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지가 가능하게 한 올드 상하이의 역설적 자유 [책&생각]

최재봉 2023. 8. 2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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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학자 김양수 교수 연구서
한국과 일본·중국 문학작품 대상
내셔널리즘의 억압에서 벗어난
국제주의와 자유의 틈새 포착
장아이링의 단편소설을 원작 삼은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의 한 장면. 옛 상하이의 인력거와 영화관이 등장한다. 영화 스틸사진

자유의 도시, 올드 상하이
김양수 지음 l 동국대학교출판부 l 2만4000원

책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1868년에 문을 연 황푸공원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 금지’라는 간판이 세워진 데에서 보듯 그 땅의 주인인 중국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도시, 올드 상하이’의 지은이(김양수 동국대 중문학과 교수)가 그에 무지하거나 그런 사실을 무시해서 제목을 그렇게 단 것은 아닐 것이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1845년 처음 조계를 설치한 뒤 프랑스 조계와 미국 조계가 차례로 들어선 이 도시에서 자유는 무엇보다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 자유였다. 그런데 그를 위해 별도의 행정 및 치안 체계를 갖추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화폐가 통용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도 독특한 자유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지은이는 그것을 ‘내셔널리즘으로부터의 자유’로 요약했다. 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가 말하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통치 이념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을 그는 가리키는데, 상하이 임시정부의 사례에서 보듯 “이데올로기로서의 내셔널리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이 도시는 타국의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들에게 활동의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자유의 도시, 올드 상하이’는 대체로 1910년대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전까지 옛 상하이에 관한 문화적 기억을 소환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인 그리고 미국인들이 남긴 문학작품과 기록을 매개로 삼았다. 1913년과 1919년 두 차례에 걸쳐 상하이에 갔던 이광수를 필두로 주요섭, 피천득, 심훈, 김광주, 유진오 등 한국 문인들, 중국 문인 루쉰과 장아이링, 일본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오자키 호쓰미, 우치야마 간조, 요코미쓰 리이치, 무라카미 하루키, 미국인 님 웨일스와 애그니스 스메들리, 그리고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와 영화감독 왕자웨이 같은 화려한 라인업이 이어진다.

첫번째 상하이행을 담은 산문 ‘상하이 인상기’에서 이광수는 강대국들의 부와 힘을 확인하고 정작 그 땅의 주인인 중국인은 그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번째 상하이행을 마치고 귀국한 그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유명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사실에서 보듯, 그의 상하이 경험은 일찍이 일본 유학 시절에 체득한 사회진화론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전향의 근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주요섭과 심훈, 유진오가 상하이를 배경으로 쓴 소설들은 결이 사뭇 다르다. 주요섭은 단편 ‘인력거꾼’과 ‘살인’에서 중국인 인력거꾼과 매춘부로 대표되는 계급모순을 부각시켰고, 중편 ‘첫사랑 값’에서는 1925년 상하이 일본계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학생들의 동조 투쟁을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시킨다. 심훈의 미완의 장편 ‘동방의 애인’은 상하이를 무대로 사회주의 독립투쟁을 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박헌영과 주세죽, 이동휘, 여운형 등이 모델로 추정된다. 유진오의 단편 ‘상해의 기억’에는 1931년 1월17일이라는 날짜가 특정되거니와, 이날은 중국공산당 계열 젊은 작가 5명이 국민당에 의해 체포된 날이다. 2월7일에 처형된 이들을 중국문학사에서는 ‘좌련오열사’라는 이름으로 기린다. ‘상해의 기억’의 조선인 주인공은 이 좌련오열사 중 한 사람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런 설정을 통해 작가는 “조선인 주인공과 중국 좌익 작가 간의 이념적 연대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해석한다.

이 사건은 루쉰에게도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1927년 광저우를 떠나 상하이로 옮겨 온 루쉰은 좌련오열사 사건에 대한 분노를 담은 글 ‘심야에 쓰다’를 미국 언론인 애그니스 스메들리로 하여금 번역하게 해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영문 잡지에 발표했다. 스메들리는 자전적 소설 ‘대지의 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는데, 그 책을 일본어로 옮긴 이가 아사히신문 상하이 특파원을 지낸 오자키 호쓰미다. 스메들리는 오자키를 독일계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에게 소개해 주었고, 공산주의자였던 오자키는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조르게에게 일본 정부의 핵심 정보를 빼내 주다가 체포되어 1944년 11월 조르게와 함께 처형되고 말았다. 진술서에서 상하이를 가리켜 “제국주의 각종 모순의 거대한 결절점”이라 표현했던 오자키는 “일본인으로서 중국 혁명에 큰 관심과 기대를” 걸고 그를 위해 행동했다는 점에서 ‘내셔널리즘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이 책의 주제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인 셈이다.

1930년에 촬영한 상하이 와이탄 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루쉰은 1927년부터 1936년 사망까지 햇수로 10년을 상하이에서 지냈다. 그가 죽은 뒤인 1943년에 중국 문단에 혜성 같이 등장한 장아이링(1920~1995)은 상하이의 명문가 출신으로 그의 할머니가 리훙장의 딸이었다. 그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1940년대 상하이의 삶, 특히 자신의 말마따나 “남녀 간의 작은 이야기”를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그는 무엇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단편소설 ‘색, 계’의 작가로 더 익숙할 텐데, 1978년 타이완 신문에 발표한 이 작품을 두고 중국 쪽에서는 “한간(漢奸, 적과 내통하는 사람)을 찬양하는 문학”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장아이링은 문학작품에서 부정적인 인물의 내면을 묘사할 자유를 주장하며 맞섰다. 이 소설을 원작 삼은 리안 감독의 영화에서 젠틀하며 매력적인 남자로 등장한 이선생의 모델은 일본 꼭두각시 정권의 특무조직 ‘76호’를 이끌며 “피스톨왕, 암살왕, 살인마”로 불리던 딩모춘인데, 1941년 루쉰의 부인 쉬광핑이 끌려가 구타와 모욕, 전기고문 등을 당한 뒤 가까스로 풀려난 곳이 바로 ‘76호’다.

“내셔널리즘의 권력이 인간을 압제하지 못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공간이었고, 자유의 시간이 존재하던” 올드 상하이는 1949년 국민국가로 회수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면 상하이의 오래된 영화관에서 흥미진진한 시대극 한 편을 보고 난 듯한 느낌이 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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