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가 곧 주도권...美 전기차, 양보 없는 ‘할인 전쟁’ [메이드 인 USA 전기차 몰려온다]
테슬라·포드·현대차 미국서 가격 할인
중국산 LFP배터리 탑재 저가전기차 봇물
향후 몇 년 내 미국산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가격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 얼리어답터(제품이 출시될 때 가장 먼저 구입하는 소비자)’ 수요가 고갈되면서 당분간 ‘가격 경쟁력’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문은 테슬라가 열었다. 선두주자 업체가 잇달아 가격 인하 정책을 내놓자 다른 브랜드 역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가격 인하 행렬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테슬라는 최근 준대형 세단 ‘모델 S’와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X’의 가격을 1만달러(약 1320만원)씩 인하해 출시했다.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델 S와 모델 X의 스탠더드 레인지 버전은 각각 7만8490달러, 8만8490달러에 판매 중이다.
가격을 내리는 대신 주행거리는 제한했다. 모델 S 스탠더드 레인지 버전은 애초 405마일(약 652㎞)을 달릴 수 있었지만, 가격 인하 이후 320마일로 주행거리가 줄었다. 모델 X는 348마일에서 269마일로 감소했다. 배터리와 모터는 기존 모델과 같지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주행거리와 성능을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중국 BYD 등 급성장하는 전기차 업체를 견제하고, 시장 주도권을 계속 가져가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4월 중형 SUV ‘모델 Y’에서 가격을 3000달러, 중형 세단 ‘모델 3’에서 2000달러 인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기차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루시드도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루시드는 전기 세단 ‘루시드 에어’의 가장 저렴한 ‘퓨어’ 트림 가격을 5000달러 인하해 8만240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루시드 차량 가격이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브랜드 인지도보다 고객 확보에 무게를 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가격 인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드도 지난달 주력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의 기본 버전을 5만9995달러에서 4만9995달러로 무려 1만달러 낮췄다. 포드 F-150 라이트닝은 지난해 4월 첫 출시 당시 4만달러 수준이었지만, 초기 가격 정책의 실패 탓인지 이후 무려 네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나 테슬라를 비롯해 전기차 모델의 몸값 낮추기 경쟁이 격화하자 결국 손을 들었다.
현대자동차 역시 미국에서 ‘아이오닉5’, ‘아이오닉6’ 등 주력 전기차에 대한 할인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이달부터 다음달 5일까지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일부 트림을 대상으로 5000달러 현금 할인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가격 인하 경쟁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수요가 집중된 중국이 신호탄이 됐다. 현지 업체인 BYD와 체리자동차를 필두로 테슬라, 폭스바겐 등이 잇달아 가격을 인하하고 관련 판촉 행사를 펼치고 있다.
저렴한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탑재를 확대하는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라인업 다변화도 전기차 가격 인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테슬라코리아는 지난달 국내에 중국 기가팩토리 상하이에서 만든 전기차 ‘모델 Y’ 후륜구동(RWD) 모델을 출시하면서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생산한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5699만원으로 출시됐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저가 전기차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아는 경차 레이의 전기차 모델인 ‘더 기아 레이 EV’의 사전계약을 시작했다.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 가격이 2775만원부터다. KG모빌리티는 내달 출시가 예정된 ‘토레스EVX’에는 중국 BYD의 LFP 배터리가 들어간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가진 테슬라는 가격을 인하해도 흑자 유지가 가능하지만, 다른 제작사들은 영업이익률이 낮아 인하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미·중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LFP 배터리를 장착하는 대안도 오래 가기 어려워 전기차 업계의 가격 인하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김지윤 기자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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