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는데 웃겨…요즘 ‘대세’ SNS 만화 캐릭터 [ESC]
“알아요?” “어, 알아.” “사실 몰라.”
후배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뭘 아냐는 거야?” “빵빵이요.” “빵빵한 게 빵빵이지. 호빵인가?” ‘농담이죠?’라는 식의 표정을 누군가 지었다. “양파쿵야는요?” “뭐야, 그게?” “최고심은? 누누씨는?” “누누씨는 가수잖아.” “아저씨네. 모르면 아저씨라고요.” “아, 맞아. 나, 아저씨야.” 그건 맞는데, 모르는 건 싫었다. 그래서 그것들이 다 뭔지 물었다. 후배들은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알려주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덜 후배’도 계정을 접속한 후 ‘팔로우’를 눌렀다. 그리고 말했다. “빵빵한 게 빵빵이 맞네, 뭐.”
안 맞는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 저 낯선 이름을 안다면 흔히 말하는 ‘요즘 사람’에 해당하고, 모르면 역시 흔히 말하는 ‘옛날 사람’에 해당한다. 이렇게 구분하는 게 합당하냐고? 나도 처음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말이 되었다. 공부를 해야만 안다는 게 씁쓸하다.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
저들은 에스엔에스에 연재 중인 만화 캐릭터들이다. 공부해서 안 것들을 간단히 적어보자면,(이 글을 읽는 ‘요즘 애들’은 부디 비웃지 말아 주세요) 양파쿵야는 스타를 꿈꾸는 양파다. 쿵야 레스토랑즈의 셰프다. 직장 동료로 주먹밥쿵야와 샐러리쿵야가 있다. 현실에선 머리 크면 안 귀엽지만 캐릭터는 머리 크고 팔다리가 짧을수록 귀엽다. 그래서 앞뒤 내용을 몰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앞뒤 내용을 몰라도’ 이 부분은 쿵야 레스트로랑즈뿐 아니라 여기에서 소개하는 캐릭터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맥락 따윈 잊어’랄까.
쿵야들은 넷마블 게임 ‘야채부락리’의 캐릭터다. 양파쿵야가 ‘맑은 눈의 광인’ 이른바 ‘맑눈광’ 밈으로 인기를 얻으며 유명해졌다. 맑은 눈의 광인은,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질문을 하면 맑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 예를 들면, ‘노력 없이 성과를 이루고 싶다’라는 대사와 함께 양파쿵야가 맑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그림. 이런 게 맑은 눈의 광인이다! “이렇게 귀여운 나에게 야근이라니, 다시 생각해보세요”라는 말풍선과 함께 맑은 눈으로 회사를 바라보는 양파쿵야도 맑눈광이라고 할 수 있다.
빵빵이는 얼굴이 동그란 남자다. 여자 친구 이름은 옥지. 빵빵이는 약하고 옥지는 강하다. 옥지는 해병대 특수첩보부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런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옥지는 빵빵이를 거칠게 대한다. 성 역할을 혼란스럽게 한 게 흥미로운데, 예를 들면 이런 것. 옥지가 하이힐을 신고 벤치프레스를 든다. 빵빵이는 김밥을 만다. 둘이 서열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주먹다짐도 한다. 빵빵이가 마음이 약해져서 옥지를 강하게 때리지 못하는 순간, 옥지가 빵빵이를 마구 패버린다. 묘하고 격한 이질감! 옥지가 늘 화가 나 있는 건, 역시 맥락이 없다. 추정해보자면, 그냥 세상이 싫은 것 같다. 하긴, 누군가에겐 좋아하기 어려운 세상이긴 하니까. 이 만화 이름은 ‘빵빵이의 일상’이고 유튜브에서 인기가 특히 엄청나다. 구독자 수가 150만명이 넘는다. 대부분 영상이 500만뷰가 넘고, 1000만뷰가 넘는 것도 있다. 애니메이션 형태이고 빵빵이의 불쌍한 목소리가 귀엽다. 작가인 이주용이 직접 녹음한다고 한다. 옥지가 빵빵이를 아무리 ‘패도’ 빵빵이의 마음이 한결같다는 게 이 만화의 황당하고 아름다운 점이다.
최고심은 최고심 작가가 만든 캐릭터다. 최고심이 만든 캐릭터 최고심은 스스로 귀엽다고 말하고, 사실 별로 안 귀여운데, 계속 귀엽다고 강조하니까, 음 저게 귀여운 건가 싶은 캐릭터이고, 그래서 귀여운가 보다 생각하며 보니까 정말 귀여운 것 같다. 그림은, 잘 그린 것 같지 않다. 컴퓨터 그림판 열어서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과 말투는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케이! 해보자고!!!”라는 말풍선과 ‘아…하기 싫다…’라는 말풍선이 한 컷 안에 다 들어 있다. 열심히 하자는 파이팅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실 가끔은 별로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건데, 그런 속마음까지 나란히 적어주니까, 그 한 컷을 보면, 격려와 공감이 다 느껴지고 ‘에이, 이렇게 된 거 일단 즐겁게 살아 보자’라는 생각이 든달까. 고심이는 토끼처럼 보이는데, 다람쥐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성별도 명확하지 않다. 아, 글을 쓰면서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파워 긍정 말투’라는 걸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심이가 자신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열거한 컷이 있는데 그걸 보니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소한 것들에 불과한데, 긍정적이어서.
귀여움은 이 시대 최고의 미덕
누누씨는, 얘도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 토끼 같은데, 가끔은 돼지 같다. 긍정적인데 비관적이다. 웃고 있는데 괴로워 보인다. 괴로워 보이는데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뭐지, 얜? 자기를 쓰레기통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불굴(처럼 보이는)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역시 말과 말투가 인상적이다. ‘인간한테 필요한 근육은 오로지 퇴근뿐’이라는 말풍선과 “님 근육은 출근밖에 없는데요”라는 말풍선이 한 컷 안에 있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만 작가 자신은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공부한 걸 적어보았다. 이 캐릭터들의 공통점이 있다. 맞춤법 신경 안 쓴다. 비속어를 마구 쓴다. 행동도 도덕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다. 화나게 한 대상에게는 확실히 복수하고, 싫은 애들한테는 직설화법으로 꺼지라고 말하는 정서. 꼰대처럼 지적하고 싶으면 이 ‘세계’에 들어오면 안 된다. 그런 사람들 오지 말라고 더 저러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묘한 쾌감이 든다. 이건 정말 그들의 세계다. 언더도그의 반란, 기성세대를 향한 저항, 올바른 가치관, 이딴 거 모르겠고, 대충 살자는 느낌.욕설이 거슬린다면 이 캐릭터들을 즐길 수 없다. 그런데 이 만화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걸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부류들을 위한 것은 또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뭔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냥 별생각이 없는 것. 여과 장치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느낌. 누군가는 이 캐릭터들이 소위 ‘엠제트(MZ)’적이라고 규정하고 싶겠지만, 구태의연하다.
캐릭터들의 에스엔에스 계정을 오가다 보니, 팔로하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와는 스무살 정도 차이 나는 한 바리스타는 최고심, 누누씨, 쿵야 레스토랑즈 계정을 팔로하고 있었다. 디엠(DM)을 보냈다. 몇년 만에 이야기 나누는 건데 캐릭터 이야기를 하다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었다. 왜 좋아하는지.
“제가 그 애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①귀엽다 ②눈치를 안 본다 ③공감을 해준다 ④공유하기 좋다,입니다.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말투에서 약간의 광기가 느껴지면서, 저는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부분이 호감이에요. 응원을 해주기도 하고요. 살면서 한번쯤 고민해봤을 주제에 대한 내용이 많이 올라와서 친구들 보여주거나 프로필 배경화면으로 해놔도 재밌더라고요.”
읽을수록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일단 귀여움은 동시대 최고 미덕이다. 뭐랄까, 온갖 분노와 열패감과 휴식과 행복까지 다 경험하고 나서 보니 ‘아,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여움만 한 게 없어’라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달까. 40대, 50대 이상도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다음 세대에게 그런 정서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 이렇게 구분 짓는 습관이야말로 ‘꼰대짓’인데, 그만해야지. 참고로 제 나이 43살.
‘공유하기 좋다’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톡 메시지로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무엇을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게 만든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디엠으로 돌아온 저 대답의 문장들의 맞춤법은 꽤 틀려 있었다. 누누씨, 최고심, 쿵야 레스토랑즈 식구들의 대사와 비슷하게. 아, 이러면 ‘국어’는 누가 지키라는 말인가, 한탄하는 이들에겐 이 캐릭터들이 공감되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 대신 맞춤법 틀려줘서 고맙고, 욕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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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고 싶은데 욕을 할 순 없으니
욕해줘서 고마운 건 ‘빵빵이의 일상’이 압권이다. 욕은 주로 여자 친구 옥지가 빵빵이에게 한다. 빵빵이도 옥지에게 욕을 하지만 작게 하고, 얻어맞는다. 빵빵이한테만 욕하는 게 아니다. 뭔가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그래서 이 만화는 유독 비현실적이다. 빵빵이의 일상을 팔로하는 지인에게 디엠을 보냈다.
“병맛과 찰진 욕설이 시원해서 가끔 봅니다. ㅋㅋ 평소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줘서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 지인은 늘 친절하고 긍정적이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키우고 있다. 두서없고 맹렬한 옥지를 보며 피식 웃었을 것 같다. 현실에선 욕하는 사람을 보면 싫지만, 욕하고 싶은 현실은 너무 많고, 그렇다고 욕은 할 수 없고, 하지만 옥지는 잘한다. 세대에 상관없이 위로와 공감은 중요한 요소인데, 옥지는 극단적이고 난폭하고 어쩌면 누구나 꿈꾸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네, 그렇다고 합시다! 고맙다, 옥지야. 대신 욕해줘서. 그래도 빵빵이 뺨 좀 그만 때려. 참고로 나 남자.
구구절절 적다 보니 쓸데없이 설명이 길다. 그냥 이해할 것들을 공부해서 이해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이다. 유행이 지났지만 ‘정신줄’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소환해서 적자면, 정신줄 놓고 이 만화들을 보면 아주 유익하다. 세대의 언어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해의 의지는 소통의 의지니까. 그것은 인간 본능. 아, 본능. 본능도 시대에 따라 변할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본능이 이 캐릭터들 속에 있다. 온갖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만 집중하는 친구들이니까. 미래도 같이 지워버렸거든.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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