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iN]'잡다한컷' 양경수 작가 "이젠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목표"
단청·탱화 가업 이어받기 싫어 반대 무릅쓰고 서양화 전공
"웹툰 시장 성장했지만 웹툰 작가들 처우·환경 열악해져"
꾸준히 작품 활동…영상화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도전
필명 '그림왕 양치기'(양경수) 작가는 2016년 '약치기'라는 시리즈의 그림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다. 레트로한 그림체에 최근 인기 OTT 콘텐츠인 'MZ 오피스'처럼 파격적이고 역설적인 직장 에피소드를 한 컷에 다룬 이야기는 20대 직장인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애환과 진지하지만 코믹한 반전의 컷툰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자, 방송 뉴스까지 전국에 전파를 타며 양 작가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제 막 사회생활의 '쓴맛'을 본 20대 직장인들의 뜨거운 호응은 양 작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MZ 마케팅'에 한창이던 기업들의 컬래버레이션 제의가 수없이 쏟아졌다. 방송과 강연 섭외도 끊이지 않았다. 네이버웹툰에 '잡다한컷'이 연재되자 '성공한 웹툰작가'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불과 1년여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웹툰 1세대들의 전성기였다. 2010년대 들어 이말년, 기안84, 박태준, 주호민 등이 방송을 타며 웹툰작가도 전문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웹툰 드림'이 꽃피던 시절이었다.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 작가는 컷툰이 젊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스무살 때 집에서 나와 벽화 그리기 등 그림으로 돈 되는 아르바이트와 한때 인테리어 사업도 했었다. 직장 밖 사회생활에도 갑질이 존재한다. 직장생활하는 친구들의 상사 욕하는 푸념도 수없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담긴 작품들이 직장인들의 애환과 공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최근 유튜브 '그림왕양치기' 채널에서 그동안 인연을 맺은 각계각층의 셀럽, 연예인, 인플루언서들과 인터뷰하며 출연자 옆모습을 스케치해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서양미술을 전공한 그의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렇게 6, 7년을 앞만 보며 달려오던 그가 최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노컷뉴스 [만화iN]이 양경수 작가를 그의 자택 겸 작업실에서 만났다.
"만화 '원피스' 오다 에이치로 만나 옆모습 그리는 게 꿈"
▷서양화를 전공하고 불교미술로 데뷔해 해외 초청 전시까지 다녀왔어요. 전도유망한 현대미술가의 길 대신 웹툰작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부모님과 삼촌이 단청과 탱화를 그리셨고 이모도 당시 애니메이터로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당신의 일을 이어가길 바랐지만 저는 싫어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죠. 대학을 다니면서 집에서 나와 독립을 했는데, 학비도 벌고 먹고 살아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벽화, 앨범 자켓도 그리고 늘 그림으로 돈을 벌었는데, 인테리어 사업도 하다보니 02학번인데 학교를 10년 만에 졸업했어요.
결국 서양화나 회화로 먹고 살려면 유학도 다녀오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한 거죠. 2012년 당시 웹툰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같이 살던 동생이 기안84(김희민) 친구였어요. 건너 듣기로 만화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하길래 가지고 있던 미술용품을 다 팔고 태블릿을 샀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순수미술 전공자가 웹툰 작가가 된 사례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전환점이 됐군요.
스무살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하루하루가 학비 벌고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딛혔어요. 그런데 제가 가진 재주가 도움이 됐죠. 이걸로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처음부터 웹툰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디지털 포맷을 활용한 불교미술에 발을 들여서 수상도 하고 해외 전시회에도 초청 받아 나갔죠.
어느 날 제가 단청이나 탱화를 그린 부모님 일을 물려받고 싶지 않아서 서양화를 선택했는데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그 일이 저에게 인생 전환의 기회가 됐고요.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컷툰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정작 양 작가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는데도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제가 원래 어디 소속돼 일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대학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인테리어 사업도 했는데 직장 밖 사회생활도 갑을이 있고 갑질이 있어요. 취업한 친구들도 만나면 언제부턴가 직장 상사 욕을 그렇게 해요. 그러다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를 그려보자 했는데, 갑자기 조회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더라고요.
▷양 작가의 컷툰 그 자체도 재밌는데, 웹툰은 보통 1화가 15컷, 20컷 안팎이잖아요. 한 컷 만화를 그린 이유가 있나요?
사실 여러 차례 시도해 봤는데 저와 맞지 않더라고요. 만화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서양화를 전공하기도 했고 회화도 그렇고 한 장의 그림판에 하나의 이야기를 담는 게 익숙하다 보니 스토리 작화를 하기 힘들었어요. 오히려 한 컷에 의미를 담는, 내가 잘 하는 것을 해보자 했던 게 '약치기' 시리즈가 탄생한 거죠. 또, 당시 큰 인기를 끈 페이스북 업로드에 최적화 된 것도 있었고요.
▷학비 벌고 먹고 살기 위해 택했던 만화가 '인생 반전'이었네요.
제가 경제적으로 목표했던 것은 다 이루었던 것 같아요. 페이스북에서 '약치기' 시리즈가 화제가 되니까 KBS 뉴스에서 취재가 들어와 방송이 됐는데, 그때부터 광고 프로모션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아마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포함해 1년 사이에 80여 건의 계약이 있었고, 시리즈를 모은 책도 출간하고 캐릭터 굿즈, 캐릭터 빵 출시, 네이버 웹툰에도 연재했죠. 카카오톡 이모티콘도 출시했는데 차 한 대 값을 벌었나봐요.
방송 출연 섭외에 강연 요청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매일 계좌에 큰 돈이 찍혔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학비 벌고 먹고 사는 일만 하다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신났어요. 그땐 하루에 네다섯 컷을 그릴 정도로 소재가 무궁무진했죠. 지금까지 400건 정도 프로모션을 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좋은 차도 타보고 그 해에 홍대에서 월세로 살다가 영등포에 2층집(복층) 빌라를 샀으니 짧은 시간에 경제적인 목표는 다 이뤘던 것 같아요.
▷양 작가는 그럼 부자인가요?
지금 돌아보니까 그 돈이 다 어디 갔나 모르겠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해봤다는 것은 한 번씩은 해본 것 같은데 뭔가 저와 맞지 않더라고요. 중간 중간 이런 저런 사업도 해보고 코인도 해보고 가게도 운영해봤는데 까먹은 게 제법 되네요. 일찍 돈을 벌다 보니 한때 슬럼프도 왔죠. '플렉스'했던 것들도 다 처분하고 저를 돌아보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행복한 일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어요. 지금은 제 옷걸이에 맞을 정도로,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어요.
▷최근에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옆모습을 스케치하는 콘텐츠가 인상적인데요.
제가 그려왔던 그림의 연속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죠. 제가 그동안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가진 스토리가 너무 흥미진진하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듯 이분들 이야기를 담아야겠다 싶었죠. 어릴 때부터 친구나 지인들 옆모습을 스케치해 그려 주는 게 즐거웠는데 받는 사람도 너무 좋아했어요. 누군가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깊은 관심과 관찰이 필요한 일이죠. 그 과정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진실한 시간들을 담고 싶었어요. 아직 초반이다 보니 유명한 개그맨이나 배우, 셀럽들을 초대한 것도 있는데, 앞으로 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초대해서 그분들 이야기를 나누고 시청자분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정말 이 사람은 꼭 초대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나요?
제가 만화 '원피스'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제 자신을 '각성'한 이후로 자제하고 있지만 원피스 피규어를 집 가득히 수집했을 정도로 원피스는 제 '최애' 만화예요.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 님을 초대할 수 있다면, 만나서 그의 옆모습을 그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아요. 제 꿈입니다.
▷최근 웹툰 업계에 챗GPT 등 인공지능(AI) 제작이 논란이 되고 있어요. 웹툰 업계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사실 웹툰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태블릿과 같은 기술 장치들로 만들어요. 오래 전부터 배경이나 채색, 스케치 도구 등 많은 것이 자동화돼 있어서 웹툰 작가나 업계에서는 익숙한 현상이죠. 다만 AI가 작가의 여러 그림을 학습하고, 프롬프트(거대 언어 모델로부터 높은 품질의 응답을 얻어낼 수 있는 프롬프트 입력값들의 조합을 찾는 작업)를 통해 그림과 스토리를 무한 생산하는 과정에 '크리에이터'(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AI로 만든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물론 웹툰을 구독하는 독자분들의 'AI로 웹툰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창작이냐'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 시키는 과정도 필요할 겁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는 늘 논쟁이 있어 왔고 해답을 찾을 거라 믿어요.
▷웹툰 시장이 10여 년 사이 정말 크게 성장했어요. 빛과 그림자를 평가한다면.
제가 네이버나 카카오 등 플랫폼 중심의 작품 활동을 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저도 웹툰 시장의 성장을 통해 혜택을 받은 측면이 있죠. 정말 많은 웹툰 작가들이 있고 지금도 신예 작가들과 지망생들이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있는 작가들이 많아요.
초기에는 작가 혼자서 그리고 스타 작가가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웹툰 제작사나 에이전시에 소속돼서 자신의 작품으로 데뷔하기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거든요. 독자들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웹툰 퀄리티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작가는 한 명이지만 그 뒤에 정말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요. 갈아 넣는 거죠. 독자들 입장에선 좋은 웹툰을 볼 수 있으니 정말 좋죠. 하지만 거기에 속하지 못한 군소 작가나 지망생들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잠도 미루며 격무에 시달리고 버티다 결국엔 에이전시에 들어가는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가고 있어요. 이게 누구를 위한 시장인가, 정말 그들에게 합리적이고 올바른 대우를 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늦기 전에 끄집어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시장이 커지고 웹툰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최고점을 향해 가면서 오히려 작가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등한시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가 많은 작가들을 만나보고, 한 발짝 뒤에 있는 입장에서 그런 문제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이 나오는 지속가능한 웹툰 생태계를 위해 반드시 짚고 갔으면 합니다.
▷새로운 계획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림왕 양치기' 작가의 목표는.
시대 흐름에 맞춰 최근 유튜브 콘텐츠를 하고 있고 여전히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이전처럼 치열하게 앞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옆을 보려고 합니다. 기존 작품들을 기반으로 영상화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작가도 좋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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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maxpres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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