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엄마가 전하는 미국의 팁(tip) 문화 이야기
판데믹과 인플레이션은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미국 식당의 팁(tip) 문화는 가장 체감 온도가 높은 변화이다. 매일 삼시 세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어머니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무게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외식은 참 좋은 치트 키이다. 밥 하기 싫은 날, 냉장고가 텅 빈 날, 한참 강의 하고 와서 피곤한 날에 밖에서 먹는 한 끼는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마저도 망설여지는 경우가 참 많다. 한국의 외식비도 많이 상승하긴 했지만 미국에 비해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미국은 음식 가격 자체도 이미 높지만 세금이 붙고 거기에 팁까지 포함해서 식사비를 지불해야되기 때문이다.
미국 식당에서의 팁은 자신의 테이블을 담당해주는 서버(server)에게 식사 가격 이외에 별도로 지불하는 비용이다. 미국의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면 안내 받은 테이블에 앉게 되고 이 때부터는 오직 한 명의 서버가 음료와 음식을 가져다 주고 그 밖에 계산을 포함한 다른 일도 전담해서 응대해준다. 근처에 지나 가는 다른 종업원을 부르거나 하면 안되고 오직 자신의 테이블을 담당하는 종업원에게만 주문하거나 다른 부탁을 할 수 있다. 때문에 보통은 18%에서 25% 정도의 팁을 추가로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더 적게, 혹은 더 많이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통의 평범한 식당 단품 메뉴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3만 원 정도의 수준인데 여기에 세금이 포함되고 팁까지 추가되면 3~5만원이 되는 일이 흔하다. 평범한 비빔밥 한 그릇을 사먹으면 대도시 기준 3만원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 경험담을 공유 하자면 최근에 이사한 곳 근처의 코리아 타운에 한국에서 내가 즐겨먹던 분식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 외식을 하게 되었다. 이게 엄마랑 아빠랑 옛날에 데이트 할 때 즐겨먹었던 음식이라며 떡볶이, 순대 등을 서너 가지 주문했는데 팁까지 포함해서 90불 정도 지불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분식점에서 한국 돈으로 십 만원 어치 외식을 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외식을 하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외식을 나가서 아이들이 디저트 까지 원하는 날이면 4인가족 외식비는 금세 십 오만 원에서 이십 만원 정도로 껑충 뛰어오른다. 특별히 고급 식당도 아니고 정말 평범하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데도 외식하는 것이 무서워 지는 액수이다.
그런데 지난 이년 동안 이 부담이 더욱 커졌다. 미국의 팁 문화가 소비자에게 더욱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에는 테이크 아웃 주문이나 드라이브 스루 주문에서는 팁을 받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내미는 계산 단말기에는 팁 선택 버튼이 같이 공지되어 있다. 팁을 내지 않겠다는 옵션을 고르려면 버튼을 두 세번 눌러야 가능한 경우도 많고 제일 메인 화면에는 망설여지는 팁 액수가 띄워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구나 종업원은 그 단말기를 내 얼굴에 내민 상태로 나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다. 쉽사리 낮은 팁 액수를 고르기에는 서로가 민망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비스 자체의 상황으로 보자면 음식을 만드는 행위 말고는 서빙을 받은 상황도 아니고 때로는 모든 주문을 셀프로 마치고 계산만 하는 상황인데도 팁을 내야한다는 것에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인들조차도 팁 문화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고용비용으로 지출되어야 할 그들의 임금을 많은 부분 소비자가 대신 지불하고 있는 시스템이기에 팁 문화의 상당부분은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만 실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소비자와 종업원들 사이에 문제인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많은 소비자들은 못내 불편할 때가 많다. 최근에 인터넷의 한 영상에서 한 미국 여성이20불 가량의 피자를 주문하고 5달러의 팁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팁을 이 정도 밖에 주지 않냐며 배달원에게 욕설을 들어야했던 상황을 포스팅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높아지는 물가에 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려움을 겪는 요즘이다.
"엄마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 사줘~"하는 아이들에게 전처럼 유리 안에 진열된 아이스크림 맛을 고르고 아이스크림을 퍼주며 맛있게 먹으라는 종업원의 상냥한 인사를 듣는 과정이 점차 망설여지고 있다. 팁을 낼 필요가 없는 수퍼마켓에서 아이들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려주고 따가운 햇볕을 등에 지고 돌아 오는 길, 지칠지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점점 더 많은 팁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압박감을 느끼며 언제 부자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엄마는 오늘은 또 저녁밥으로 무얼 해야하나 고민 또 고민한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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