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30년 차 김연수, “이제 겪은 세상을 그대로 타이핑한다”
지난 연말 김연수 작가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짧은 에세이를 써달라고 했더니 더 이상 산문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어째 칼같이 자르는 말투는 아니었다. 소설은 쓴다기에 다시 청탁을 했다. 얼마 뒤 200자 원고지 6장짜리 소설 ‘두 번째 밤’이 도착했다. 산문집을 여러 권 내기도 했는데 왜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걸까. 얼마 전 출간된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힌트가 있었다. ‘두 번째 밤'도 분량을 늘려 수록했다.
2년 전 가을, 김연수 작가는 제주도에 있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이던 시절,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서점에서 낭독회가 열렸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초청으로 가파도 레지던시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날 이후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산문보다 소설을 많이 썼고, 강연 대신 갓 지은 짧은 소설로 낭독회를 했다. 참석한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작가로서 전환을 경험하고 난 뒤, 새로 쓴 소설이 지난해 출간된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일부 담겼고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채웠다. 낭독을 위한 글이라 보통의 단편보다 짧은 편이다. 작가의 말 일부다. ‘모슬포의 저녁이 종종 생각난다. 골목의 어둠 속에서 하나둘 나타나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지친 얼굴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얼굴들, 그 얼굴들을 마주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지금까지 그런 소설을 쓰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새로 쓰겠다고.’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한 지 30년, 20권 넘는 책을 냈고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 중견 작가는 회사 직급에 비유하면 ‘관리직’이라 소설 청탁보다는 강연이나 문학상 심사위원 요청이 많다. 관리직으로 넘어가는 40대, 한동안 그는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상실을 경험한 시기였고 소설에 회의가 생겼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나자 뭔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그런’ 소설을 새로 쓰겠다는 작가를 만났다. 소설집 제목처럼 ‘너무나 많은 여름이’ 눈앞에 당도한 8월 초, 김연수 작가는 날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낭독회를 자주 한다고.
강연을 하면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소설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제 강연을 안 하는데 만약에 신작 소설을 낭독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말한다. 에세이 청탁도 소설로 바꿀 수 있으면 바꾸겠다고 하는데 의외로 잘 바뀐다. 에세이와 소설의 구분이 사실 어렵다. 소설이라고 하면 소설이 되는 거니까. 소설 쓸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산문을 안 쓰기로 한 이유는?
소설이 편하고 에세이가 불편해졌다. 예전에는 그 반대였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의 한계를 느꼈다. 예를 들어 (눈앞의 커피를 가리키며) ‘난 이런 커피가 좋아’ 이렇게 분명하게 말을 할 때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좋긴 한데 100% 이런 커피만 좋아하진 않으니까. 에세이는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이고, 이런 식으로 분명하게 구분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삶의 진실하고는 좀 멀고 가식적인 느낌이 든다. 강연이 끝나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소설을 낭독하면 사람들 반응이 다 다르다. 소설을 자기 인생과 결부시켜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틈이 많다고 할까, 그러니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제주에서의 경험이 궁금하다.
레지던시에 머물 때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행사였다. 책이 출간되어 독자들이 신청하는 낭독회와는 다르고 어떤 사람이 올지 전혀 알 수 없다. 골목에 작은 서점이 있는데 해가 지니까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이더라. 중년 여성이 작업복 같은 걸 입고 있길래 어떤 분들이 오는 거냐고 물으니 농사짓는 분들인데 저녁마다 인문서를 읽는다고 했다. 귀농한 분도 있었다. 좀 걱정이 되었다. ‘나를 모르는 분들한테 내가 쓴 글을 읽어드리면 재미가 없을 텐데, 가뜩이나 낮에 일하고 피곤할 텐데 이따가 졸면 어떡하지.’ 그러던 차에 그분들이 낮에 일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바람이 부는 밭에서 일하는 풍경이었다. 귀농을 했다면 인생을 선택해 내려온 사람들인데 일은 잘 되는지도 궁금했다. 어느 순간 ‘아, 주무셔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라도 쉬셨으면 했다. 이분들이 당근이나 감자를 생산하면 그걸 우리가 먹고 힘을 내는데 ‘나는 줄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내가 만드는 건 이야기인데 이 순간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지금껏 지친 사람들이 감자국 끓여 먹듯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를 써오지 못했구나. 선물하듯 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낭독회는 보통 어떻게 진행되나.
한 시간 동안 소설 두 편을 읽는다. 긴 소설을 먼저 읽고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됐는지 말한다. 그다음 짧은 소설을 또 읽는다. 그럼 쉬었다가 2부를 한다. 하기 싫으면 패스하되 순서대로 모든 사람들이 말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말씀드린다. 20명 정도가 적당하다. 오후 7시에 시작하면 10시 반, 11시쯤 끝난다. 2부의 이야기들 때문에 내가 바뀌었다. 뭉클한 순간이 많다.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보람차게 답하기보다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냐는 질문도 내게 한다. 답하기 어렵지만 그건 쉬운 질문에 속한다.
어려운 질문은?
가령 가까운 사람이 자살하겠다고 하는데 그와 헤어져도 되는지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놀라운 건 그 자리의 딴 사람이 대답을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죽으려던 사람이지만 그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직접적으로 답을 못하겠지만 단지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그걸 나는 보고만 있는다. 강연장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답변을 해야 하니까 스스로도 믿지 않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원하는 건 대답이 아니라 단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게 답을 주는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쓸 때 내용에 대해 이해를 못해도 상관없구나, 저 사람이 저기에 있을 때 정확한 사연은 몰라도 '저 사람이 있다'고 쓸 수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쓰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존재하게 하니까. 소설에 대한 생각이 넓어졌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낭독을 하면 오신 분들이 일단 다 귀를 기울여주셔야 한다. 팔짱 끼고 들으면 분위기가 정말 안 좋다. 그래서 여러 번 낭독해보고 수정을 한다. 애매한 부분, 또렷하지 않은 문장을 뺀다. 예전에는 소설을 '집'에 비유했다. 집을 잘 꾸며놓고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하면 ‘보세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하는 식이다. 어떤 사람은 대단하다고 상도 준다. 재미없다고 하면 되게 가슴이 아프다. 집이 곧 나니까. 어떤 기준이 존재하고 그 잣대는 바깥에 있었다. 낭독회를 시작하면서는 목적지가 있긴 해도 의도했던 지점으로 가게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의 삶과 내 이야기가 결부되어 각자의 지점으로 가는 거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해 약간 높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생각한다.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을 시키는 게 내 이야기의 목적이고 그러면 할 바를 다한 것이다.
2020년에야 소설가 정체성이 생겼다고 했다.
소설가는 말을 다루는 사람인데 전에는 말의 힘, 언어의 힘을 잘 몰랐다. 〈일곱 해의 마지막〉과 〈이토록 평범한 미래〉, 그리고 이번 소설집을 쓰면서 말이라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기 직전, 말이 먼저 나온다. '차별 철폐하라'는 말이 있은 다음에 차별이 철폐되듯이. 어떻게 생각하면 ‘말만 계속한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어, 똑같이 나빠질 거야’ 싶지만 그렇더라도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계속 그 말을 해야 한다. 소설가는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는 말하기’를 하는 사람이다.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좌절하고 비관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쉽다. 그런 이야기는 너무 강력해 초등학생들도 그게 낫다고 할 정도로 스며들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걸 인정하면 그런 사회가 된다. 말이 세계를 만드니까 그것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공급해야 한다. 소설가는 대안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하는 사람이다.
직접 만난 인상적인 독자가 있나?
우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어떤 분은 세 번째 문장을 읽을 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운다. 대부분 왜 우는지는 모른다. 설명도 잘 안 해준다. 우는 것 자체가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게 또 나를 많이 바꾸게 했다. 20여 년 글을 쓰다 보니 소설 쓰기에 회의가 많이 왔다. 소설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더라. 예쁘게 문장을 써서 인정받고 상 받는 사람인가. 쓰기가 점점 싫어졌다. 그때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돌아가셨다. 생전에 내가 인정받고 상 받으면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이 되자 책은 눈에 안 들어왔다.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구나. 소설이 주스만도 못하고 주사 하나에도 못 미쳤다. 그런 회의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소설에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할 즈음 낭독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어쨌든 소설이 ‘이 사람의 삶에 가닿는 부분이 있구나’ 알게 됐다. ‘내 소설이 그래도 그런 식으로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된 거다. 제일 많이 바뀐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다. 소설을 읽을 때 더 이상 떨리거나 부끄럽지 않다. 이분들이 잘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해 출간한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9년 만의 소설집이다. 어떤 40대를 보냈길래.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2015년에는 성폭력, 표절 등 문단에 큰 변화가 일어나며 확 바뀌었다.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소설에 대한 생각도 꽤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이 든 작가가 되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관리직으로 간다. 나이 든 작가는 강연을 하고 심사를 한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소설을 그만 쓰게 되는 시기가 오는 거다. 비관이 깊어졌고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백석 시인에게 왜 끌렸냐 하면(2020년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 시인의 삶을 다룬다) 그가 망해가는 과정 때문이었다. 그도 48세에 삼수(지역명)로 쫓겨나 잊혀졌다. 백석도 그렇다니 위안이 좀 되더라. 이 사람은 천재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그 나이에 삼수로 간다는 건 다시 평양으로 못 돌아간다는 것이고 화려한 시절로는 못 간다는 의미다. 이게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진리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극복을 했나.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쓰는 과정에서 바뀌었다.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시를 보면 슬픔과 외로움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고 고개 들어 천장 높은 곳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위를 올려다보며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를 통해 ‘인터스텔라’ 같은 경험을 했다. 보통 (백석이) 절필하고 난 뒤 남은 날들을 실패로 규정한다. 만일 시인이 2020년으로 와 자기 시집이 남한에서 이렇게 많이 출판된다는 걸 안다면 당연히 찬양시는 안 쓸 것이다. 절필하고 삼수로 가는 결정이 미래를 알고 보면 쉬운 선택이다. 당대의 눈으로 보면 실패담이지만 예술의 눈으로 보면 성공담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점점 나빠진다는 건 지금의 이야기이고 10년만 지나도 소용없는 이야기다. 80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오면 뭐라고 얘기할까. 소설 쓰라고 할 거다. 그게 가장 중요하더라.
근작 중 세월호가 연상되는 소설이 적지 않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가운데 겪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세월호를 다룬) 소설은 가능성에 대한 타진에 가까웠다. 우리한테 가장 큰 상실이 가족을 잃는다든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든지 하는 것인데 그러면 살아갈 의미 자체를 잃게 된다. 거기서 삶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게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좋아했던 작가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럼 그게 사실인가 보다, 당시에는 그걸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설마 거짓말을 했겠는가, 삶은 계속된다는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자’ 그런 과정이었다. 살아남을 때 필요한 게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만들면 그 상황이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있더라. 이제 조금은 안다. 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려고 계속 노력하는지, 왜 죽으면 안 되는지. 또 그들을 희생자로 놔두는 게 옳지 않다고 여겼다.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최종적인 버전은 아니고 계속 써야 할 이야기다.
작품에 소설가가 많이 등장한다. ‘젖지 않고도 물에 들어가는 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나온다. 경험이 반영된 것인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을 몰라도 무작정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전과 다르게 약간 변화가 일어난다. 예상치 못했던 플롯이 미래에 전개되는 것이다. 이걸 경험한 후로 글쓰기도 달라졌다. 내가 아는 것에만 에너지를 투여하면 내 예측대로만 되겠지만 다르게 투여하면 다르게 전개된다는 걸 알았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했다. 글쓰기의 방식도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나.
예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짜놓고 지배하는 편이었다.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캐릭터, 주제를 짜놓았다. 마감을 앞두고는 농성하는 심정으로 소설 나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요샌 다르다. 주로 아침에, 길지 않게 작업한다. 어제 쓴 걸 처음부터 다시 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인상적인 일들의 영향을 받아 새로 쓴다.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걸 지켜본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면 처음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 있다. 세상을 겪고, 그걸 그대로 타이핑한다.
여성 작가들이 한국 문학을 주도하고 있는데.
1980년대 작가들이 문단을 바꿨다. 1990년대생들은 장르를 허물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문단을 바꾸거나 장르를 없애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 바꾼 건 그들이다. 우리는 말만 했는데, 실제 세상을 바꿨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엄청나게 진보했다. 조금 있으면 2000년대생들이 소설을 쓴다. 2010년대생이 소설을 쓰면 언어 장벽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연법칙이라고 여긴다. 앞날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사는 건 그 친구들이니까 뭔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혁명적인 일을 할 거라고 본다. 생존에 방해가 된다면 국가라도 없앨 것 같다.
오랫동안 달리기를 해왔다. 달리기의 근황과 다음 작품에 대해 말해달라.
오래전부터 쓰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끝을 못 냈다.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끝까지 죽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 순교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 알 듯 말 듯 하다. 달리기보다 걷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많으면 세 번 뛰고 나머지는 걷는다. 많이 달리면 빨리 닳을까 봐 걷기로 보충한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잘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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