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독자까지 끌어당기는 힘, 방산시장 ‘자석 책방’ [책&생각]

한겨레 2023. 8. 2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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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 │ 그래서
책방 ‘그래서’ 내부 모습.

책방을 운영하는 저희 두 사람은 책방을 소개하는 지면에 책방보다 손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책방을 소개하랬더니 손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나고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래서’는 아주 작은 책방입니다.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 방산시장 안에 있어요. 작은 책방이다보니 손님에게 차라도 권하지 않으면 금세 어색해지지요. 을지로 낡은 골목길을 지나 미로 같은 시장 속 복도를 헤매야 찾을 수 있는 이 곳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고마워 우리는 언제나 커피 한잔 드시겠냐고 물어봅니다. 어떻게 그래서에 오게 됐는지, 찾기 어렵지는 않았는지, 궁금하고 반가운 마음에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책 이야기로 연결되고 결국 이런저런 관심사로 대화가 이어집니다.

점심 시간에 가끔 들르던 을지로 직장인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포스트잇에 그려온 일기를 우리만 보기 아까워 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방 에스엔에스(SNS)에 번역 시를 올려주던 손님도, 본인 캐릭터로 재미난 만화를 그려온 손님도, 시장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웃 상인도 손님으로 만나서 작가가 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지금은 책방의 자랑이 되었지요. 어느 날은 장국영 팬이라며 ‘장국영’으로 ‘아무튼 시리즈’를 쓸 수 있다던 손님께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아무튼, 장국영>은 출간이 되었고, 이 책 11쪽에 그래서에서 책이 시작된 이야기를 보고, 멀리 강원도에서 찾아온 아무튼 시리즈의 애독자는 지금까지 단골 손님으로, 친구로 만나고 있다면 믿겨지시나요?

책방 ‘그래서’ 내부 모습.
책방 ‘그래서’ 내부 서가 모습.

“서점은 복잡한 시장 건물의 안쪽, 전혀 서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주인 부부가 우리보다 앞서 온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고 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느라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오유정, <아무튼, 장국영>)

어느 날 책을 도둑맞았다는 책방 에스엔에스를 본 작가님이 자기 책을 훔쳐가 준 고마운(?) 범인을 대신해 책값을 지불하러 오셨을 때도, 독자가 만든 ‘어나더커버’를 갖고 싶다며 본인의 책을 구입하러 책방에 방문한 작가님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책방에서 참 이상하고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책방, 말복에 가을 운세 봐주는 책방, 책들의 결혼식이 열리는 책방, 생기 가득한 꽃집 책방... 등으로 자기만의 책방을 만들어 주신 목요일의 ‘일일점장’님들은 왜 이렇게 우리 책방에 정성스러운 걸까요?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며 ‘번개북클럽’을 제안하는 북클럽 멤버는 왜 이렇게 진심인 걸까요? 책방이 아끼는 어느 작가님이 책방에 형광등이 왠말이냐며 예쁜 조명을 들고 와서 책상 위에 손수 달아 놓고 간 날, 책방 옆 작은 전시 공간의 벽면에 붙여 놓은 나무판을 보고 '전시장은 하양이 진리'라며 밤 10시에 페인트통을 들고 모인 작가님들을 맞이한 날엔 이 곳은 과연 누구의 공간인가? 싶었습니다.

책 좋아하는 지인들과 거래처 손님들을 책방에 모시고 오는 이웃 사장님, 집 책장 한켠에 그래서에서 데려간 책으로 서가를 꾸렸다며 사진을 보내주시는 또 다른 이웃도, 고된 시장생활에 위안이 된다는 여러 이웃들도 우리의 손님입니다. 그리고 가끔 책을 먹으러(?) 오는 강아지 루샤도 언제나 반가운 손님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돈 때문도 아니고, 누군가의 칭찬 때문도 아니고, 그저 좋아하고, 좋아하고 싶은 마음을 나누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책방 ‘그래서’와의 인연들.

지난 3월 책방의 4주년 생일파티를 하던 날이었어요. 생일을 축하하러 방문하셨던 분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책방 주인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책방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지요. 알아서 책을 권하고 책을 사고, 결제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책방의 손님들에게 4년 동안 책방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구나!”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듣는 사람’으로 책방을 지키고 있었고, 듣는 우리와 말하는 손님은 책을 사이에 두고 자기 안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며 만나왔던 것 같습니다. 신기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간이라며 어떤 손님은 ‘을지로의 자석’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지요. 그래서 ‘그래서'는 책방을 소개하라면 책방 손님을 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을지로의 자석’에 이끌려 오실 또다른 분들을 여기 방산시장에서 기다릴 게요.

글·사진 오대표·이사장 그래서 책방 주인

그래서
서울시 중구 동호로37길 20(주교동, 방산종합시장) A동 2층 132호
www.glaes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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