌과 작은 돌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마치 조각품을 빚어놓은 듯 정교하게 쌓아 올려진 공든 탑도 많다. 또 그런 돌탑이 한두 개 외로이 서 있는 곳도 있고, 마치 크고 작은 여러 돌탑이 경연을 벌이듯 무리를 이룬 곳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 정선 가리왕산 정상의 돌탑

어떤 경우든 돌탑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진중한 시간이다. 돌탑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지극정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의 정성이 더해져 돌탑 이라는 피조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절로 경외감이 들기 마련이다.

맨 처음 한 사람이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큰 바닥돌 하나를 깔았다면 그 위에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는 돌이 또 하나 얹어지고, 무병장수, 취업, 승진, 발복을 바라는 등등의 기원돌이 켜켜이 더해져 결국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탑 하나가 깊은 산길에 서게 된다. 그 돌탑 틈 사이사이로 어느 때는 눈보라 무서리가 내려앉고, 오뉴월 빗줄기가 흙먼지를 씻어내고, 이끼가 미장 한 겹을 더했으니, 돌탑은 인간의 노력에 자연까지 아낌없이 힘을 보탠 합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분명 인공의 피조물이면서도 자연의 영역에서 전혀 거추장스럽지 않고, 오히려 산을 더욱 빛내는 보석 같은 장식품이 된 것이다.

■돌탑의 의미, ‘적선(積善)’과 닮은꼴

사실 유래를 더듬어 보면, 돌탑이 산에 주로 들게 된 데는 우리들의 뿌리 깊은 경배 의식과 무관치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산뿐인 우리 땅에서 산은 흔하디흔한 존재였음에도 선조들은 예로부터 산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곳에 뿌리내린 큰 나무나 바위까지도 경배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산은 우리에게 각별한 존재였고, 의지처였다. 전란이 터지면 몸을 숨기고 피하는 곳도 산이었고, 녹림의 무리를 모아 불만스러운 세상을 향해 한바탕 소란을 피울 힘을 키우는 터도 산이었다. 또 심신을 수련하는데도 산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고, 세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제 몸 하나 누일 땅 한 평 없는 만년 서러운 을(乙)들에게 화전(火田)이라는 방법을 통해 밭뙈기를 제공하고, 철마다 나물이며 약초를 스스로 키워내는 곳도 산이었으니, 산만큼 든든한 존재를 또 어디서 찾겠는가.
 

▲ 인제 백담사 앞 하천의 수많은 돌탑

신령님도 주로 산에 살았고, 도사님이 도를 닦는 곳도 산이었으며, 부처님이 중생들을 만나는 곳도 깊은 산사(山寺)였다. 산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이 날을 받아 산에 올라 제물을 바치면서 산을 대접하고, 가정의 안녕과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산메기(산멕이·산맥이)’ 의식이 강원도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승돼 온 것도 산을 각별한 존재로 모시는 일반의 인식이 산간 신앙의 형태로 발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의지하면서 삼가고 섬기는 곳이 산이었기에 사람들은 불탑(佛塔)을 쌓듯, 높이 촛불을 켜듯 산길에 돌탑을 쌓아 올렸다. 특히나 사람들이 쉬어 갈 만한 전망 좋은 길모퉁이나 바위 언덕, 산꼭대기에는 그곳이 특별한 곳임을 웅변하듯 어김없이 돌탑이 자리를 잡았다.

태백산이나 소백산, 치악산, 가리왕산 등등. 설악산 백담사 앞 너른 하천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의 돌탑군(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비롯해 명산(名山)이나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유명 산은 물론이고, 작은 도시의 안산이나 마을 뒤편의 야산에 이르기까지 우리산에는 꼭대기에 크고 작은 돌탑을 이고 있는 곳이 정말 많다. 산꼭대기로 오르는 등산로 길목에도 도처에 돌탑군(群)이 널려 있는 것을 보게 되니 우리산은 돌탑으로 무게와 높이를 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쌓아 올려진 돌탑은 가장 서민적인 정성과 구도의 또 다른 표현이고, 협동의 산물이다.

▲ 원주 치악산 정상의 돌탑

탑을 쌓을 자리를 내줬다고 산이 대가를 요구하거나 비용을 요구하는 일은 없으니 오직 지나가는 나그네는 정성과 작은 관심만 보태면 되는 일이다.

누군가가 처음 시작한 미완의 돌탑에 작은 돌 하나를 얹는 미미한 수고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좋은 일에 힘을 보탠 것 같은 뿌듯함에 잠시 미소가 번진다는 데서, 그것은 적선(積善)과도 행위의 결과가 통하는 일이다. 내가 먼저 돌을 얹는 선행(先行)이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후행(後行)을 부르고, 그로 인해 종국에는 미완의 탑이 완성되고 마는 과정 또한 적선이나 기부의 그것과 과정이나 결과가 참으로 닮았다.

오직 너와 나의 정성과 작은 수고만 있으면 기어이 완성되고 마는 산길의 돌탑처럼 이웃을 챙기는 적선의 탑이 우리네 마음속에 높이높이 쌓이기 바란다. 산길의 돌탑이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공의 피조물이듯, 적선의 탑은 사람 사는 도시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관계의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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