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쓰러진 소녀와 나눈 ‘낯설고 신비한’ 대화[어린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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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은 낯선 경험, 여기 없는 것, 신비로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어린이 독자는 사실과 대조해 식견을 자랑하기보다 "어디선가는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린이책의 뿌리인 '안데르센 메르헨' '그림 메르헨'도 그의 손에 닿으면 장엄하게 새로 돋아난다.
어린 형제가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쓰러져 있는 여자 어린이를 구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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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그림│이명아 옮김│곰곰
어린이책은 낯선 경험, 여기 없는 것, 신비로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어린이 독자는 사실과 대조해 식견을 자랑하기보다 “어디선가는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든다. 맞는 말이다. 사실은 변할 수 있고 모르는 진실은 아직 많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전설과 신화, 고전을 재창조하는 일에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그림책 작가다. 어린이책의 뿌리인 ‘안데르센 메르헨’ ‘그림 메르헨’도 그의 손에 닿으면 장엄하게 새로 돋아난다. 어둠과 신비, 경이로움을 목격한 어린이의 얼굴을 이 작가만큼 잘 그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중세적이지만 해석과 문제의식은 매우 현재적이다. 원초적 두려움을 깊이 다루면서도 신중하며, 무엇보다 지극히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른바 현대의 거장이다.
‘마리나’는 그런 하이델바흐의 최신작이다. 어린 형제가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쓰러져 있는 여자 어린이를 구조한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이 아이를 ‘마리나’라고 부르면서 잠잘 방을 내주고 보살핀다. 마리나는 라틴어로 ‘해변의 산책길’이라는 뜻이며 배가 머무는 항만시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연히 정박한 배처럼 찾아온 마리나 때문에 가족은 경찰의 탐문을 피하기도 하고 이웃과 다툼도 겪는다. 입이 트인 마리나는 거침없이 고향에 대해 말하고 형과 동생은 서로 다른 복잡한 감정을 겪는다.
책 안에서는 여러 가지가 충돌한다. 나고 자란 지역, 서로 다른 모습, 사실과 전설, 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 등을 놓고 독자도 함께 갈등한다. 주인공이 잠들지 못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 책에 바친 독자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책의 마지막까지 각각의 장면들이 곱고 생소하고 찬란하다. 그래서 권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 읽으면 좋을 책이다. 38쪽, 1만5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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