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이 말한다, 협력은 곧 오염이라고 [책&생각]

최원형 2023. 8.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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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담론 이끄는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송이버섯 생태·경제에서 배우는 불안정성·불확정성
“역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투쟁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l 현실문화 l 3만5000원

우리 인간은 세계가 어떤 통일성에 입각해 전진한다고 보는 시각, 한마디로 진보의 서사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이런 시각은 너무도 뿌리 깊어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려 할 때에도 그 상상 속에는 단지 방향만 바뀔 뿐 여전히 어떤 통일성에 대한 추구가 흐르고 있다. 최근 급성장한 환경 담론을 사례로 들자면, 기존 담론이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환경을 주물러 더 이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면, 이를 비판하는 담론은 인간이 환경에 최대한 간여하지 않음으로써 더 좋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향만 다를 뿐 인간의 행위가 어떤 안정적이고 확정적인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두 담론은 서로 다르지 않다. 환경은 단지 자본주의적으로 변형 가능하거나 또는 변형하지 말아야 할 고정된 생태적 관계로 제시될 뿐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71·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캠퍼스 교수)은 2015년 저작 ‘세계 끝의 버섯’에서 불확정성(indeterminacy)과 불안정성(precarity)을 아예 ‘세계-만들기’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접근을 시도했다. 도나 해러웨이와 함께 생태페미니즘에 기반한 ‘비인간’ 논의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학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송이버섯과 연관되어 전세계 곳곳에서 인간-비인간이 얽히는 현장들을 ‘조각조각’ 들여다봄으로써 끈질긴 진보 서사에서 벗어난 삶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하나의 흐름을 지닌 논리적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서로 얽혀 있으면서도 서로를 방해하는” ‘패치’(조각보)들의 ‘배치’(assemblage)를 모으려 한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논리적 체계(이를테면 자본주의)로 환원되지 않으며, 인간-비인간의 “뒤얽힌 삶의 방식들이 배치의 모자이크를 이룬다.” 모든 존재는 개별적으로 자립할 수 없기에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협력’이라는 게 타자와 예측불가능한 마주침 속에서 자신의 변형까지 포함하는 ‘오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생존하기 위해 항상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생존이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가 함께 변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안정한 존재들이 불확정적으로 마주치는 것이 바로 협력이자 오염이며, 여기서 다양성이 만들어진다.

미국 오리건주 산업비림의 폐허 속에서 송이버섯의 갓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 현실문화 제공
송이버섯 중간 도매상의 점포를 그린 정물화. 현실문화 제공
미국 오리건주에서 크메르계 구매인들이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송이버섯을 분류하고 있는 모습. 현실문화 제공

송이버섯을 따라가보면, 인간-비인간이 뒤얽혀 각자의 ‘세계-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수많은 패치들을 만나게 된다. 오늘날 송이버섯은 주로 북미 태평양 연안 북서부(오리건) 숲에서 채집되어 주된 소비처인 일본으로 보내진다. 송이버섯은 숲의 특정한 나무(소나무)와 어울려 지내는 땅속 곰팡이의 자실체로, 이 곰팡이는 나무에게 양분을 찾아주는 대신 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얻는다. 이 변형적인 상리공생 때문에 인위적인 송이버섯 재배는 아직까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같은 송이버섯의 생태와 경제에는 자연환경뿐 아니라 인간에 의한 ‘교란’도 큰 몫을 한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산림 자원 개발을 위해 산불을 금지하고 대규모 벌목을 해대어 숲을 폐허로 만들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송이버섯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반면 미국과 비슷한 산림 정책을 폈던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벌목 플랜테이션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이는 일본에서 송이버섯 생산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북미에서 송이버섯 채집은 주로 다양한 이주민들로 구성된 ‘프리랜서’들이 맡는데, 이들은 “기업의 신규 인력 모집, 훈련, 규율” 따위가 없이도 송이버섯을 찾아내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 규정에서 벗어나 있다. 일본에서 송이버섯은 개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한 선물로서 최종 소비되는 등 교환 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아닌 ‘선물 경제’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이 송이버섯을 ‘재고품’으로 만들어 북미로부터 일본으로 수송하는 것은 ‘글로벌 공급사슬’의 몫이다. “송이버섯은 그것의 삶이 선물로서 시작되고 선물로 끝나는 자본주의 상품”으로, 이는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적 가치 체제에도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원료를 자본주의적으로 합리화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는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 있는 존재를 ‘구제’(salvage)함으로써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여기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서로 다른 패치들을 가로지르게 해주는 ‘번역’이란 행위다. 번역은 차이를 메우고 또한 유지하면서 타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번역 전략으로서 구제는 인간-비인간을 “마주침을 통해 변형되지 않는 자립적인 개별자”로 만들고, “폭력과 오염을 이윤으로 번역”한다. 인간-비인간을 그들이 놓인 생활-공간에서 떼어놓으면 그동안 형성된 ‘얽힘’이 사라져, 쉽게 이동시킬 수 있고 호환이 가능한 ‘재고품’이 된다. 서구 제국주의가 만든 ‘플랜테이션 농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팽창과 정복을 위해 단 하나의 세계-만들기를 강요해온 플랜테이션 농장을 비판하는 대신, 그 대안으로 다양한 존재들이 얽혀서 생존하는 송이버섯 숲을 따라 ‘다종의 세계-만들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캠퍼스 교수. 현실문화 제공
벌목된 숲의 모습. 현실문화 제공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는 송이버섯의 모습. 현실문화 제공

문제는 이미 송이버섯의 사례에서 봤듯, 협력은 곧 오염이며 그것이 가져다줄 다양성은 우리가 원하고 계획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과 모순된다는 사실이다. 다종의 세계-만들기 속에서 “기본 원칙을 확고히 하거나 최상의 경우를 발생시키는 자연법을 찾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방향만 다른 진보의 약속이 아니다. 제각각의 여러 멜로디가 뒤얽힌 다운율의 음악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듯, 단지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속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할 협력자를 ‘알아차리는’ 기술뿐이다. 책을 다 읽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첫 문장이 새롭게 다가온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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