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진동'과 '방구의 무게', 그리고 '왕의 DNA'[광화문]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2023. 8. 2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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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의 무게 포스터

"영어 듣기평가 도중 시험 감독관의 휴대폰 진동이 울려 시험을 망쳤습니다."

'2015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직후인 2014년 11월 18일. 한 수험생이 수능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카페에 이 글을 올리면서 제대로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살을 하겠다고 예고하자 단숨에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는 당시 "비행기도 뜨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시간에 감독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을 소지한다는게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모든 것을 걸고 본 목숨만큼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잘못을 해 놓고도 뻔뻔한 사람의 태도에 죽을 만큼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교육감님과의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 했지만 교육청은 '바쁘시다', '만날 수 없는 분이다'는 말로 소통을 거부했다"며 금전적·정신적 피해 보상과 감독관 처벌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3년 뒤 박단비 감독이 연출한 '방구의 무게'란 단편영화로 연결된다. '휴대폰'은 '방귀'로, '수능'은 '고3 중간고사'로 치환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이자 고3 수험생인 '민원'은 중간고사 감독관으로 들어온 '슬기 선생님'이 자신의 자리 옆에서 뀐 방귀 소리와 냄새 때문에 영어듣기 평가시험을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 수시전형 준비로 내신에 올인하고 있는 민원은 틀린 영어 한 문제를 되찾기 위해 친구들을 설득해 재시험 찬반 투표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재시험이 무산되자 민원의 엄마가 학교를 찾아와 슬기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은 채 난장판을 만들게 되고, 민원은 억울한 마음에 교육청에 전화를 걸지만 무시만 당했다.

전대미문의 후폭풍을 몰고 온 방귀 에피소드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엔딩'으로 일단락됐지만 이 영화가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역할과 관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20분 러닝타임에 집약된 학교의 현실은 6년전 작품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2023년 현재와 맞닿아 있다. 최근 세종시 한 초등학교에서 드러난 '왕의 DNA(유전인자)' 논란은 교권 추락과 학부모 갑질, 아동학대 등으로 물든 우리 교육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교육부 공무원인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등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하고,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직위해제 처분을 받게 했단 사실이 알려지자 공분을 샀다. "사람이 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교육당국은 조사를 통한 엄중 조치를 공언했고, 해당 부모도 사과했지만 싸늘한 여론이 가라앉진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 서이초 교사 사망을 계기로 불붙은 교권 강화 요구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공교육 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교육부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권 보호 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올 2학기부터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수업 방해시 관련 물품을 압수하거나 퇴실을 지시할 수 있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를 통해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구분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민원창구 일원화와 대응팀 가동 등 학부모와 교원들의 공식적인 소통 채널도 확보키로 했다. 하지만 학급교체 이상의 중대한 교권 침해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과 같이 국회의 협조가 없으면 추진이 불가능한 대책도 산적해 있다. 교권 추락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여·야(더불어민주당)·정(교육부)·교육감(시·도) 4자 협의체'의 대승적인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교육 3주체 간 권한과 책임을 조화롭게 존중하는 '모두의 학교'를 만들겠다"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약속이 이번엔 꼭 지켜지길 기대해본다.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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