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박찬종 "北에 28만 중국군 사실상 주둔…南은 간첩활동에 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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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 기사는 지난 18일 [삶] 박찬종 "전두환도 김일성 만나려고 어마무시하게 노력했다"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이번 두 번째 인터뷰 기사는 북한 문제를 주로 다뤘고, 한국 정치의 문제를 담은 세 번째 인터뷰 기사는 조만간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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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ㆍ스탈린ㆍ호찌민ㆍ티토 등 누구도 3대 세습 안해"
"김정은 남한 방문한다면 반대할 이유 없어…대화 해봐야"
[※ 편집자 주= 박찬종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 기사는 지난 18일 [삶] 박찬종 "전두환도 김일성 만나려고 어마무시하게 노력했다"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이번 두 번째 인터뷰 기사는 북한 문제를 주로 다뤘고, 한국 정치의 문제를 담은 세 번째 인터뷰 기사는 조만간 송고됩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박찬종(84) 변호사는 남북통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두만강과 압록강의 중국지역 접경에는 중국군 28만 명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들은 북한에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걸어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군은 사실상 북한에 주둔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9일과 21일 연합뉴스와의 두차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사망하거나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그 자체가 남북통일의 호기가 될 수 없다"면서 "중국군이 진입해 북한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북한 전역을 장악한 뒤 괴뢰정부를 수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제주 4.3사건에 대해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한 남로당의 공작으로 시작됐다"면서 "그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됐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철저히 해줘야 하지만 사건의 본질 자체가 왜곡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북한 정권은 남한 적화통일 전략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 남한은 간첩이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1962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변호사는 1964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3년 9대 국회에 입성했으며 10대, 12대,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인권 특위 위원장, 1987년 통일민주당 정책위원장, 1996년 신한국당 수도권 선거대책위원장, 2003년 한나라당 상임 고문 등으로 일했다.
현재는 유튜브 '박찬종 TV'를 통해 활발한 정치 평론을 하고 있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50대까지는 건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60대 이후에는 조깅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날씨가 더우면 방안에서 조깅한다. 우리 아파트는 베란다가 없어서 내부를 한 바퀴 돌면 30m가량 된다. 큰 병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 술·담배는 많이 했나.
▲ 술은 70대부터 마시지 않는다. 그전에는 거의 매일 마셨다. 혼자 있을 때도 먹었다. 담배는 마흔 살 때 끊었다.
-- 골프는 하나.
▲ 10년 정도 하다 1980년 5월부터 안 했다. 그날 대학 동기들과 수원에서 골프를 치던 중에 정치인들이 신군부에 잡혀간다는 뉴스를 봤다. 나는 즉시 골프를 중단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 자녀들은 무슨 일을 하나.
▲ 2녀 1남을 뒀는데 큰딸은 작곡가, 작은딸은 의사다. 아들은 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 미팅에서 만났다. 경기여고 동문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강좌를 들었던 아내는 이제 학생이 아닌 강사가 돼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기 전후에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했다. 이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져도 남쪽을 향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1차로 남한, 2차로 미군을 겨냥한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가 위험해졌다.
-- 한반도에서 핵무기는 균형을 잃었다고 봐야 하나.
▲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동해안에 핵잠수함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탄도탄을 사이판이나 괌 근처에 떨어트리면 미군은 핵잠수함을 이용해 근거리에서 평양을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양은 석기시대로 바뀔 만큼 초토화된다.
-- 남한도 핵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돼 있으니 핵무기 개발은 불가능하다. 한미 동맹을 통해 핵무기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 남북통일은 언제 이뤄질까.
▲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만약에 북한 김정은의 건강이 악화하거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돌발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남북통일의 호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군이 북한을 장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고 있어서 비상시에 개입할 명분이 있다. 중국군 28만 명은 압록강과 두만강 접경지역에 포진해 있는데, 두만강은 갈수기의 깊이가 얕기에 걸어서 북한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겨울에는 얼음 위로 걸어서 오면 된다. 사실상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하는 것과 같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은 북한 전역을 장악한 뒤 자신들의 괴뢰정권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 협상의 대상자에 중국도 들어가게 된다. 통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 원론적으로는 남한이 압도적 우위의 경제력과 민주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남한의 우수한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시스템이 휴전선 넘어 북한에서도 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이 남한 방식의 사회를 원할 것이다. 즉 북한 주민이 중국의 괴뢰정부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 김정은이 남한을 방문한다고 하면 찬성해야 하나.
▲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없다. 김정은이 이를 수용할 리도 없다. 김정은은 폐쇄적 생각에 사로잡혀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장난감처럼 쏘아대는 것으로 내부 통제를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남한에 올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하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신변 안전을 보장할 테니 오라고 해서 그와 대화를 나눠볼 필요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밀스럽게 북한을 접촉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행위는 국군통수권자의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이 홍수 등으로 식량난이 심해졌다고 한다. 평양 시내를 제외하고는 식량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자료를 보면 북한 군인들은 키가 작고, 아이들은 영양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양 시내의 노동당 간부, 군 간부에게는 외제 승용차, 고가 만년필, 외제 시계, 포도주 등을 선물로 주고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모순투성이다.
-- 모순의 다른 사례가 있다면.
▲ 개성공단이 열리기 직전에 현대그룹이 사전답사 차원에서 기자들을 데리고 개성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동행했다. 우리는 개성 시내를 둘러보고, 선죽교와 박물관에도 가봤다.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10㎞ 정도 달려서 박연폭포에도 갔는데, 마주 오는 차량이 전혀 없었다. 고속도로 중간중간은 망가져 있었다. 개성 시내에는 '미 제국주의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는데, 박물관은 선물을 팔면서 달러로 결제하도록 했다. 이것도 모순이다.
--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TV 대선 토론에서 우파 정당의 어떤 후보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하자 다른 경쟁 후보가 "북한에 가서 직접 봤냐?"라고 물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직접 가서 확인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죽였다. 고모부 장성택을 회의장에서 끌어낸 뒤 평양 시내에서 고사포로 공개 처형했다. 형과 고모부에게 이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하겠는가. 김정은의 이런 행동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방식이다.
-- 김일성은 어떻게 했나.
▲ 김일성은 6·25전쟁 후에 종파분자 숙청에 나섰다.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의 최창익, 남로당 출신의 박헌영, 소련파 출신의 허가이,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이강국 등이 몰살됐다. 약산 김원봉도 그때 죽었다. 김일성은 그들을 체포하자마자 바로 죽이지는 않았다. 중국과 소련의 눈치를 살피다 2∼3년이 지난 후에 괜찮다고 판단되자 처형했다. 김원봉이 죽은 것은 1958년이다.
-- 왜 숙청해야 했나.
▲ 박헌영, 허가이, 김두봉 같은 사람이 볼 때 김일성은 애송이었다. 김일성은 1912년생이었고. 박헌영은 1900년생이니 나이 차이가 12살이나 됐다. 김원봉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190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로, 김일성보다 훨씬 더 철저히 항일 운동을 했다. 6.25전쟁 이후 김일성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장기 집권 태세에 들어가자 그들은 노동당 중앙위원회를 통해 김일성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사전에 발각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박헌영을 맹견이 있는 우리에 넣어서 고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제주 4·3 사건은 어떻게 진행됐나.
▲ 1948년 5월10일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제헌국회) 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남한 내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해서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남로당은 남한 내 200개 선거구 가운데 절반가량에서는 선거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폭동을 일으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남로당의 그 계획은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실패했다. 제주에서 폭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은 27세의 김달삼이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일본 유학을 하면서 이론적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남로당 폭동 세력은 4월3일 새벽을 기해 13개 파출소와 관공서를 공격하고 우익인사를 학살했다. 경찰서 간부를 잡아서 손발을 묶어 눕혀 놓고는 톱으로 목을 자르기도 했다. 도끼로 죽이기도 했다.
--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필요가 있었나.
▲ 그렇게 해야 남로당을 따를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공포도 리더십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 육지의 군경이 제주에 투입되면서 양민이 피해를 봤나.
▲ 제주도 치안이 마비되자 육지에 있는 군인과 경찰이 제주도에 와서 적극적인 소탕 작전을 펼쳤다. 제주도를 그대로 두면 육지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폭동 세력은 군경에 쫓겨 한라산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민간에 내려와 음식을 구하기도 했는데, 정부군은 '청야전술'을 펼친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제공한 양민을 죽이기도 했다. 반복되는 이런 공격과 복수의 과정에서 양쪽이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죽였고 양민 희생자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 김달삼은 어떻게 됐나.
▲ 군경이 제주도에 도착하자 그는 북으로 달아났다. 평양에서 제주폭동 보고대회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김일성이 그를 특별히 대우하지는 않았다. 김일성은 6·25전쟁 중에 그에게 게릴라전 참여를 지시했고, 김달삼은 그 명령을 따르다 강원도에서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 6.25 전쟁은 남한의 공격으로 시작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 1980년대까지 북한 쪽 자료를 토대로 남한의 북한 침략설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 나라가 보유한 모든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그 문서를 보면, 1949년 10월에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을 만났다. 그때 스탈린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고 북한의 남침을 승인하지 않았다. 1950년 3월에 다시 스탈린을 만난 김일성은 남한 침략이 성공할 수 있으니 승인해달라고 거듭 설득했다. 북한군이 38선만 통과하면 남로당 조직이 봉기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이승만 정권은 무너진다고 했다. 이 말에 스탈린은 귀가 솔깃해졌고 남침을 승인했다. 탱크를 비롯한 전쟁물자도 제공했다. 스탈린은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면 힘을 소모할 가능성도 계산에 둔 것으로 보인다.
-- 6.25 전쟁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했나.
▲ 김일성은 경쟁자들을 숙청했고 전제 군주체제를 만들었다. 김일성 유일사상을 주입하고 세습체제를 조직했다. 스탈린, 호찌민, 마오쩌둥, 티토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김일성 일가가 70년 이상 집권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사회주의인가.
--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식량난으로 300만 명이 죽었는데,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 공포정치 때문에 가능하다. 김정은은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죽였고, 고모부 장성택을 회의장에서 끌어낸 다음 평양 시내에서 고사포로 처형했다. 이런 공포정치가 통치하는 데는 가장 쉬운 방식이다.
-- 한국의 좌파는 왜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아예 언급을 안 하는 것인가.
▲ 북한을 자극하면 남북 관계가 나빠져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봤다면 오판이고 바보 천치 같은 생각이다. 평화는 힘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 김대중,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통일을 앞당길 것으로 판단한 것 아닌가.
▲ 그들이 남한 우위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그런 정책을 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보다는 평화 무드를 진전시켰다는 공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고 나는 본다.
-- 이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이 대남 적화 전략 전술을 포기하지 않고 간첩을 보내고 있는데,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나?
-- 남북한 국력의 차이가 매우 큰데.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북한은 아직도 생각할까.
▲ 민주노총은 광화문에서 집회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평택 미군 기지 외부에서도 '양키 고 홈'을 외치며 시위한다. 북한으로서는 이를 더욱 선동하기 위해 간첩을 보내고 있으며 그런 증거도 많다. 현재 남한은 간첩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이다.
-- 남북통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 통일에 따른 혼란이 우려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통일의 이점이 많다고 본다. 북한에는 희토류를 비롯한 부존자원이 많고, 인력도 우수하다. 남한에는 기술과 자본이 있다. 이런 남북의 생산요소들이 결합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민족사적으로 보면 남북한이 분단돼 있고, 북한이 군주체제로 운영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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