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한국사회 바꾸기… 정답은 ‘평어’에 있다[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8. 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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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은 '친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니까 마음만 통한다면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유명한 그 대사 "친구 아이가"를 외칠 수 있다.

현실로 눈을 돌리면 한국사회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범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로 확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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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놓을 용기
이성민 지음│민음사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은 ‘친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니까 마음만 통한다면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유명한 그 대사 “친구 아이가”를 외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사전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현실로 눈을 돌리면 한국사회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범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로 확 줄어든다. 게다가 두 달 전 시행된 ‘만 나이 통일법’으로 이마저도 미묘해졌다.

왜 우리는 나이가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을까. ‘동방예의지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존비어(尊卑語) 체계’에 답이 있다. 나이, 지위에 따라 서열이 나뉘고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터라 수평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내 친구 ○○○, 편안한 하루 보내십시오”는 아무래도 어색하지 않은가. 영어론 ‘You’(너)라고 서슴없이 부르다가도, 우리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고작 한두 살 차이만 나도 ‘유사 신분관계’가 생기는 셈이다.

책은 한국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관계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며 “존댓말을 지양하자”는 발칙한 제안을 한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한국인 특유의 수직적 문화를 만든 언어도 민주화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의 없이 반말을 쓰자는 건 아니다. 저자의 대안은 ‘이름 호칭+반말’로 이뤄진 새로운 말 ‘평어’다. “야” “너” 대신 이름을 부르며 편하게 얘기하자는 거다. 굳이 따지자면 예의 있는 반말이다.

물론 낯선 것은 사실이다. ‘언니’ ‘형’보다 이름 뒤에 붙는 ‘아’나 ‘야’를 제거하고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그렇지만 주위를 보면 학교, 회사, 매체, 모임 등 다양한 현장에서 ‘평어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고 대체로 이 혁신은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 저자도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생들과 평어로 대화하고,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업무 메일도 평어로 받는다. 그래서 이들과 만나게 되면 고개를 아래로 숙이지 않고 손을 옆으로 흔드는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어는 “서로를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아닌 정확히 동등한 인간으로서 함께하는 모험”이다. 독자, 재밌게 읽었어?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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