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극장에서 만나는 서태지와 아이유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팬데믹 때 사람들이 비대면 영상 공연을 낯설게 여겨 나는 의아했다.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수많은 콘서트 영상들을 다양한 매체로 접해 왔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그 형식이 처음인 듯 신기해했다. 물론 과거와 차이는 있었다. 관중의 유무다. 기존엔 영상 속 관중을 영상 밖 관중이 보고 있었던 반면, 팬데믹 땐 관중이 영상 밖에만 존재한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핑크 플로이드가 1972년 '폼페이 라이브'라는 작품으로 선보인 바 있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생계 때문에 전 세계 음악가들이 불가피하게 택한 비대면 공연은 완전히 독창적이진 않았다.
나는 지금 현장에서가 아닌 영상으로 감상하는 콘서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더 들어가면 '집단 감상'이라는 조건 아래 영상 콘서트다. 팬데믹 때는 이게 불가능했기에 불완전했다. 영상은, 특히 콘서트 영상은 혼자보단 함께 감상할 때 더 큰 감흥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게 보편적 기대여서 그렇다. 이처럼 다수가 한자리에서 보기 위해선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집단 감상의 장소는 당연히 극장이다.
극장에서 감상하는 콘서트는 현장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일단 그것은 콘서트나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인 '지금 이곳'이라는 시공간의 유일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그때 그곳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데 콘서트 영화는 더 집중한다. 당시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을 열기와 활기는 덜해도 디테일과 편의성 면에선 극장 쪽이 더 나은 것이다.
콘서트를 한 번이라도 보러 가본 사람은 안다. 좌석과 신장(키가 큰 사람들은 스탠딩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조건 등에 따라 누군가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혹자는 새끼손가락 만한 나의 스타를 제대로 보려 실눈을 뜨거나 망원경을 동원한 기억도 있을 거다. 이 불편하고 감질나는 상황을 극장에선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생리적 한계에 부딪힌 인간의 눈을 보완해 줄 카메라와 드론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덕분에 롱숏으로 잡은 공연장 풍경에서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아티스트의 미소와 땀방울까지 모두 앉은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다음 달 약속이나 한 듯 서태지와 아이유가 콘서트 영화를 개봉한다. 1947년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찰리 채플린 스튜디오에서 연주한 모습을 담은 1948년 영화 '콘서트 매직'을 시초로 진화해 온 이 장르는 콘서트가 부분이 아닌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데서 특별하다. '우드스탁: 사랑과 평화의 3일' 같은 역사 다큐멘터리급 작품부터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This is It'이나 블랙핑크의 전성기를 담은 'The Movie', 우리 돈으로 400억 원 이상을 들여 별도 서사를 첨부한 메탈리카의 '스루 더 네버' 등 콘서트 영화계엔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들이 자신의 지문을 남겼다.
'소격동'이라는 곡에서 호흡도 맞춘 서태지와 아이유가 이번에 선보일 영화는 블랙핑크나 마이클 잭슨의 것들에서 서사, 다큐멘터리 요소를 뺀 온전히 공연의 흐름에만 집중한 것들이다. 작품들에서 명시된 세월 차는 10년이지만 데뷔 시기로는 6년을 더 보태야 하는 두 사람이어서일까. 서태지는 과거를 강조하는 제목('타임 트래블러')을 택한 반면 아이유는 데뷔 15주년이 지난 지금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임을 암시하는 제목('골든 아워')을 택했다.
흥미로운 건 '타임 트래블러'와 '골든 아워'는 개봉 달도 같지만 콘서트 장소도 똑같이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여자 가수로선 최초로 알려진 아이유의 주경기장 입성은 "정말 여기가 다 찼네요"라는 당사자의 짧은 감탄에서 느껴지듯 어딘가 벅찬 면이 있다. 무대 성격은 서태지 쪽이 역동적이고 광활한 느낌을 앞세웠다면 아이유 쪽은 신비롭고 상큼한 바이브를 추구하고 있는데, 제목과 같이 서태지는 그러면서 과거 전성기를 계속 그리워하는 눈치고 아이유는 일관되게 지금이 자신의 최전성기라는 걸 만끽하는 모양새다.
시간 여행을 주제로 잡은 서태지 콘서트에선 따로 시선이 가는 무대가 있다. 바로 지금 위치에 오르기 직전의 BTS가 게스트로 선 것이다. 그들은 둘씩 짝을 짓거나 전 멤버가 모두 등장하거나 하며 '난 알아요', '하여가', '너에게', '이 밤이 깊어가지만', '우리들만의 추억' 같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히트곡들을 대선배 곁에서 함께 부르고 춘다(지민과 제이홉의 댄스는 명불허전이다). 이 콘서트 이후 6년 동안 BTS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면 9월 초 극장 관객이 어떤 장면에서 환호를 터뜨릴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한편 총 스물 다섯 곡을 부른 아이유는 '팔레트'와 '좋은 날'을 "콘서트 졸업 곡"으로 규정, 15년 만에 자신의 라이브 세트리스트를 부분 정리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을 한 지도 어느덧 6년. 데뷔 30주년이었던 지난해 팬들은 그의 10집 발매를 은근 기대했겠지만 결국 이뤄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혹 '타임 트래블러'를 서태지 10집의 워밍업으로 간주해 볼 수 있을까. 그가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건 분명하므로 가능성이 희박하진 않다. 그는 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돌아오곤 했으니까. 물론 서태지보단 덜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유도 슬슬 6집을 구체화할 때인 만큼 '타임 트래블러'와 '골든 아워'는 콘서트 영화의 전통적인 의미를 넘어선 의미로서 팬들에게 다가갈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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