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류승룡 차례, 느와르 액션도 멜로도 씹어 먹었다('무빙')
[엔터미디어=정덕현] 칼에 찔려도 금세 상처가 아무는 회복 능력을 가진 장주원(류승룡)은 그 몸뚱어리 하나로 먹고 사는 건달이다. 그가 형님으로 모시는 광진(문정대)은 장주원을 앞세워 자신들의 거점인 포항에서 더 큰 도시 울산을 먹으려 하고, 수십 수백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장주원은 이를 성사시킨다. 하지만 믿었던 형님 광진과 자신을 따르던 동생 민기(임성재)의 배신으로 그는 그곳을 떠나 인천의 한 모텔에서 지내다 다방에서 일하는 지희(곽선영)를 만나게 된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서 장주원의 서사를 풀어낸 10회, 11회만 보면 한 편의 액션 느와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폭들 간의 대결과 배신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장주원이 보여주는 액션 신은 한 마디로 역대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이고, 장주원 역시 회복 능력으로 차에 치어도 또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느와르 액션에는 그보다 더 진한 멜로가 깔려 있다. 온 몸에 칼이 박힌 채 달려드는 수십 명의 조폭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은 10회의 부제처럼 '괴물'에 가깝지만, 그가 지희를 만나 보여주는 모습은 11회의 부제처럼 더할 나위 없는 '로맨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주원이 모텔에서 '영웅문' 같은 무협지를 읽으며 지희에게는 그게 멜로라고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의 삶은 무협지 속 영웅처럼 온 몸에 칼이 꽂힌 채 적들과 싸우는 핏빛 색깔이지만 그가 원하는 건 끝에는 "착한 사람이 이기는" 핑크빛 색이다.
괴물과 로맨티스트. 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는 회복 능력으로 늘 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장주원을 바라보는 광진, 민기 같은 이들의 시선과 지희의 시선을 대비시킨다. 즉 포항에서 울산까지 진출하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칼을 맞아왔냐고 토로하는 주원에게 광진은 이렇게 말한다. "니는 안 아프잖아." 즉 광진은 그를 내심 괴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지희는 다르다. 골목에서 길을 잃어 울고 있는 주원을 도와주고,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낸 조폭들이 추격해올 때 그를 도망치게 해준다. 지희와 주원이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끼는 건 두 사람이 닮아 있어서다. 다방에서 일하는 지희에게 남자들은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됐냐고 묻곤 했지만 주원은 묻지 않았다.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느냐는 지희의 물음에 주원은 "이유가 있었겠죠."라고 말한다.
무협지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가슴 한켠에는 따뜻한 사랑 하나를 갈구하는 마음은 주원만이 아니라 지희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이유를 굳이 묻지 않고 이해해주려는 주원의 마음은 그렇게 지희에게 닿는다. 그래서 주원이 조폭들에게 쫓겨 도망칠 때 지희에게 사실 자신은 '나쁜 사람'이며 사람도 죽였다고 말했을 때 지희도 똑같이 말해준다. "이유가 있었겠죠."
<무빙>의 서사구조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체가 다르고, 그래서 초능력자 같은 '별종'이라고 해도 그게 다르고 특별한 것일 뿐, 괴물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사실은 날고 싶지만 그러면 별종 취급받는 현실 속에서 몸이 떠오르는 공중부양 능력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봉석이(이정하)와 그런 그를 특별하다고 이해해준 희수(고윤정)가 그렇고, '블랙' 요원으로 피도 눈물도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휴머니스트'였던 봉석의 부모 이미현(한효주)과 김두식(조인성)이 그러하며, 장주원과 지희도 그렇다.
즉 <무빙>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북한 같은 인접국들과의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초능력자 요원들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동시에 이 특별한 인물들이 괴물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걸 그려낸다. 그래서 각각의 인물들에 집중할 때, 그 다채로운 서사들은 거기에 맞는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갖게 됐다. 봉석과 희수의 이야기가 학원물에 청춘멜로의 색깔을 보여준다면, 이미현과 김두식의 이야기는 스파이물에 멜로가 더해졌고, 장주원과 지희는 액션 느와르에 멜로가 깔렸다.
색다른 장르들이 들어가면서도 모두 멜로가 그려지는 건 그래서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칼에 맞아도 금세 회복되고, 또 초감각을 갖고 있어도 이들이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매회 다양한 장르적 색깔들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그 서사가 흐트러지지 않고 단단히 하나로 묶여져 있는 <무빙>의 독특한 구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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