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나’에 대한 지나친 열망… 폭력·갈등 부추겼다[북리뷰]

박세희 기자 2023. 8. 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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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 히스테리 사회, 단독성들의 사회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지음│윤재왕 옮김│새물결
흉기난동·갑질 등 빈번한 현대
‘단독성’좇는 욕망과 관계 깊어
SNS가 과시공간으로 자리매김
특수성 따라 직업 불평등 심화
정치 포퓰리즘 부작용도 낳아
보편성 사라진 특이 사회 지적
게티이미지뱅크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교사들은 학생, 학부모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성별과 세대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한편 SNS상에선 모든 이가 ‘좋아요’와 ‘구독’을 위해 살아간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독일의 문화이론가로 베를린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속인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교수는 이 모든 현상을 ‘단독성’(Singularity)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문화, 경제, 정치, 라이프스타일 등 전 분야에 걸쳐 현대사회를 탐구한 교수의 진단은 모든 ‘보편’이 사라지고 ‘단독성’의 ‘특수’가 폭발한 ‘단독성들의 사회’이자 ‘과잉 히스테리 사회’다.

‘단독성’이란 특수하고 독특한 것, 즉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가리킨다. 표준화된 상품의 대량생산 대신 단독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단독성들의 사회’다. 단체 관광객이 몰려드는 유명 휴가지가 아닌, 독특한 분위기의 특별한 장소로 떠나는 여행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요즘의 분위기가 그 예다.

‘단독성들의 사회’에서는 일반 대중의 주목과 인정을 얻기 위한 경쟁이 발생한다. 더 많이 주목받고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한 투쟁 속 승리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주체는 타인들 앞에 자신의 특수한 자아를 내보이는데, SNS는 훌륭한 무대가 된다.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필라테스 할 때의 나의 모습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다. 각각은 한 명의 큐레이터가 되어 자신의 단독성을 전시한다.

이렇게 자신의 단독성을 전시, 과시하는 일은 긴장과 강제, 딜레마를 일으키며 부작용을 낳는다.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독특함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이를 타인들에게 내보여야 한다는 긴장은 그것을 잘해내지 못할 경우 실망이 되고, 우울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시대 우울증이 만연하게 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단독성들의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불평등이다. 지식경제와 문화경제에 종사하는 고능력자와 저능력자 간 사회적 간격은 넓어졌고,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성공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의 차이도 매우 크다. 독특성을 지닌 재화를 직접 만들어내거나 노동 자체가 고귀한 단독적 성과로 여겨지는 자는 찬란한 승자이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일상적인 직업을 가진 이는 그저 승자를 구경하고 있어야 할 뿐이다.

교육 분야에서 드러나는 단독성 추구 경향 역시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특별한 학교’이길 바라는 학부모들의 압박으로 몇몇 학교는 자기들만의 과외활동 수업을 만들어 제공한다. 단독성 확보를 위해 이것저것을 시도할 여력이 되는 학교와 그러지 못한 학교의 차이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단독성들의 사회’로 인한 부작용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특수한 정체성을 갖는 집단들은 단독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근본주의 등으로 나아갔으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보편의 정치’는 열렬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특수의 정치’로 대체됐다.

최근 서울 곳곳에서 발생한 살인, 흉기난동 사건 등도 단독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흉기난동·총기난사와 같은 각종 테러는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한 폭력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의 과시는 실시간 방송 매체·SNS 등 단독성을 ‘위한’ 매체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폭력의 행위를 바라봐주는 대중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뉴노멀’이 된 ‘단독성들의 사회’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특히 디지털화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전은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산업기술이 근대사회 보편화를 이끌었다면, 디지털 기술은 끝없이 독특한 주체, 독특한 집단을 만들어내며 단독성의 발현을 부추긴다.

지난 수십 년간 사회학은 현대사회를 정의하는 데 관해 무수한 논쟁을 벌여 왔다. ‘후기 근대성’ ‘포스트모던 사회’ ‘위험사회’ 등 개념들이 제시됐지만, 21세기의 우리 사회가 과거와 완전히 다른 구조로 구성됐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주장은 드물었다. 현대사회를 ‘단독성’의 폭발로 바라보는 레크비츠 교수의 새로운 시선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672쪽, 3만4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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