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가 예술…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쇼잉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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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재능 있는 조각가 리지(미셸 윌리엄스 분)는 전시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다.
리지를 비롯한 극중 인물 대부분이 예술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지가 맞닥뜨리는 뜻밖의 사소한 일들이 점차 그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이 예술을 닮아서다.
미국 오리건 예술 공예 대학에서 일하는 리지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예술가의 성격을 갖고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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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젊고 재능 있는 조각가 리지(미셸 윌리엄스 분)는 전시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다.
날짜는 임박해 오는데 작품은 미완이고, 이것저것 방해 요소만 늘어간다.
고양이는 사료가 다 떨어진 참에 배고프다며 보챈다. 한밤중에는 난데없이 비둘기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집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는 거다. 옆집에 사는 집주인이자 동료 예술가인 조(홍 차우)는 차일피일 수리를 미룬다.
지난 24일 열린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쇼잉 업'은 리지의 이런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관망한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 인물 간 큰 갈등이 빚어지는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살면서 마주하는 작은 문제들과 인간관계, 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퍼스트 카우'(2019)로 유명한 여성 감독 켈리 라이카트의 작품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영화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리지를 비롯한 극중 인물 대부분이 예술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지가 맞닥뜨리는 뜻밖의 사소한 일들이 점차 그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이 예술을 닮아서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삶은 평범한 우리를 닮았다.
미국 오리건 예술 공예 대학에서 일하는 리지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예술가의 성격을 갖고 있진 않다. 물론 비범한 재능은 있지만, 그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는 별다를 게 없다.
그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버지와 남동생 숀(존 마가로)이다. 이혼 후 혼자 사는 아버지는 집에 잘 알지도 못하는 객식구를 들여 걱정을 끼친다. 숀은 친구 하나 없이 기행을 일삼는 데 시간을 보낸다. 리지는 이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사랑을 보여주며 관계를 다진다.
예술계 라이벌이자 온수도 고쳐주지 않는 얄미운 조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때때로 서로에게 짜증을 내지만 돌아서면 또 풀리고 마는 보통의 친구 사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손길의 사용이다. 리지는 조각 작업을 하면서 찰흙을 정성스럽게 매만진다. 감독은 이런 장면을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다.
미물인 비둘기에게도 리지의 따스한 손길이 닿는다. 그는 처음엔 조를 대신해 다친 비둘기를 돌보는 것을 귀찮아한다. 하지만 이내 정이 들고 가쁘게 숨 쉬는 비둘기를 동물병원에 데려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다며 질색하던 조는 어느새 조심스레 손가락을 뻗어 비둘기를 쓰다듬고 있다.
손시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쇼잉 업'에 대해 "평범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전하는 단단한 울림은 영화제의 슬로건 '우리는 훨씬 끈질기다'와 공명한다"며 "매일 무언가 만지고, 걷고, 돌보고, 일하는 움직임들로 지켜지는 소박하고도 경이로운 일상의 시간을 마주한다"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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