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44년 만에 찾은 딸…'미아'가 '고아'로 둔갑된 해외입양의 진실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4일 방송된 '미씽:사라진 소녀와 꽃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장영남, 방송인 제이쓴,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꽃신 신고 사라진, 6살 어린 딸
때는 1975년 5월, 충청북도 청주시. 24살 태순 씨네 집 앞에 꼬마 여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를 하고 있어. 그 중에는 태순 씨네 맏딸인 6살 경하도 있어.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 하(夏)' 자를 써서 이름이 신경하야.
태순 씨는 18살에 결혼해서 19살에 첫째 경하를 낳았어. 두 살 터울로 딸과 아들을 더 낳아서, 모두 삼남매야. 집안 살림도 변변치 않은데 애들도 어려서 정신이 없는 경하네. 그런데 경하는 나이가 6살 밖에 안 됐지만 딱 'K-장녀'야. 바로 아래 여동생도 잘 챙기고, 6개월된 막내도 본인이 업고 다녀.
그런데 경하는 고집이 좀 있었어. 그 당시에는 '리어카 사진사'라 불리는 '이동 사진관'이 인기였어. 궁궐이나 유명 관광지 배경판을 리어카에 싣고 동네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야. 여기에 꽂힌 경하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어. 엄마는 결국 쌈짓돈을 꺼내서 어쩔 수 없이 경하의 사진을 찍어 줬어. 이렇게.
경하가 또 꽂힌 게 있었어. 옆집 영숙이의 '꽃신'이야. 경하는 맨날 영숙이네 가서 그 꽃신을 빌려왔어. 그 모습을 보니, 태순 씨는 괜히 미안하고 민망해. 경하한테 그만 좀 빌려오라 말해도, 경하는 듣지 않아. 결국 엄마는 경하에게 꽃신을 사줬어. 그렇게 얻은 꽃신을 경하는 매일 신고, 깨끗하게 닦으며 애지중지 다뤘어.
며칠 후, 태순 씨는 친구들과 놀겠다는 경하를 집에 두고,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시장에 나갔어. 두시간 쯤 후 엄마가 돌아왔는데, 집 앞에서 친구들과 놀던 경하가 안보여.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경하가 "엄마 찾는다"며 갔대. 집 앞 자전거포 주인아주머니한테 경하를 봤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네 간다"고 하며 가더래. 경하네와 할머니댁은 가까웠어. 경하는 평소에도 할머니댁에 혼자 가서 저녁도 얻어먹고 가끔 자고 오기도 했어. 그래서 엄마는 안심했어.
다음날 아침, 태순 씨는 집 근처에서 할머니네 사는 경하의 삼촌을 마주쳤어. 근데 삼촌이 혼자야. 경하는 왜 안 데리고 왔냐고 물으니, 삼촌은 "경하 어제 안 왔는데요?"라고 말해. 이 얘기를 들은 엄마.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엄마는 경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어. 그런데 다 찾아봐도, 그림자도 안 보여. 이대로 하룻밤이 더 지나면, 이틀이 넘어가는 거잖아. 일 나갔던 아빠도 얼른 돌아왔어. 엄마는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도 했어.
"경하 할머니네 집 가려면, 거기에 수박밭이 있어요. 그때 인분통이 있었어요. 동그랗고 크게. 혹시 거기 빠졌나 싶어서 그것도 다 휘저어 보고… 경하를 19살에 낳았어요. 우리가 나이도 어리고, 생활도 어려울 때 경하를 낳은 거예요. 그래서 참 불쌍하게 살았어요. 경하가…"
-한태순, 신경하 엄마
택시운전을 하던 아빠도 가는 곳마다 두리번거리며 혹시라도 비슷한 애가 있나 찾기 바빴어.
"택시로 돌아다닐 때마다 동네방네 다 쳐다보고 다니고 맨날 그랬지. 길거리 애들만 보면 다 '우리 경하 아닌가' 그런 생각 하면서. 손님들한테도 혹시 어디 시골동네 가면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 애가 있었나…"
-신중호, 신경하 아빠
이렇게 하루, 이틀, 날은 계속 지나가. 하지만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아. 기다려보라, 연락 오면 연락 주겠다는 거야. 엄마가 매일 경찰서를 찾아오니, 경찰도 보기 딱 했는지,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소개시켜 줬어.
태순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에 가서 우리 경하가 어디 갔는지 물었어. 점쟁이는 "없는 자식인 셈 쳐요. 한 16년은 지나야 찾겠네"라고 말했어. 16년 뒤면 경하가 22살이야. 기가 막혀. 도대체 경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사이에 태순 씨네 살림은 엉망이 됐어. 태순 씨는 경하를 찾는 데만 매달릴 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었어. 두 아이가 더 있으니까. 태순 씨는 미용기술을 배워서 미용실을 오픈했어. 그리고 거울 한쪽에, 경하 사진을 붙여놨어. 손님들이 누구냐 물으면, 6살 때 잃어버린 딸아이라고, 혹시라도 비슷한 애를 보면 꼭 연락달라고 부탁했어.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여년이 훌쩍 지났어. 경하가 살아있다면 10대 후반의 숙녀가 됐겠지. 엄마 태순 씨는 '경하일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어. 경하네 사정을 잘 아는 미용실 단골 손님인 형사가, 경하 또래의 여자 아이가 변사체로 들어왔다며 확인하러 오라고 연락한 적이 있어. 또, 술집에서 경하와 비슷한 아가씨를 봤다는 손님도 있었어. 태순 씨는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확인하러 갔어. 그런데 엄마라 알 수 있는 경하만의 얼굴 특징들, 눈매랑 귓바퀴 모양 같은 게 전혀 달랐어. 찾으러 갈 때는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해도, 나올 땐 '그래도 이런 곳에 없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대.
▲ 가짜 경하
엄마 태순씨는 실종 전단지를 만들기로 하고 가만히 경하의 신체 특징을 떠올렸어. 경하가 3살 때 연탄 화덕에 데어 왼쪽 배꼽 밑에 화상 자국이 있어. 그땐 정말 속상했는데, 그게 아이 몸에 남은 유일한 증표가 됐어. 그리고 경하는 또래에 비해 정말 똑똑했는데, 아빠 직업을 기억했어. 태순 씨는 이런 내용을 실종 전단에 적었어.
이건 당시 '미아 찾기 범국민 캠페인' 신문 광고야. 거기에 경하의 얼굴도 들어갔어. 효력이 있었을까?
어느날, 신문을 봤다며 자신이 아는 사람이 신경하 씨랑 비슷하다는 제보가 들어왔어. 나이도, 얼굴도, 이름도 모두 비슷하대. 이렇게 구체적인 제보는 15년만에 처음이야. 예전에 점쟁이가 경하를 16년만에 찾는다고 했잖아? 소름 돋게도, 그 기간이 비슷해.
연락이 온 곳은 부산이었어. 제보자 말로는, 부산에 있는 고아원에서 비슷한 이름을 본 적이 있대. 엄마는 곧장 부산 고아원으로 찾아 갔어. 신경하를 찾으니 고아원 담당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전에 고아원에서 나갔다고 했어. 엄마가 한 발 늦은 거야. 그래도 다행히, 고아원 담당자가 아이가 있는 곳을 안대. 취업을 하려고 기숙사가 있는 학원으로 갔다는 거야. 엄마는 다시 그 학원으로 달려가서 신경하를 찾았어.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시내에 있는 한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을 하느라, 학원을 그만뒀다는 거야. 그런데 그 세무사 사무실의 이름은 모른대.
부산 시내에만 세무사 사무실이 180개가 넘어. 태순 씨는 세무사 협회 사무실에 앉아서 아침 9시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세무사들에 전화를 걸어 최근 취직한 사람 중에 '신 양'이라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어. 그렇게 한참을 전화를 돌린 후에, 드디어 신 양이 있다는 사무실을 찾았어. 태순 씨가 당장 찾아 가려는데, 그 아가씨가 직접 사무실로 찾아오겠대.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 태순 씨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고, 20살 또래의 앳된 처녀 한 명이 들어서. 딱 보자마자, 전에 봤던 아가씨들하고는 달라. 생김새가 내 딸이 맞는 거 같아. 엄마는 얼른 배의 흉터부터 확인했어. 근데, 잘 안 보여. 태순 씨는 "혹시.. 아빠 직업이 뭐였는지 기억나니?"라고 물었어.
"택시 운전.. 엄마, 나 경하 맞아요…"
드디어 딸 경하를 찾았어. 15년만에. 태순 씨는 경하의 머릿결이 철사같이 굵은 아빠랑 똑 닮았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15년 만에 딸을 찾은 소식은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어.
기적 같은 만남에 얼마나 기뻤겠어. 그동안 엄마 없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태순 씨는 경하를 안고 쓰다듬고 얼굴을 보고 또 봤어. 그런데 차림새를 보니 마음이 안 좋아. 당장 백화점에 데려가서 좋은 옷을 사 입혔어. 그리고 그 길로 경하를 집으로 데려왔어. 15년만에 가족 다섯 명이 완전체가 된 거야. 태순 씨 마음 한 켠에 늘 있던 우울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거 같았대.
그렇게 경하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지 3년쯤 됐을 무렵. 경하의 행동이 좀 이상해. 어느날 아침 태순 씨가 눈을 떴는데. 경하가 없는 거야. 딸이 사라진 트라우마가 있던 태순 씨는 불안한 마음에 부랴부랴 연락했어. 경하가 전에 살던 부산에 왔다고, 친구들이랑 좀 지내다 가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야. 경하가 집에 마음을 못 붙이는 모습에, 어느날 태순 씨가 집이 불편하냐고 물어봤어.
"자꾸 경하가 (부산으로) 가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너 왜 자꾸 가니? 불편하니 집이?' 이러니까.. '엄마 미안한데, 내가 엄마가 찾는 경하가 아니에요' 그러더라고. '그럼 뭐야 너?' 하니까, '죄송해요. 엄마를 보는 순간 저 여자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 거짓말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태순, 신경하 엄마
15년 만에 찾은 경하는 진짜 경하가 아니었어. 가짜 경하는 5살 때 보육원에 맡겨졌대. 엄마가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떠났는데, 영영 안 나타났다는 거야. 그러다 태순 씨를 만났고, '이 사람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하게 됐다는 거야.
지난 3년간 같이 살면서, 단 한순간도 내 딸이 아닐 거라고 의심한 적이 없던 태순 씨는 하늘이 무너졌어. 그리고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진짜 경하가 생각났대. 우리 경하도 이렇게,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겠구나.. 너무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짜 경하가 안쓰러웠대.
더 충격적인 건, 태순 씨의 남편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처음에 (경하를) 데리고 대문으로 들어오는데, 나는 딱 보니까 (경하가) 아니더라고 얼굴이. 우리 경하하고는, 우리 애들하고는 생김새가 벌써 달라. '우리 경하 아니네?' 내가 그랬거든.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맞다고 자꾸만 우기고 그러더라고. 명절 때 되면, 그런 방송만 나오면 울고불고 그래서. 그냥 딸로 생각하고, 그냥 같이 살자.. 난 그냥 이해했지."
-신중호, 신경하 아빠
얼마 후 가짜 경하가 결혼을 하게 됐는데, 태순 씨는 결혼 지참금도 보내주고 결혼식에도 참석했어. 심지어 아빠, 엄마 자리에 나란히 혼주로 앉아 참석했어. 가짜 경하는 그 후에도 가끔씩 전화를 걸어오곤 했대.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라며. 가짜 경하도 부모가 너무 그리웠던 거야.
▲ 44년만에 진짜 경하와의 재회
엄마 태순씨는 진짜 경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했어. 일단 과자 봉지에 실종 아동 광고부터 냈어. 혹시 죠리X 과자에 실종 아동 광고가 실리는 거 본 적 있어? 이 과자를 만든 크XX제과는, 업계 최초로 과자 포장지에 실종 아동 광고를 실었어. 실제로 이 광고를 보고 52년만에 동생을 찾은 사람이 있었대.
이건 크XX제과 측이 '꼬꼬무'를 위해 이번에 특별 제작해준 경하 얼굴이 담긴 실종 아동 광고야. 경하 엄마는 이렇게 광고를 냈고, 미아찾기 행사라는 행사는 죄다 참석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대 새댁이었던 엄마는 어느덧 60대가 됐고, 꽃신을 신고 사라진 경하는 40대가 됐어.
그러던 어느날 아침,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어. 경하를 미국에서 찾았다는 거야.
"19년도 10월 4일 (오전) 10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뜨는 거예요. '누구세요?' 그러니까, '신경하 엄마죠?' 그러는 거야. '네' 그러니까. '325캄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325캄라가 뭔데요?' 하니까, 미국에 있는 사람이 한국 입양아들하고 이게 협력해서 찾아주는 그런 단체라고. '그러면 경하가 어디 있느냐' 하니, 미국에 있대."
-한태순, 신경하 엄마
태순 씨 생각에 불현듯 뭔가가 탁 떠올랐어. 3년 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국내의 한 단체에 본인의 DNA 정보를 등록했었어. 그 DNA 정보를 미국의 입양인 단체에 등록된 DNA 정보와 대조해 봤는데, 90% 일치하는 사람이 나왔다는 거야. 그런데, 장소가 미국? 입양아? 이게 다 무슨 말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야. 태순 씨는 딸을 한 번 잘못 찾은 경험이 있으니, 일단 의심부터 들어.
"깜짝 놀랐죠. 그러면 미국 어디에 있냐, 그때서부터 내가 막 캐묻는 거야. 미국 어디에 있냐 물으니, '어머님, 확실한 건 내일 알려드릴게요'라고 해. 답답해서 내가, 나한테 전화한 사람한테 계속 전화를 한 거야. 전화를 너무 많이 하니까 전화를 받고 메일 주소를 준 거예요. 경하 메일 주소를…"
-한태순, 신경하 엄마
태순 씨는 부랴부랴 영어 잘하는 막내 아들한테 부탁해서 이메일을 보냈어. 답장이 왔어. 첨부파일엔 사진 한 장이 있었어. 바로 이 사진이야.
얼굴이 경하랑 많이 닮았지? 그런데 엄마는 얼굴보다도 발에 신은 꽃신에 시선이 갔어.
"(메일로) 사진이 왔는데 저 신발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애는 안 보이고 신발이 보이더라니까. 내가 신발을 하도 생각하고 있어서. 애는 맞는지 모르겠는데 신발은 맞다고 그랬다니까. 그때서부터는 확신을 가진 거죠."
-한태순, 신경하 엄마
경하라는 확신이 섰으니, 당장 통화를 해봐야지. 무려 44년 만이야. 당시 6살이었던 딸은 50살이 되었어. 그렇게 이뤄진 경하와 엄마 태순 씨의 통화.
"경하야.. 어떻게 거기까지 갔어…"
엄마는 영어를 못하는데, 한국말을 못하는 딸은 영어로만 얘기해. 그래도 태순 씨도, 경하도, 전화기 너머로 펑펑 울었어. 통화를 하면서, 당장 서로 비행기 표를 끊겠다고 해. 결국 경하가 한국으로 오기로 했어. 그날부터 엄마는, 영어공부를 시작했어. 엄마는 한번도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어. 특히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어떤 한 문장을 많이 연습하셨어.
드디어 경하를 만나는 날. 태순 씨는 공들여 화장을 해. 경하한테 초라한 모습은 안 보이고 싶었거든. 혹여나 경하에게 부담이 될 까봐서. 공항으로 가는 길.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공항에 도착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도 지루한 줄 모르겠어. 드디어, 전광판에 경하가 탄 비행기가 도착했다고 떴어. 긴장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태순 씨. 드디어 경하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고, 태순 씨는 44년 만에 만난 딸을 끌어 안고 눈물을 흘렸어.
"경하야.. 어떻게 살았어… 조그맣던게 이렇게 컸어.. 아임 쏘 쏘리. 미안해…"
엄마가 경하에게 해주고 싶다던 영어는 '미안하다'는 거였어. 엄밀히 얘기하면, 엄마가 잘못한 건 없어. 하지만 태순 씨는 지난 세월을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어.
"이만한 애를 잃어버렸는데, 덩치가 나보다 더 큰 걸 안으니까. 뭐라고 표현을 해야 될까. 그냥 이게 뭔가… 하면서, 너무 흥분돼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애를 안은 순간에…"
-한태순, 신경하 엄마
44년을 떨어져 살았는데도, 두 사람 너무 닮았어. 특히 두 사람의 비슷한 나이대였을 때의 사진을 보니, 똑같이 생겼어. 외모만 봐도, 영락없이 모녀 사이야.
그런데, 우리는 지난 44년간 경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해. 도대체 6살짜리 꼬마는 어쩌다 미국 입양아가 된 걸까. 그 의문을 파헤친 끝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있어.
▲ 사라진 그날의 진실
경하는 자라는 내내 고이 간직하고 있던 서류 한 장을 내밀었어. 미국에 입양갈 때 갖고 갔던 '여행증명서'라는 거야.
여행증명서에는 경하의 신상정보가 담겼는데, 태어난 곳은 '서울', 주소는 '합정동 382-14', 생년월일은 '69년 12월 20일'로 적혀 있어. 경하의 진짜 고향은 충북 청주이고, 생일은 70년 7월 여름이잖아. 모든 정보가 실제와 달라.
경하 사진도 있는데, 이 원본을 보면 아까 '리어카 사진관'에서 찍은 것보다 경하가 성장한 모습이야. 사진을 뒤집어 보면, '백경화'라고 적혀 있어. 원래 이름은 신경하인데 이름도 달라. 이름 발음이 '경화'와 '경하'가 비슷하다 해도, 성이 왜 '신'에서 '백'으로 바뀐걸까.
그럼 '합정동 382-14' 주소지는 어딜까. 여기는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주소야. 입양기관이 경하의 주소지로 돼 있었어.
여행증명서의 다른 면에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민인 백경화 씨가 입양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가는 것을 허용할 것을 관계자 모두에게 요청합니다' 라고 쓰여있어. 날짜는 1976년 2월 4일이야. 경하는 1975년 5월 9일에 실종됐어. 입양은 1976년 2월 4일이야. 그 9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답은, 경하의 기억 속에 있어. 1975년 5월 9일 경하가 사라진 그날의 기억을 정리하면, 경하는 엄마랑 동생들이 시장에 가고 평소처럼 집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어. 그 때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통닭을 들고 있었어. 경하도 처음 보는 아줌마야. 그 아줌마는 경하에게 "얘, 너희 집에 동생 태어났지? 그래서 엄마가 너 이제 필요 없대. 그러니까, 나 따라오렴"이라 말했어. 실제로 막냇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야. 경하는 이 여자를 따라 기차역으로 갔어.
아줌마를 따라 기차에 올라서자 기차문은 닫혔고, 경하는 그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어. 얼마 후 깨어보니, 옆자리에 앉았던 아줌마가 없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경하도 따라 내렸어. 경하가 내린 그 곳은, 충북 제천역이었어. 생전 처음 와보는 곳이야.
경하를 데려간 그 아줌마, 누구였을까? 지금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단서는 있어. 남동생이 태어난 걸 아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 아줌마는 경하를 기차에 태우고 사라졌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과연 이 아줌마의 목적은 뭐였을까? 만일 돈이 목적인 유괴라면, 부모한테 연락을 해야지. 막내가 태어난 걸 아는 사람이라면, 경하네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그럼, 데려가 키우려고 한 걸까? 그러기엔 경하를 그냥 두고 사라졌잖아. 아니면, 아이를 원하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유괴한 걸까? 그런 목적이라면, 경하보다 좀 더 어린 아이를 원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경하를 끝까지 데려가지 않고 중간에 사라졌잖아. 그럼 일부러 미아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닐까.
제천역에 내린 6살 경하는 앞에 보이는 어른들 꽁무니를 쫓아갔어. 기차역을 빠져나가는데 눈 앞에 경찰서가 보였어. 경하는 경찰서에 들어가서 길을 잃었다고, 엄마를 찾아달라 했어. 잠시 후 경하는, 경찰이 태워준 지프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어. 도착한 곳은, 제천의 한 고아원이야. 누군가 경하에게 이름을 물었어.
"내 이름은 신경하, 6살이에요. 엄마, 아빠, 여동생도 있고 남동생도 있어요. 남동생은 아주 아기예요. 할머니도 있고 삼촌도 있어요."
물론 정확한 집주소나 사는 곳의 지명은 모를 수도 있어. 하지만 경하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알았고, 엄마가 경찰서에 실종 신고도 했어. 심지어 제천과 청주는 같은 충북이야. 부모를 찾아줄 의지가 있다면, 집 찾아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런데 길을 잃었다는 아이의 집을 찾아주려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어.
▲ 미아를 고아로 만든 '서류 고아'
충북 제천은, 충북선, 태백선, 중앙선 3개의 철도 노선의 경유지야. 그래서 당시 제천역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대. 혹시 경하도 버려진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여겨진 걸까?
이건 경하가 고아원에 도착해서 처음 찍은 사진이야. 경하는 여기에서 지내다보면 곧 엄마가 찾아올 거라 믿었어. 그런데 어른들은 '넌 엄마 아빠가 버린 애야. 네 이름은 이제부터 백경화야'라고 말했어.
"만약에 '신경하'로 한국에 접수가 돼 있잖아요? 내가 벌써 찾았어요 왜냐. 이름을 '신경하, 신경화, 신경아' 애가 똑바로 말을 안할 수도 있으니, 이걸 내가 경찰청에다가 다 올렸어요 그렇게. 그 서류가 고아원마다 다 갔고, 팸플릿 붙일 때 다 그 이름으로 붙어있고. 그렇게 했으니, 찾으면 찾을 수 있었다니까."
-한태순, 신경하 엄마
태순 씨는 아이의 이름이 발음상 잘못 기재될 것까지 고려해서 경하를 찾았어. 그런데 경하는 이름 뿐만 아니라 성까지 '신'에서 '백'으로 바뀌어 있었어. 그럼 성은 왜 바뀌었을까? 당시 고아원 원장은 외국인 이었는데, 성이 화이트(white) 씨야. 그래서 한국 이름으로 성이 '백(白) 씨'였던 거야. 그 원장의 성을 따서, 신경하가 '백경화'가 된 거야.
그럼 경하는 고아원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당시 고아원에서 작성한 문서에 힌트가 있어.
'입양 상황에 대해 설명하라'는 항목에 '부모양육포기', '부모사망', '버려진 아이' 중 체크를 해야하는데, 경하는 '버려진 아이'에 체크가 됐어. 경하는 버려진 게 아니라 부모가 애타게 찾던 실종된 아이인데, 이렇게 표기를 해둔 거야. 다른 문서를 보면, 경하는 굉장히 외향적이고 어른들하고도 잘 지냈대. 거기 표현에 'Good Girl(굿 걸)' 이라고 쓰여있어. 그래서 혼낼 일도 없었다는 거야. 똘똘하고 의사 표현도 잘 아는 아이였대. 경하가 그런 아이라면, 차근차근 물어본다면 집을 찾아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굿걸' 경하에게 고아원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의 기독교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면 좋겠음'이었어. 결국 1975년 7월 15일, 경하는 길을 잃은 지 2달 만에 해외 입양이 결정됐어. 입양기관에서는 경하에게 이걸 만들어 줬어.
'부, 모' 란은 공란이고, 본적은 수원이야. 호주에는 '백경화'라고 쓰여있어. '서울가정법원의 허가에 의하여 성을 백으로 본을 수원으로 창립'한대. '수원 백 씨'의 호주로, 경하의 호적을 만들어 준거야. 이런 걸 '고아 호적'이라 해. 고아로 등록되면, 입양기관장의 동의만 있으면 입양을 보낼 수 있었어. 이렇게 경하는 진짜 고아가 아닌, 서류 고아로 둔갑돼서 미국으로 입양을 갔어.
그렇게 도착한 낯선 미국 공항에서, 경하는 생전 처음 보는 서양인들을 만났어. 바로 경하의 양부모들이야.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한번 와보지도 않고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어. 물론 선의로 입양한 분들도 계시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아동학대 이력이 있는지, 키울 만한 소양, 경제력이 있는지, 입양의 목적이 뭔지 전혀 살펴보지 않았어.
이건 입양아 수송 전세기 라는 거야. 경하가 입양된 1976년엔, 총 6,597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어. 이 당시 뉴욕, LA, 파리행 비행기 승무원들은 비행 때마다 이런 장면들을 목격했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아이부터 한 네 다섯살 되는 아이들. 두 명씩 안고 (비행기로) 올라오기도 하고요. 걸을 수 있는 애들은 걸어서 손을 잡고 올라오기도 하고. 한 비행기에 적어도 7~8명은 탔고, 10명 이상 탈 때도 있었어요. 남자애들도 막 이렇게 움직이고 그럴 거 같은데, 가만히 시무룩하게 있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밥도 잘 안 먹고. 제가 가슴 아팠던 기억 중 하나는, 그 아이들이 가기 싫은 듯한 그런 걸음으로 가는 걸 보면, 우리 승무원들은 다 내리고 나면 뒤돌아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손을 안 놔요. 자꾸 돌아서서 손을 안 놓고, 저희한테 안겨요. 저렇게 갈 수 밖에 없구나. 그것도 외국으로…"
-박경진, 39년간(1983~2022) 승무원 근무
경하는 고아가 아니라 미아인데도,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해외 입양을 보냈어. 이런 일이, 경하한테만 일어났을까?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들이야.
"실종 8개월된 어린이. 스웨덴 입양 밝혀져"
"유괴된 딸 추적 1년 3개월, 어른 무성의로 이미 미국 입양"
"유괴당한 아들 찾아 헤맨 모정. 외국 입양 직전 품 안에"
이렇게 유괴, 실종된 아이들이 그대로 해외 입양을 간 거야. 그렇다면, 당시에 왜 이런 일이 많았을까?
1980년대 후반, 한국 아동 1명당 입양 수수료를 보면, 당시 입양 수수료는 5,000달러였어. 당시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4,500달러였대. 1인당 국민 소득보다 더 많은 돈을 입양 수수료로 받은 거야. 이런 아이들이 한 해에 8000명 넘게 입양됐어. 그 당시 입양은, 부모 없는 아이한테 새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입양 부부를 위해 아동을 구해주는 사업은 아니었을까.
▲ 서로를 찾으려던 마음이 만든 기적
미국에 도착했을 때 경하는 7살이었어. 7살은 못하는 말이 없어. 그런 경하가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 똑 떨어졌어.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려 애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그럴 때마다 경하는 그림을 그렸어. 이런 그림을.
"한국을 떠날 때부터 이 그림들을 계속 그렸었어요. 저는 이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렸어요. 집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신경하 씨
할머니 집이 어디 있었고, 거기에 가기 위해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넜고, 아래에는 밀밭이 있었고. 어릴 적 경하가 살던 곳에 대한 그림이야. 경하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집과 할머니댁의 그림을 계속 그리고 또 그렸어. 기억을 새기고 새긴거지. 언젠가 엄마를 꼭 다시 만나기 위해. 경하는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의 고아원 원장에게 종종 연락을 할 수 있었대. 그때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도 없어"였어. 결국 경하는 '부모가 진짜 나를 버렸구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대.
그 이후, 경하는 양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했어. 정신 없이 살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생겼어. 어느날 딸이 '엄마의 진짜 엄마는 누구냐'고 물었대. 하지만 경하는 대답해줄 말이 없었어. 어느새 성인이 된 딸은, 답을 찾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딸이, 엄마를 도와줄 방법을 찾게 됐어. 그게 바로 DNA 검사였어. 엄마 경하의 DNA를 미국의 325캄라에 등록해둔 거야. 그 것도 경하가 엄마 태순 씨를 만나기, 무려 10여년 전에.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계속 찾고 있었던 거야. 이 세상과 시대는, 엄마와 딸 두 사람을 분리해 놨지만, 서로를 찾으려는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마침내 기적을 만들어냈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지금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어. 1970년에서 1989년 사이 해외 입양을 간 아이는 총 108,402명이라고 해. 전 세계 375명의 수많은 경하들이 진실화해위에 해외 입양 실태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어. 입양인들이 한국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젠 믿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때 당시의 진실을 밝혀줄 거라는 그 믿음 말이야.
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DNA 등록이 중요하대. 현실적으로 입양 서류의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하 엄마 태순 씨도 DNA 등록의 중요성을 말해.
"DNA 밖에 없어요. DNA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경하를) 만났겠어. 잃어버릴 때는 아기를 잃어버렸지만, 이제 다 성인이고 어른이잖아요. 부모가 죽지 않는 한, 자식들도 (부모를) 찾으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양쪽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태순, 신경하 엄마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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