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트럼프가 촉발한 ‘정치적 비상사태’
'의사당 난입' 선동혐의 트럼프에
헌법 수정조항 '공직 배제' 적용땐
출마 자격상실 놓고 법적 다툼 가열
국가시스템 큰 혼란 초래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헌법을 거스르며 2020년 선거 결과에 불복했고 이를 뒤집으려 했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서 그가 승리한다고 가정할 경우 선거 결과를 존중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 되지 않을까. 이런 법리 논쟁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일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법리 논쟁의 근거가 되는 연방 수정헌법 14조 3항은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한 공직자’ 또는 ‘적에게 원조나 편의를 제공한 자’는 공직에 오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방 하원은 이에 따라 2021년 1월 6일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와 관련해 그를 내란 선동 혐의로 탄핵소추했다.
당시 언론과 학자들은 수정헌법 14조의 자격상실 조항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상원이 트럼프 탄핵안을 기각하자 떠들썩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의 자격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명의 저명한 원전주의(헌법 제정 당시의 뜻과 목적을 지키려는 정신) 헌법학 교수는 최근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에서 의사당 난입 사태에 따른 그의 공직 자격상실은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의회의 탄핵 절차, 또는 형사재판의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헌법 수정조항에 담긴 본래의 의미에 관한 단순한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논문 작성자들은 “정부 관리들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는 수정헌법 14조 3항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 안에서 앞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화당 예비선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압도적 우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가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면 일단 한 명의 정부 관리, 혹은 전국 50개 주 가운데 한 곳의 주 정부가 이를 위한 법적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만약 해당 주의 대법원이 논문의 견해에 동의한다면 그는 연방대법원에 항고할 것이고 대법관들은 선거전 와중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 자격 박탈의 합헌성을 가려달라는 요구를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2021년 상원이 트럼프 탄핵안을 기각한 후 그의 가장 강력한 반대론자들조차 수정헌법 14조가 그의 대선 출마를 차단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예비선거가 다가오고 그의 출마에 대한 법적 도전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출마 자격을 박탈하려는 노력은 그에 대한 4건의 형사 기소와 맞물리면서 양극화된 그의 지지 세력과 반대 진영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의사당 난입 사태를 조사하는 하원 특별위원회가 정치적 열기를 최대한 끌어올릴 때까지 연방 법무부는 그에 대한 사법 처리를 늦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의 출마 자격 박탈 움직임에도 비슷한 역학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 내 중도 좌파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그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의 사법 리스크가 커진다면 여론은 지금의 상황이 정치적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또 다른 원전주의 법학 교수는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이 어떻게 폭동의 조건으로 작용했는지에 관한 변두리 이론을 제시한다. 일찍이 없었던 대선 후보의 헌법적 자격상실은 사실상 선거가 치러지기 이전에 선거판을 뒤집는 것으로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와 유사한 혼란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그의 출마 자격을 인정하고, 그에게 우호적인 검사가 그의 출마를 막으려 한 사람들을 선거 방해 혐의로 기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미국은 불장난을 하고 있다. 2020년 선거 이후의 악명 높은 행동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이 미국 국가 시스템에 비상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긴박감을 불러일으켰다.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내년 선거 전 그를 기소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물론 그의 출마를 차단하려는 캠페인이 확산될 경우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원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권 행사를 엘리트 지배층이 막으려 한다는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기수로 남는다면 그가 출마 자격을 상실하건 아니건, 기소되건 말건, 대선에서 이기건 지건 간에 내년 대선은 미국의 정치적 정통성에 불가피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혼란을 진정시킬 유일한 기회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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