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체제 인물’ 이승만 기념관이라니

한겨레 2023. 8.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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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사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기고] 오수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조선 후기 숙종 때인 1675년, 정부는 전국의 모든 가호를 다섯씩 묶어 관리하는 법을 정비해 새로 세웠다. 이른바 ‘오가통사목’이라는 규정이다. 겉으로는 서로 농사일을 돕고 힘을 모아 재난을 극복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백성을 더 강력히 통제하려는 목적에서 제정했다. 그런 만큼 벌칙도 엄중해서 편제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자는 소송을 제기해도 심리하지 않고,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고 공포했다. 규정을 어긴 자는 국가와 법률의 보호 밖으로 추방해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아무나 그를 죽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처벌은 당시 국가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조선의 유교 왕정이란, 노비까지도 하늘이 낸 백성으로 여겨 재판권과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국왕이 백성 모두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가르침으로 이끈다고 표방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또 범죄자를 재판해 처단하는 일은 국가의 정상적이고도 기본적인 기능인데, 민간의 살인에 국가가 눈감아버린다면 폭력을 국가가 독점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났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아예 국가의 보호와 통제 밖으로 내치는 법률은 조선에서는 국왕이 국왕이기를 포기하고 국가가 국가이기를 부정하는 선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질서 밖으로 추방돼 그들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존재는 전근대 서양에서 ‘아웃로’(Outlaw)라 해 유래가 매우 오래고 널리 퍼져 있었다. 로빈 후드나 루터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고, 소설은 물론 영화, 만화, 게임 등에 끝없이 재현될 만큼 현대 대중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회 전체가 영어에 몰두했어도 아웃로는 적절한 번역어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정치 전통과 문화에서는 아직도 수긍하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판 아웃로 존재를 규정한 숙종 대 오가통사목은 최고 행정기관인 비변사에서 입안하고 국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됐다. 조선을 이끌던 국왕과 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자기 나라가 어떤 정치질서 위에 서 있는지 잊어버리고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법률을 세웠다. 조선의 국가체제가 무너지는 신호탄이었다고 여길 만하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17개 시민단체 회원 50여명은 지난달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앞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제막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규현 기자

그런 일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벌어진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는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을 향해 수도 한복판에서 발포 명령을 내려 국민을 대거 살해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그가 어떤 공로를 세웠는지 학계 논란을 제쳐놓고, 6·25 당시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기만과 적반하장 등 국민 배신 행적을 묻지 않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헌법을 덮어둬도, 대규모 선거 부정과 국민 총격의 책임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의 체제에 거역한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그 파괴자인 이승만의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모순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감출 길 없는 자기모순 앞에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고 나라를 세운 공로가 후대의 과를 덮는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 있을까? 긴긴 세월 버려둔 자식이 고통 속에 죽어간 자리에 나타나 그가 피땀 흘려 모은 유산을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부모의 근거가 바로 낳아준 공이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죽이려 해도 지극정성으로 섬겨서 낳아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원리는 흘러간 시대 유교의 가르침이다. 아니, 그것으로도 이승만의 죄를 덮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나라의 아버지가 아니며, 국민은 그의 자식이 아니다.

숙종 대에 오가통사목을 세우고 3년이 흘러 맛생이라는 남자가 오가통 편제에 들지 않은 채 떠돌아다니던 세남을 죽였다. 법대로라면 국가가 살인사건에 눈을 감아야 하는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다. 사안의 심각성 앞에서 왕은 영의정의 건의를 받아들여 문제 조항을 삭제했다. 체제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했으나 잘못을 확인하자 즉시 바로잡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엊그제도 미국·일본 정상과 함께한 자리에서 세계를 향해 자유·인권·법치를 외쳤다. 이승만은 제 나라 국민을 상대로 자유·인권·법치를 짓밟은 반체제 인물이다.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와 반국가세력 분쇄를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기념관 건립부터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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