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에는 국고 5조 원 투입…국민연금엔? [국민연금]④

유원중 2023. 8.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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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국민연금에 ‘국가’는 없다
[국민연금]① 국민연금 고갈 위기라면서…정부는 왜 쌈짓돈처럼 빼쓰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49434
[국민연금]② ‘국민연금 크레딧’은 빛 좋은 개살구? 정부가 미래에 떠넘긴 빚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0345
[국민연금]③ “국민연금 100년 이상 끄떡없다”…‘3-1-1.5’ 개혁안, 내용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1360
[국민연금]④ 공무원연금에는 국고 5조 원 투입…국민연금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7050
[국민연금]⑤ 국민연금 ‘소득재분배’는 공정한가요?…월급쟁이에 의존하는 연금복지
https://news.kbs.co.kr/ne…


'정부가 GDP의 1~2%를 국민연금에 지출하면 연기금 고갈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보고서가 국회 연금특위에 제출됐다는 내용을 지난 기사에서 전했다. 그 이후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의 최종보고서 내용도 일부 공개됐다. 이는 연금 개편에 대한 정부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핵심 내용은 보험료를 올리고, 받는 연금액은 그대로, 연금 개시 연령은 늦춘다는 것으로 보인다. 국고 투입 얘기는 없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해 국고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학계에서 산발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지난 여러 번의 국민연금 개편 논의 때, 국고 투입이 의제화된 적은 없다. 늘 기획재정부가 반대했고, 보건복지부도 '국민연금은 수익자부담 원칙'이 지켜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의 견해를 밝혔다.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가입자가 5% 수준밖에 안 되는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올해만 세금 약 5조 원을 쓴다. 반면 국민연금에는 한 푼도 안 쓰겠다는 식이다. 과연 이 논리가 맞는지 따져봤다.

■ 국민연금에 국고가 투입돼야 하는 이유...'소.득.재.분.배'

지금도 많은 국민이 막연히 걱정하고 불안해하지만, 국민연금의 수익률(수익비)이 높다는 사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지금 당장 살기가 팍팍한데 국민연금 보험료 내기 아깝다'는 하소연은 접어두고 '다른 저축을 포기하시더라도 국민연금만큼은 꼭 들고 가시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빈말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놀라운' 소득재분배 기능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누구에게나 이득인 제도이지만 특히 평균 이하의 소득을 얻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좋은 '금융상품'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연금이라는 게 내가 낸 보험료를 연금공단에 저축해뒀다가 은퇴하면 이자를 쳐서 돌려받는 것 아니야?' 절반만 맞는 말이다. 내가 낸 보험료 중에 절반은 낸 만큼 돌려봤지만, 나머지 절반은 다른 가입자들 돈과 섞여 평균치(국민연금의 A 값이라고 불린다)가 계산된다. 가입자마다 '수익비'가 다른데 꽤 많은 차이가 난다.


위 그림은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 논의를 할 때 보건복지부가 냈던 수익비 자료다. 가입자가 30년 보험료를 내고 20년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408만 원 소득자가 100원만큼 보험료를 내고 140원만큼 가져간다는 뜻이다. 반면 100만 원 소득자는 100원을 내면 280원을 받는다. 물가가 오르면 오른 만큼 연금도 오른다. 직장인들이 연말 소득공제를 위해 많이 가입하는 개인연금은 1.08로 나와 있다. 100원을 내고 108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개인연금 수익비는 1 미만인 상품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가입자마다 수익비가 다른 이유는 국민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소득재분배 기능은 아래 그림으로 설명된다. 200만 원을 평균 소득이라고 가정하고 100만 원 소득자와 300만 원 소득자의 연금액을 비교해 본 것이다. 소득재분배를 통해 받은 연금액은 소득비례로 연금을 받았을 때와 다르다. 300만 원 소득자가 20만 원을 덜 받았고, 이 20만 원은 100만 원 소득자에게 이전된다.


물론 그렇다고 연금액이 역전되지는 않는다. 평균 수명을 산다는 전제로 낸 돈보다 적게 가져가는 사람은 없다. 고소득자가 자기의 수익 일부를 저소득자에게 나눠 주는 것인데, 산술적으로 이는 약 전체 연금급여액의 1/4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연금급여(34조 원)로 따지면 한 해 약 8.5조 원 정도가 국민연금 내에서 저소득층 노인에게 지원된 것이다. 이는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사회보험을 통해 국민들 간의 연대를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노후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원래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기초연금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제도를 설계해서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것인데, 연금 급여의 1/4 정도가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면? 이는 정부가 할 일을 연금 가입자가 해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기초연금이 생겼지만, 국민연금을 충실히 납부한 사람들은 이 기초연금을 못 받거나 깎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평균소득 이상 가입자 대부분은 이중적인 차별까지 받는다.

■ OECD, '한국 정부, 국민연금 재정 지원 충분한 이유 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OECD는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국민연금을 분석하고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가 낸 결론도 비슷하다. '국민연금은 지금보다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 보장을 더 강화하고(소득대체율 25%는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 은퇴 시기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었다. OECD 연금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의 전문가들이 잘 얘기하지 않는 한 가지를 더 얘기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에 국고를 지원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3.6.6. 소득재분배적 급여 부분에 대한 조세 재원 분담 증대 (OECD 보고서 97쪽)
다른 OECD 국가들과 다르게, 한국 국민연금 재정에서 일반회계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중략) 연금 시스템의 소득재분배적 급여 부분(A값)은 보험료와 일반조세 중 어떤 것도 재원으로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급여는 이 부분에 대한 재원 부담을 전적으로 현재 또는 과거의 연금보험료로 조성된 국민연금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보험료 외의 수입을 국민연금에 투입시킬 상당한 여유가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번역문 발췌)

게다가 OECD 연금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연금 재정에 기여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자부담 원칙'을 주장하고 있는데, 현재 국민연금 제도를 통해 정부도 '상당한 수익'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OECD 검토보고서가 나왔을 때 파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당시 OECD에서 국민연금을 분석했던 전문가 앤드류 라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앤드류 분석관은 1. 연기금 고갈까지 아직 30년이 남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충분히 개혁이 가능하다. 2. 개혁이 늦어질수록 후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 커지기 때문에 빨리하는 게 좋다. 3. 연금 기여율(보험료)을 올리거나 은퇴 연령을 늦춰 재정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4. 정부가 노인부양을 위해 연금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말 화상인터뷰 중인 파리특파원과 고용노동사회국 연금분석가/관련 기사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6648049


앤드류 라일리 분석관은 한국 정부의 공적연금 기여 수준이 OECD 꼴찌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전체 연금보험료의 1/3을 정부가 책임지는 룩셈부르크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이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의 수지 불균형 문제가 초래된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봤고, 그 근거로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목한 것이다.

■ 16년째 논쟁만...한국의 연금 전문가들이 말하지 않는 것

한국은 지난 2007년 연금 개혁을 한 이래 지금껏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민연금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대부분 연금 전문가들은 국고 투입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오지 못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올해 10월 말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개편안 발표. 최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가 밝힌 연금 개편안은 이렇다. 보험료를 더 내고(12%~18%), 연금 수급연령을 늦추고(66~68세)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이다. 재정 안정에 방점이 있는 안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전문가 2인(소득보장 주장) 기자회견/23.8.23 자료: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재정계산위원회 내에서 노후소득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반발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개편안에 소득보장 강화 내용이 빠졌고, 위원회 보고서가 노인 빈곤 문제 등 연금의 기본적인 목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기시감이 든다. 이미 2007년 이후 여러 차례 연금 개혁 시도가 있었고, 전문가 집단이 늘 이 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16년 동안 이어진 토론에서, 비슷비슷한 얼굴의 연금전문가들이, 두 부류(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로 나뉘어, 재정 추계 수치만 달라졌을 뿐 똑같은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16년째 합의안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로 나뉜 국회는 자긴 편 전문가들과 합세해 역시 16년 동안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연금사업을 주관해야 할 정부는 또 국회의 분열(국민적 동의 없음)을 빌미로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연금 문제가 마치 가입자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싸움 구경만 하고 있다.


■ '국민을 든든하게 연금을 튼튼하게'...방법이 뭐예요?

국민연금공단의 표어처럼, 국민연금의 목표는 분명하다. 소득이 끊긴 이후 은퇴 노인들의 생활을 안정 시키고, 이런 연금제가 여러 세대에 걸쳐 공평하고 지속 가능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필요하다.

보험료를 올리긴 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올리기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등 기업들이 감당하기가 힘들다. 아니면 노후소득을 좀 깎아야 하는데?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OECD 1위, 최하위 수준인 약 25%의 실질 소득대체율을 더 낮출 수가 없다. 오히려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아니면 연금 개시연령을 늦춰야 하는데? 정년 연장 논의가 안 된 상태에서 연금 공백기를 더 늘리기는 힘들다.

다들 안다. 그런데도 16년 동안 해결을 못하고 있다면, 이제 대안이 필요하다. OECD 국가 가운데 공적연금에 가장 낮은 재정을 투입하는 정부의 기여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자. 문제는 속도다. 빨리 시작하면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늦게 시작하면 더 큰 재정이 필요하다. 세대 간 불평등도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소득의 9%인데 비해 공무원연금은 18%, 이 중 절반인 9%는 공무원의 사업주인 정부가 낸다. 약 10조 원의 예산을 쓴다. 그러고도 적자가 심해 약 5조 원을 또 쓰고 있다. 매년 더 많은 혈세를 쓴다. 군인연금도 비슷한 사정이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에는 재정을 쓸 수 없으니 가입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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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중 기자 (i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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