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수학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물리학자들의 착각 [책&생각]
실재의 모든 것 물리학적 설명
물리학자들의 착각과 오류 해부
물질부터 자아까지 실상 드러내
세계 그 자체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l 동아시아 l 1만6800원
울프 다니엘손(스웨덴 웁살라대학 교수)은 암흑에너지·끈이론·우주론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이자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의 세계를 알리는 대중서를 여러 권 낸 저술가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 회원이기도 하다. 다니엘손이 2020년에 펴낸 ‘세계 그 자체’는 물리학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안내하는 책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물리학을 철학적 사유와 대면시킴으로써 물리학자들이 자주 빠지는 잘못된 세계상을 드러내고, 그런 폭로 작업을 통해 ‘세계 그 자체’를 가능한 한 투명하게 보여주려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다니엘손은 자신을 실재론자라고 못 박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니엘손이 말하는 실재론은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긍정하는 존재론을 뜻한다. 이 실재론은 물리학계에서 자주 목격되는 환원주의적 존재론과 뚜렷이 대비된다.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 상당수는 우리의 세계가 ‘극소 원자들과 그 사이에 퍼진 광대한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원자 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로 이루어진 일상의 세계를 몸으로 살아간다.
주목할 것은 이 책에서 다니엘손이 말하는 물리학이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물리학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는 사실이다. “물리학은 모든 것의 토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다. 나는 물리학을 세계 자체의 모든 측면에 대한 연구로 정의한다.” 물리학은 우주 만물을 설명하는 데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해명하는 학문이라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오만해 보일 수 있는데, 다니엘손은 그 근거를 과학의 아버지라 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ka)은 하늘과 땅, 물·불·공기, 더 나아가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생명 활동까지 두루 포괄해 이해하는 학문이었다. 이 자연학에서 오늘날의 물리학(physics)이 나왔다. 그러니 물리학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그 정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니엘손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의식·자아까지 모두 물리학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런 작업을 할 때 다니엘손이 먼저 쓰는 전략이 오류 바로잡기다. 물리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을 실마리로 삼아 세계의 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실재’와 ‘수학’을 혼동하는 것이 물리학자들이 저지르는 착각 가운데 하나다. 수학이라는 사유 방법이 물리학이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대 물리학의 비조인 갈릴레이는 “자연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고 했는데, 이 말대로 물리학자들은 수학 언어를 구사해 자연의 비밀을 읽어냈다. 뉴턴의 중력법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수학 언어로 쓰였다. 수학을 통해 양자세계의 법칙을 찾아내고 빅뱅 초기의 사태를 설명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를 예측한다. 수학이 없으면 물리학은 사실상 성립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물리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수학이며 현실의 세계가 존재하듯 수의 세계가 따로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손은 이런 생각을 단호히 부정한다. 수학은 세계의 복잡성을 설명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이 아무리 설명력이 뛰어나다 해도 인간의 사유능력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모형일 뿐이다. 그런데도 일부 물리학자들은 고대의 피타고라스주의자들처럼 수가 실재한다고 확신한다. 이를테면 근년에 유행하는 ‘평행우주’(평행세계)라는 우주론적 아이디어가 수학과 실재를 혼동한 데서 나온 발상이다. 평행우주론은 무수한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고,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모든 가능성이 그 무수한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는 가설이다. 미셸 여(양자경)가 주연한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가 그 평행우주론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생각은 입자물리학의 파동함수에 대한 수학적 설명에서 파생한 것인데, 수학적 가능성이 그대로 현실 세계로 이어진다는 믿음의 전형이다. 다이엘손은 평행우주론을 두고 ‘수학이라는 신을 믿는 자의 신앙고백’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은 ‘실재에 관한 모형과 실재 자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이야말로 이런 모형의 대표적인 경우다. “자연법칙은 수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술에 속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에게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법칙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다. 뉴턴의 중력법칙은 200여년 동안 진리로 군림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이론에 밀려났다. 중력이라는 현상은 시공간이 구부러진 데서 생겨나는 효과일 뿐이다. 자연법칙은 실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창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은 더 강한 설명력을 지닌 새로운 법칙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책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 물리학적 사고에 낳은 폐해를 지적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데카르트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돼 있으며 육체는 기계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 곧 의식과 자아는 우리의 몸과 분리돼 있지 않다. 몸이 없는 의식이나 자아는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의식과 기억을 컴퓨터로 옮겨 영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인간은 언제나 몸을 통해 사유하며 몸이 없이 뇌만으로 사유를 할 수는 없다. 공상과학에서 자주 보이는 상상, 곧 ‘우리는 비커에 담긴 뇌이며 외부에서 이 뇌에 시뮬레이션을 집어넣은 결과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환각을 품는다’는 상상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의식과 자아는 생명의 유구한 진화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생명의 몸체와 분리돼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우주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필멸하는 몸에 갇혀 있지만, 불완전한 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관찰을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모든 모형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물음이 탄생한다.” 다니엘손의 물리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부푼 시도이자 우리 인식의 한계에 주목하는 겸손한 작업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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