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마스크걸' 고현정 "'가진 게 외모뿐'이란 말 싫어, 더 노력했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누구나 살다 보면 가면을 쓸 때가 있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가면 없이 완벽하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서라도 당당하고 행복해 보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연출·각본 김용훈)이 김모미만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이유다. 8월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현정 역시 "'마스크걸'은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글로벌 흥행은 항상 남의 일이었는데 신기해요. '마스크걸'의 쌈박한 매력 덕분 아닐까요? 국적을 불문하고 외모로 인한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또 우리가 강박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잖아요. 그 선택이 항상 옳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속상할 때가 있고요. 그래서 김모미의 선택에 동질감을 느끼신 것 같아요."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다. 넷플릭스 톱(TOP)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마스크걸'은 지난 8월18일 공개 이후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부문 2위에 등극했다. 또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 국가에서는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기뻤어요. 항상 제가 모든 걸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잘 되면 본전, 안 되면 '이제 고현정도 안 통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부담스러웠거든요. '마스크걸'은 저도 다른 배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고, 팀으로서 해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물론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마음에 들었죠. 술술 읽히는 장르물이었고 3인 1역이라는 흔치 않은 구성도 반가워서 '이건 꼭 해야겠다!' 외쳤죠."
'마스크걸'은 불행의 수렁에 빠져 차츰 변해가는 김모미를 표현하기 위해 고현정, 나나, 신인 배우 이한별을 3인 1역에 캐스팅했다. 이들은 세 개의 다른 얼굴로 인터넷 방송 BJ, 쇼걸, 교도소 수감자라는 다른 신분의 김모미를 시간대에 따라 연기했다. 고현정은 '마스크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중년의 김모미로 작품의 후반부와 엔딩을 책임졌다.
"모미는 안타까운 친구죠. 어릴 때는 무대에서 무조건 귀엽다고 칭찬받다가 나중엔 못생겼다고 박수받지 못하잖아요. 그때 느낀 속상한 감정을 가족들의 지지 같은 것들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고요. 내가 원하는 삶은 무대 위에 있는데 외모가 걸림돌이라는 생각에 계속 매몰된 거예요. 그걸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매번 최악의 선택을 해요. 그러다 교도소까지 가고요. 김경자의 모성을 보면서 부러웠을 것 같기도 해요. 당당하게 '내 아들한테 왜 그랬냐'고 한마디 할 수 있는 모습이 엄마로서 다르게 보였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누구보다 모미가 제일 안타까웠어요."
고현정과 나나, 이한별은 잘못된 선택과 불운이 만들어낸 인생의 절벽 끝에 선 김모미를 그렸다. 이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김모미의 강렬한 개성을 담아내면서도 그의 삶을 이루는 일관된 정체성을 탄탄한 연기로 보여줬다. 특히 고현정은 죄수번호로 불리는 일상에 익숙해진 김모미의 무표정부터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표현했다.
"세 배우의 연결성은 걱정하지 않았어요. 보통 살면서 많은 변화를 겪다 보면 초등학교 때, 20대, 50대 사진 세 장만 놓고 봐도 다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성형수술을 받고 다른 얼굴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충분히 달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등장 순서대로 촬영해서 저는 마지막에 했는데 앞부분을 참고하진 않았어요. 단지 '10년 동안 교도소에 있던 사람'이라는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고 풀어나갔어요. 한 장소에서 10년 이상 있다 보면 패턴이 생겼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모미의 텐션은 어느 정도일지 신경 쓰면서 연기했어요."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선' 출신의 배우로 늘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던 고현정의 삶은 김모미가 동경했던 그것과 닮아있다. 데뷔 이후 줄곧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던 그가 김모미의 외모 열등감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고현정은 충분히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저도 1등한 적은 없어요. 외모 덕을 보긴 했지만 '가진 게 외모뿐'이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아서 나머지를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했고요. 물론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삶에 심각한 지장이 있었던 분들이 느꼈을 디테일까지는 모를 수 있죠. 그렇지만 저보다 더 예쁜 사람들한테 치이고 밀려난 적도 있고, 한때 주체 못 할 덩치와 살 때문에 직접적으로 느낀 적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했어요.(웃음)"
이미 수많은 흥행작들이 포진한 고현정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스크걸'은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다. 숏컷에 푸석한 얼굴로 완성한 파격 비주얼, 온몸을 던져 표현한 내면 연기의 힘일 것이다. 무엇보다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은 데뷔 30년 차를 훌쩍 넘긴 고현정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됐다. 그는 "늘 현역이고 싶다"며 연기 활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도 모르게 항상 연기를 생각해요. 어디 앉아서 사람들 지나가는 걸 보면서도 연기를 떠올리고요.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됐어요. 무엇보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어떤 세상인지 잘 알고 있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신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저한테 기대하시는 만큼 실망하실 수도 있겠죠. 그래도 아직은 뒤편으로 보내지 마시고 저를 다양하게 써주셨으면 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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