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인간 ‘이중적 마스크’ 벗긴 배우들의 ‘미친 연기’

남지은 2023. 8.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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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에도 특색있고 강렬
김모미(이한별)가 인터넷 방송을 할 때 나나가 춤 대역을 하거나, 목소리톤을 조절하며 ‘3인 1역’의 이질감을 없앴다. 넷플릭스 제공

염혜란이야? 안재홍? 와 고현정~ 나나! 쉬어갈 타선이 없다. 넷플릭스(OTT) 드라마 ‘마스크걸’ 공개 뒤 배우들의 열연이 화제다. 시청자들은 짧은 출연 분량에도 임팩트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을 쏟아낸다. 안재홍이 신인 이한별과 초반을 책임지면 나나가 중반, 고현정이 후반에 등장했다. 데뷔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염혜란도 3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고현정이 6~7회, 단 2회만 등장한 것을 두고 흔치 않은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작품 전체를 이끌던 배우들이 분량을 나눠 맡으면서까지 ‘마스크걸’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용훈 감독은 “배우들 모두 캐릭터가 새로워서 좋다고 하더라”며 “후반부를 묵직한 느낌을 주는 배우이자 이런 역할을 안 해본 신선한 느낌의 배우가 잡아줬으면 했는데, 고현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24일 같은 장소에서 만난 고현정도 “작품이 고팠던 나에게 장르물 제안이 온 것 자체가 기뻤다”고 말했다.

‘마스크걸’은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모든 인물이 특색 있고 강렬하다. 성형 전 김모미(이한별)가 외모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하면 성형 뒤 김모미(나나)는 여성 연대를 보여주고, 중년 김모미(고현정)와 김경자(염혜란)는 종교적 집착이나 모성을 얘기하는 등 저마다 임무를 이어받고 나아간다. 회차별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고, 역할이 강한 데도 잘 어우러진다. 김용훈 감독은 “시청자들이 인물의 서사를 잘 따라갈 수 있게 모두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계에 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연민이 느껴지게 했다. 이들이 단지 자신만의 잘못으로 이렇게 됐을까? 사회적·가족적 문제는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면 여러 감정이 들 것 같았다”고 했다.

마지막 6~7회에서 묵직함과 신선함을 함께 줄 수 있는 배우로 고현정을 떠올렸다는 김용훈 감독. 장르물 제안이 와서 기뻤다는 고현정. 넷플릭스 제공

배우들은 짧은 분량인데도 누가 더 잘 변신하나 내기라도 하듯 기존의 모습을 지웠다. 염혜란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킬러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가 떠오를 정도로 파격적인 외모와 연기를 선보인다. 김경자는 올해 최고의 캐릭터로 꼽힌다. 오타쿠 역을 맡은 안재홍에겐 “은퇴작이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혼신을 쏟은 연기에 찬사가 나오고 있다. 리얼돌 ‘래미짱’한테 등 일본어로 말하는 연기는 안재홍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김용훈 감독은 “안재홍은 시청자들이 주오남이 자신인 걸 눈치채지 못했으면 했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는 등 뭔가를 더 하기를 바랐는데, 배우 보호 차원에서 말렸다”며 웃었다. 탈모도 분장이라고 한다. “머리숱 진짜 많아요.” 고현정은 “안재홍의 탈모 분장을 보며 남자 배우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어서 놀랐다”며 “안재홍과 염혜란을 보면서 배우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저렇게 연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감탄했다.

고현정도 기존 자신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웠다. 교도소에서 죄수복을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주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두 아이 엄마로 돌아왔어도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중년 김모미를 연기하면서 대놓고 중년 인증을 한 건 이례적이다. 고현정은 “(그동안) 외모가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빈껍데기라는 건 안다. 실제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느냐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걸 이 작품이 다시 느끼게 해줬다”고 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딸과 떨어져 있는 김모미를 보며 자신의 서사를 대입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모미가 조금만 더 뭘 해도 감정이 과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종교에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딸을 살리고 웃을 때 등 이전과 다른 표정을 많이 보였다. 김용훈 감독은 “‘마스크걸’을 하면서 배우들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에 갈망했는지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염혜란이 염혜란, 안재홍이 안재홍 했다. ‘마스크걸’은 다양한 연기를 해온 배우들한테서도 새 모습을 뽑아냈다. 넷플릭스 제공

‘마스크걸’이 캐릭터를 제대로 끌어낸 데에는 시청자들이 감정을 쌓도록 도운 파격적인 연출도 한몫을 했다. 심리 상태를 색상 대비로 처리하거나, 드라마치고는 성적 표현이나 노출 등 수위도 세다. 특히 김모미가 교도소에 입소할 때 노출신이 화제가 됐다. 김용훈 감독은 “죄를 지은 사람은 죗값을 달게 받는 장면, 교도소에서 인간적인 굴욕을 겪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3인 1역’도 배우의 변화에 이질감을 없애는데 신경을 썼다. 성형 전 김모미가 인터넷 방송을 할 때는 가수 출신인 나나가 춤 대역도 했고, 이한별의 목소리에 나나의 목소리를 섞어 톤도 맞췄다. 감정 쌓기 차원에서 원작과 달리 김모미 대신 주오남이 살인을 하고, 결말도 바꿨다. 김용훈 감독은 “표현을 못하는 주오남은 김모미를 대신해 그 남자를 처리하는 게 사랑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스크걸’은 외모지상주의를 비꼬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표면적인 것일 뿐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고, 거룩한 것처럼 취급받는 모성애의 이면을 건드린다. 김용훈 감독은 “내 자식만을 위하는 집착들이 발생하는 현재 문제도 있고,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고현정은 “‘마스크걸’은 사랑의 결핍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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