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면 된다는, 참 ‘손쉬운’ 처방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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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기계발 담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득세 이후 자기계발과 자기 경영 담론은 '우리 모두의 윤리학'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
가난한 아이가 그릿(열정과 끈기)을 더 계발하면 부유한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거나, 여성이 강한 권력감을 느끼면 직장에서 성별 격차를 막을 수 있다거나, 병사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저항할 수 있다거나 하는 정신승리의 아이디어들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사회에서 막상 그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때, 이런 세계관을 내면화한 이들은 사회구조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곤경을 "이렇게 쉽게 나아질 수 있다는데 어째서 당신은 그 쉬운 '노오력'이란 걸 하지 않는가"라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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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손쉬운 해결책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l 메멘토(2023)
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기계발 담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득세 이후 자기계발과 자기 경영 담론은 ‘우리 모두의 윤리학’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 그사이 수많은 강연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방송과 언론, 뉴미디어가 만들어준 무대를 통해 무수히 많은 현자(賢者)와 멘토, 구루가 출현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얻은 인기를 통해 정치인이 되었고, 어떤 이는 움직이는 사업체가 되었고, 또 어떤 이는 대통령의 스승으로 행세한다.
‘손쉬운 해결책’의 저자 제시 싱걸은 “콘텐츠에 목마른 대중매체를 먹여 살리는 학술지와 대학의 보도자료, 맬컴 글래드웰을 이을 다음 베스트셀러를 찾는 출판사들, 행동과학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정부, 사회과학자들이 내놓는 증거에 갈수록 개방적인 법정 덕분에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교육할 기회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얻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심리학자나 전문 상담자들이 등장해 대중의 답답한 속내를 풀어준다. 이들은 자칫 간과할 수 있는 행동 또는 화법, 태도 몇 가지를 교정함으로써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을 설득해 결과적으로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할 수 있다는 대중심리학을 설파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프라임월드’(Primeworld)라 부르는 세계관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프라임월드의 중심에는 무의식적인 요인인 ‘프라임’(심리학적 처방이 지닌 미세한 힘, 화법이나 태도의 변화 같은 것)이 있으며, 이 세계관은 사람의 행동이 프라임이라는 미세한 힘들에 의해 추동되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심리학적 처방이 지닌 세 가지 특징이다. 첫째, 보다 크고 위압적인 사회구조와 체계에 대해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거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둘째, 프라임과 선입견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결과에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이들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당신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나게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을 선사한다. ‘자기계발 심리학’의 논리는 명쾌하고 단순하지만, 학문적 용어로 포장되어 있고 학위 같은 성과로 보증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계관은 위험하다. 가난한 아이가 그릿(열정과 끈기)을 더 계발하면 부유한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거나, 여성이 강한 권력감을 느끼면 직장에서 성별 격차를 막을 수 있다거나, 병사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저항할 수 있다거나 하는 정신승리의 아이디어들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사회에서 막상 그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때, 이런 세계관을 내면화한 이들은 사회구조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곤경을 “이렇게 쉽게 나아질 수 있다는데 어째서 당신은 그 쉬운 ‘노오력’이란 걸 하지 않는가”라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런 사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수학여행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들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국적 없는 유흥문화에 휩쓸려 죽은 젊은이들로, 학교에서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 교사의 죽음,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몸이 두 동강나는 죽음, 최소한의 안전장구도 지급받지 못한 채 수해 복구 지원을 나간 병사의 죽음도 개인의 문제로 만든다. 세상에 그렇게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사회를 바꾸지 않고, 나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결코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수 없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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