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시기에..오타니도 결국 사람이었다[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오타니도 결국 사람이었다.
LA 에인절스는 8월 24일(한국시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아들었다. 신시내티 레즈와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등판한 오타니 쇼헤이가 1.1이닝만에 팔이 좋지 않다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오타니는 더블헤더 2차전에 다시 출전해 2루타를 기록했지만 구단 의료진으로부터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우측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UCL) 파열이었다. UCL 파열은 토미존 수술로 이어지는 바로 그 부상이다. 팔꿈치 인대가 손상된 오타니는 올시즌 더 마운드에 오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투수 오타니'는 시즌아웃 된 것이다.
에인절스는 갑작스럽게 에이스를 잃었다. 오타니는 올시즌 23경기에 선발등판해 132이닝을 투구하며 10승 5패,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선두 주자는 아니지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경쟁을 펼치는 투수였다. 에인절스에는 오타니를 제외하면 규정이닝을 충족시킨 투수도, 4.00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발 투수도,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투수도 없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한 루카스 지올리토마저 이적 후 5경기에서 1승 4패, 평균자책점 6.67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타니의 부상의 부상으로 얇디얇게 남아있던 포스트시즌에 대한 에인절스의 마지막 희망의 끈조차 끊어진 셈이 됐다. 오타니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즌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며 불리한 상황에서도 여름 이적 시장에서 '구매자'로 나서며 포스트시즌 도전을 이어간 에인절스의 선택은 결국 처참한 실패가 됐다.
다만 냉정히 볼 때, 이 부상은 에인절스에게 대단한 악재는 아니다. 오타니의 부상이 없더라도 에인절스는 이미 포스트시즌에서 사실상 탈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블헤더를 모두 내준 에인절스는 승률 0.477로 아메리칸리그 1위 텍사스 레인저스와 승차가 12경기, 와일드카드 3위 시애틀 매리너스와 승차가 10.5경기가 됐다. 에인절스가 11연승, 시애틀이 11연패를 해야 순위가 뒤바뀌는 상황. 그저 '산술적으로'만 가능성이 0이 아닐 뿐, 사실상 포스트시즌은 이미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타니의 부상으로 있던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 부상은 오타니 개인에게 가장 큰 악재다. 오타니는 올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나서야 한다. FA 시장에 나서면 '돈 방석'에 앉는 것은 기정사실. 총액 5억 달러 이상의 전례없는 초대형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는 상황이었다.
다만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는 계약은 오타니가 건강하게 투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전제가 붙는 것이었다. 투수로도 타자로도 뛰어난 오타니지만 하나씩 떼 놓고 평가하면 양쪽 모두 최고는 아니다.
투수로서는 통산 규정이닝을 한 번 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규정이닝을 간신히 넘긴 166이닝을 던졌을 뿐이었다. 뛰어난 투수지만 다른 특급 선발투수들보다 많게는 10경기 정도 등판이 적다. 타자로서는 홈런왕을 노릴만큼 대단한 파워와 20개 이상의 도루를 할 수 있는 빠른 발,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정교함을 동시에 갖췄지만 포지션이 지명타자로 한정된다. 아무리 대단한 타자라도 '전문 지명타자'는 수비를 소화하는 선수와 같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물론 아직 수술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인대의 파열 정도에 따라 수술대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인대가 완전히 파열됐다면 토미존 수술을 받아야하지만 부분 파열 정도의 부상이라면 수술 대신 주사 치료와 재활로 대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타니와 에인절스는 일단 추가 소견을 받아본 뒤 향후 행보를 결정할 계획이다.
만약 토미존 수술을 받는다면 오타니는 루키 시즌이던 2018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면 오타니는 당장 '시장 가격'의 폭락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최근 토미존 수술의 성공율이 높아졌다고는 해도 5년만에 두 번의 토미존 수술을 받은 선수를 '마음놓고' 기용하기는 어렵다. 투수 복귀의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복귀한다고 해도 최근 3시즌처럼 완전한 투타 겸업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29세인 오타니는 수술을 받을 경우 30대가 돼서야 마운드에 돌아오게 된다.
파열 정도가 걱정한 것보다 심하지 않아 토미존 수술을 피하게 된다고 해도 가치의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2018년 토미존 수술을 받은 오타니가 투수로 제대로 복귀한 것은 2021시즌. 정도가 최악 수준으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단 3시즌 만에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구단들 입장에서는 '거액을 주고 영입한다고 해도 2021-2023시즌의 완벽한 투타 겸업 퍼포먼스를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지갑을 여는데도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름 시장에서 오타니를 팔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사실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 에인절스는 올시즌 이전부터 오타니와 연장계약을 맺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팀 성적에 대한 불만이 많은 오타니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타니와 '역대급' 연장계약을 맺은 뒤 오타니가 부상을 당했다면 자칫 간신히 벗어난 알버트 푸홀스 계약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 수도 있었다. 또 만약 이번 부상으로 '시장 가치'가 폭락할 경우 오타니가 익숙한 에인절스에 남는다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올시즌 실패가 사실상 확정된 에인절스 입장에서 오타니의 부상은 대단한 악재가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안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2021시즌 역사를 쓰며 MVP를 수상한 오타니는 2022시즌에는 역사상 최초로 규정타석, 규정이닝을 동시에 충족시키며 또 한 번 야구계를 뒤흔들었다. 올해 3년 연속 완벽한 투타 겸업은 물론 MVP 탈환까지 노리며 '차원이 다른 선수'로 올라서는 듯했지만 그도 역시 사람이었다. 결국 인간의 신체가 가진 내구성의 한계는 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오타니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주목된다.(자료사진=오타니 쇼헤이)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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