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실패하는 스팩 속출, 왜?… “개미라고 바보는 아니니까요”

오귀환 기자 2023. 8.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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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 합병하려다 취소된 기업, 올해만 7건
지난해(2건)보다 3배 넘게 늘어
장외기업 고평가됐다 지적 잇따라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을 노리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합병 대상이 될 기업의 가치가 스팩 주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팩은 상장사지만 기업가치는 없는 페이퍼컴퍼니다. 일반 공모주처럼 공모 절차를 밟아 상장한다. 상장 이후 3년간 합병할 기업을 찾지 못하면 주주들에게 원금을 돌려주고 해산한다. 비상장기업이 스팩과 합병하면 우회 상장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합병 결의가 취소된 스팩은 총 7개다. 지난해 같은 기간(2개)과 비교하면 3배 넘게 늘었다. 스팩 합병에 실패한 기업은 레보메드, 유디엠텍, 비에스지파트너스, 캡스톤파트너스, 에이치비인베스트먼트, 가이아코퍼레이션, 원포유다.

가이아코퍼레이션의 경우 지난 3월 말 스팩 합병을 철회했다. 한국거래소가 심사과정에서 회사가 자본잠식을 해소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점 등 재무안정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이아코퍼레이션의 자본총계는 지난 2021년 마이너스 15억원을 기록했고, 2022년 67억원으로 회복했다.

KB제23호스팩과 합병을 추진 중인 식품안전 솔루션 기업 세니젠도 일부 스팩 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다음달 15일 합병 여부를 결정짓는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2005년 설립된 세니젠은 전자분석 기술을 통해 식품 위해 미생물진단 및 제어 솔루션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식품 미생물 유전체 분석서비스(Geneka), 신속 미생물 검출시스템(Genelix) 등 상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세니젠은 지난 2018년부터 5년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를 포함해 총 5년 추정 실적으로 몸값을 604억원으로 책정했지만, 현재 실적과 괴리가 크다. 추정 실적을 달성을 위해선 2년 뒤인 2025년부터 흑자로 돌아서야 한다. 소액주주들이 반대하면 합병이 실패로 돌아갈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KB제23호스팩의 소액주주 지분율은 78.56%다.

스팩 합병을 위해서는 발행 주식 수 3분의 1 이상 승인을 얻고, 주주총회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스팩과 합병할 기업의 가치가 터무니없이 높다 보니 스팩의 소액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설명한다.

반면 기업들은 스팩 상장을 선호하고 있다. 직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장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직상장은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다. 이후 재무와 안정성 요건 등을 심사해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통과 시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고 수요예측과 청약 과정을 거쳐 상장한다. 이와 달리 스팩 합병 절차는 이사회 결의 후 합병 내용을 공시하고, 합병상장 예비심사와 상장 심사를 받는 것에 그친다. 결과가 나오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주주총회를 거쳐 합병 절차가 마무리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스팩 우회 상장은 코스닥 시장 입성에 실패한 기업들이 주로 도전하다 보니 애초에 기업이 우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기업가치 책정 역시 거래소가 심사하는 직상장보다 허술하게 이뤄지다 보니 높아진 가격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IPO 시장이 침체하다 보니 애초에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을 시도한 기업 자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수요 예측 부진으로 인한 상장 실패 위험이 있는 직상장보단 스팩을 발행하는 편이 부담이 덜하다.

통상 증권사는 스팩 설립 시 대표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이를 통해 건당 3억원 또는 공모금액의 3% 수준의 수수료를 거둔다.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기관은 1000원에 취득하는 보통주나 행사가가 1000원인 전환사채(CB)를 인수해 투자한다. 일반투자자가 투자하는 공모가(2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익을 내기 쉽다. 다만 증권사는 스팩 지분 투자 지분에 제한을 받는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사가 비금융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애초에 올해 증권사들이 스팩을 상장한 건수가 지난해보다 늘었다”며 “직상장보다 부담이 덜하고, 증권사는 공모가의 절반에 공모주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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