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옥같았던 경찰조사”…아동학대 수사 교원 절반, ‘무고’에 당했다 [교권 울린 무고]

2023. 8. 2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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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 자료 입수
3년간 아동학대 수사 교원 36% ‘무혐의’
실제 기소율 11% 불과 …“신고 남발”
지난 12일 서울 종각역 인근 도로에서 열린 제4차 안전한 교육 환경을 위한 법 개정 촉구 집회에 참여한 교사 등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 경기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인 A씨는 지난해 12월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3개월여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의 문제 행동을 학부모에게 알린 것이 발단이었다. 학생은 부모의 서명을 위조해 과제를 제출하고, 공책에 다른 학생 이름과 욕설을 적어 여자화장실 위생용품함에 넣어 두는 행위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이때부터 문제 학생의 부모는 A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초기에는 A씨의 교육관을 문제 삼았다. 이후에는 A씨의 공황장애 병력을 거론하며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그를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학생이 전학을 가고 1개월 뒤, A씨는 경찰로부터 아동학대로 고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과 교육청의 조사를 받은 경험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A씨는 “그저 교사를 괴롭히기 위해 허위로 고소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서 “심지어 고소 이유도 다 거짓이었음에도 경찰과 교육청의 조사를 받았다. 고소가 진행된 3~4개월간 지옥에 살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알려온 고소 사유는 “수업 중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태블릿PC를 고쳐주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고 있다. 최근에는 통상적인 교사의 훈육 행위를 ‘정서적 학대’로 몰아 신고하는 사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허술한 법망이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현행법상 ‘아동학대 의심’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종 무혐의 처분이 내려져도 고소인이나 신고자를 무고로 처벌할 수 없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속출하면서 ‘교권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 의심 신고만으로도 교사가 직위해제되는 관행이 만연해 교육 활동에 커다란 위축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24일 헤럴드경제는 교원을 대상으로 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교육청이 아동학대로 수사개시를 통보받은 1095건 중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사례가 전체의 36.1%에 해당되는 395건이었다.

무혐의는 수사결과 해당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된 경우(범죄 인정 안됨) 또는 증거가 부족해 혐의 입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증거불충분) 내려지는 처분이다. 이 같은 무혐의 비율은 유치원(55.6%)과 초등학교(40.5%), 특수학교(38.1%)에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분석 대상은 2021년~2023년 8월까지 지난 2년8개월간 지역별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경찰과 검찰의 아동학대 혐의 수사 처분 현황이다. ‘아동학대’란 성범죄를 포함한 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을 기준으로 삼고, 교장·교감·교사 사례를 모두 모았다.

무혐의 외에도 ‘각하·공소권없음·기소중지·죄가안됨’ 등 사유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교원도 3.4%(3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수사건 중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된 사건은 5.5%(60건)이었다. 이는 신고 단계에서 기본적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 정식 수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합의를 통해 고소·고발이 취하된 경우 등이 해당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전체 수사의 45%(492명)가량이 혐의가 인정되지 않거나 기소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무고성’ 신고에서 시작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

다만 기소유예(11.1%)도 불기소처분의 일종이지만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는 점에서 무고 추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수를 차지한 아동보호사건(22%)도 마찬가지로 혐의는 인정되지만 수사기관에서 형사처벌보다 보호처분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가정법원에 넘기는 절차로 무고성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실제 아동학대 혐의가 인정돼 기소된 건수는 전체의 11%에 불과한 120건이었다. 같은 기간 부모, 친인척, 교원 등을 포함한 전체 아동학대 사건의 기소율(14%)보다도 다소 낮은 수준이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담당 출신 한아름 변호사(법무법인LF)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해당 건 자체가 무고성 신고에서 비롯됐다고 등가로 볼 수는 없다”고 신중한 견해를 밝히면서도 “36%에 이르는 무혐의율을 봤을 때는 상당수 신고가 남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기소율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부모 악성 신고를 근절하기 위한 무고죄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또 교사의 교사의 정당한 학생지도에 대한 면책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원지위법 및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황봄이 경기교사노동조합 교권보호국장은 “현재와 같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아동학대 고소는 교사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교육활동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학생은 이를 지켜보면서 교사 지도에 응하지 않고 도전하는 악순환도 발생한다”면서 “정당한 생활지도와 훈육 등이 교사의 당연한 교육활동 범위로 인정돼야 하고, 교사들이 무고한 신고를 당하고 경찰서에 불려가는 일이 없도록 법제도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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