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정말 乙을 위한 정당일까

고재석 기자 2023. 8.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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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머니볼⑬] 상위 30%가 지지하는 ‘진보’ 정당의 맨얼굴
갑을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화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약칭 을지로위원회가 있습니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갑질 논란'을 계기로 출범했습니다. 당내 특별위원회에서 출발해 상설위원회를 거쳐 전국위원회로 승격한 흔치 않은 사례인데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중소벤처기업부 등 범정부차원의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만, '을(乙)을 위한 정당'이 민주당의 브랜드라는 점을 새삼 환기시키는 사례입니다.

최근 을지로위원회가 출범 10주년을 맞아 '민주당 재집권전략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본문에는 "민주당은 부동산값 급등 등 불평등·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잃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1기 을지로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사회경제개혁을 해야 하는 데 첫 해에 다 놓쳤다"며 "국민의 삶을 챙기는 일에 대한 어젠다만 던졌지 그걸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다"고 회고했고요.

민주당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을'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습니다. 진보를 표방하고 10년째 을지로위원회까지 운영해온 민주당 처지에서는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월 가구소득 600만~700만 원의 선택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대 대선 직후인 지난해 3월 10∼15일 실시한 대선 패널 2차 조사를 보겠습니다. 그간 '여의도 머니볼'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조사인데요. 이에 따르면 월 가구소득 200만 원 미만 유권자 중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찍은 비율은 35.9%에 불과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택한 유권자는 61.3%였고요. 월 200만~300만 원 미만 유권자에서는 57.2%가 윤 후보를, 38.3%가 이 후보를 택했습니다. 월 300~400만 원 미만의 경우 후보 간 격차가 줄기는 합니다만(윤석열 49.0%, 이재명 45.7%) 어쨌든 윤 후보가 앞섰습니다.

이 후보는 중상층이라 할 월 600~700만 원 미만에서 61.7%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같은 유권자층에서 윤 후보는 32.6%를 얻는 데 그쳤고요. 조사 대상 유권자 중 소득구간이 가장 높은 월 700만 원 이상에서도 이 후보는 49.6%를 얻어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윤 후보(47.9%)를 제쳤습니다.

월 600만~700만 원 미만 유권자의 경제적 지위는 어떨까요. EAI 조사가 이뤄진 2022년 기준 통계를 보겠습니다. 통계청이 2월 23일 발표한 2022년 연간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3만4000원입니다. 이중 소득 4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589만4000원입니다. 5분위 월평균 소득은 1042만7000원이고요. 조사대상 인구를 20%씩 떼서 5분위로 나눈 자료이기 때문에, 4분위는 상위 21%에서 40% 사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재명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월 600만~700만 원 미만의 경우 4분위(상위 21~40%) 평균보다는 다소 높고 5분위(상위 20%) 평균에는 크게 못 미칩니다. 편의상 단순화하면 소득 상위 30%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수출 대기업 혹은 주요 공기업‧공공기관 정규직이거나, 전문직일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겠죠. 대기업‧공기업 노조는 강력한 교섭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이들의 임금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분절된 노동시장, 흔한 말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각도로 보건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을'이라 말할 수는 없는 그룹입니다. 되레 성(城)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화이트칼라에서는 이 후보가 54.5%, 블루칼라에서는 윤 후보가 53.9%로 상대를 앞섰습니다. 대선 이후에도 추세는 이어졌는데요. 한국갤럽이 같은 해 12월 15일 발표한 '2022년 월별·연간 통합-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정당 지지도, 주관적 정치 성향'을 보더라도 화이트칼라에 해당하는 사무/관리직에서 민주당 지지율(40%)이 가장 높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68%)도 가장 높고요. 즉 저소득층과 블루칼라는 국민의힘, 고소득층과 화이트칼라는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이재명 대표도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고학력·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이 우리 지지자가 더 많습니다. 저학력·저소득층이 국민의힘 지지가 많아요.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때문에 그렇죠. 언론 환경 때문이에요."(7월 29일 유튜브 라이브 중)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을지로위원회 상생 꽃달기 행사에 열린 가운데, 이재명 당대표가 마스크를 벗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소득‧자산 불평등, 文 정부 시기 심화

과연 언론 환경 때문일까요. '을'에게 더 도움을 주는 당은 민주당인데, '을'이 언론에 '속아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걸까요. 실은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다"(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中)던 정부에서 을의 삶은 신산했습니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문재인 정부는 그리 좋은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숫자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3월 10일 국세청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2017~2021년) 기간 소득 하위 64% 이하 구간의 소득 상승률은 1.1%였고, 박근혜 정부(2013~2020년) 기간의 상승률은 2.1%였습니다. 경제적 하층의 소득 상승률이 '진보' 정부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겁니다. 대신 문재인 정부 기간 상위 10%의 소득 상승률은 1.3%로 박근혜 정부(0.9%) 기간의 수치를 웃돌았습니다. 2017년 48배였던 하위 80% 대비 상위 1% 연소득은 2021년 53배로 늘었고요. 소득 불평등이 커진 겁니다.

자산 시장 상황도 매한가지입니다. 민주연구원이 1월 25일 공개한 '2022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가구의 평균 자산 격차는 2016년 8500만 원에서 2021년 2억600만 원으로 커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탓에 자산 격차가 확대됐다는 점을 민주당 싱크탱크가 인정한 셈입니다. 민주연구원이 2020년 가구소득 지니계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더라도, 전체 지니계수에서 부동산 소득의 기여도는 54%로 임금소득(36%)보다 높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자본소득이 임금소득에 비해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는 점을 입증해 '세습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토마 피케티가 떠오릅니다.

그러니 민주당의 경제 정책은 조귀동 작가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생각의힘)에 쓴 것처럼 '상위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어렵습니다. 더 갖고, 더 벌게 된 사람일수록 민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론 환경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조귀동 작가가 주목한 렌즈는 정치 질서의 구조변동입니다. 그의 역작 '이탈리아로 가는 길'의 제3장은 '촛불연합의 붕괴와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121~123쪽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실제로 민주당 내 활동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는 서울 등 대도시에 살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안정된 경제적 지위를 가진 40~50대가 많다. (중략) 문재인 정부의 적극 재정 기조에도 GDP 대비 조세 비중은 2017~2020년 1.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2013~2017년 증가폭 1.8%포인트보다 못하다. (중략) 민주당 정부에서 약자를 위한 재정을 늘릴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데 있다."

‘을'의 삶과 검찰개혁 사이의 거리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심화하는 불평등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을지로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의원들이 '을'을 위해 분투한 기록이 차고 넘칩니다. 하청노동자의 단식농성 현장에 방문하고, 사립대의 청소‧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총장과 면담했으며, 가맹 점주의 권익을 위해 선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국회 바깥에서 발품을 팔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이 정책에 꾸준히 반영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낸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작 '을'은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외려 민주당은 지갑 사정이 두툼한 유권자들이 지탱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민생 문제는 귀퉁이로 밀어내고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이슈에 너무 몰입하는 정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한 의원들은 억울하겠으나 오늘날 민주당이 직면한 비판입니다. 대통령과 국회 권력을 모두 쥐고도 '을'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이들에게는 '진보' 정권 시기도 호시절은 아니었습니다. 혁신을 공언한 민주당이 되돌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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