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0여명 방문하는 이 도서관엔 ‘일회용품’이 없다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 인터뷰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숲환경도서관. 큰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 옆에는 대부분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도서관 내 카페에서 구입한 음료도 다회용컵에 담겨 나왔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한 이용객은 “도서관에 ‘환경’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보니 이 공간에선 일회용품을 안 쓰게 된다”며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것만으로 절로 환경교육이 된다”고 했다.
구립 방배숲환경도서관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환경’이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개관했다. 하루 1000여명이 방문하는 이 도서관은 환경교육단체 ‘에코맘코리아’가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2009년부터 UNEP(유엔환경계획)와 협업해 연간 3만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다. 24일 만난 에코맘코리아 하지원 대표는 “도서관은 그 시대 시민의 역량을 키워주는 공간인 만큼 환경 문제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존하는 위협이 된 지금 ‘환경을 이야기하는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환경도서관’이 일반도서관과 다른 점은 뭔가.
“뉴욕에는 인문사회, 과학산업, 공연예술, 흑인문화 등 4개 주제의 전문 공공도서관이 있다. 각각의 주제에 맞는 방대한 양의 정보 센터의 역할은 물론이고 지역 커뮤니티활동까지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도서관이 단지 책을 보고 빌리는 곳, 공부하는 곳이라는 기능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술도서관, 음악도서관 등 특화도서관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환경 특화 도서관은 공간 자체가 환경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 다른 도서관보다 환경과 관련된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깨알둥지’라는 슬로건이 독특한데.
“새 둥지 모양의 도서관 로고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도서관이라는 명사가 주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슬로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고민 끝에 ‘깨닫고 알리는 깨알둥지’로 정했다. ‘우리’는 사람이 동물을 가두기 위해 만드는 것인 반면 ‘둥지’는 새가 나뭇가지와 재료를 하나씩 물고 와서 스스로 만드는 집이다. 시민들이 이 도서관에서 함께 ‘환경둥지’를 틀기 원하는 소망을 담았다. 방배숲환경도서관은 이곳에서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경험하고, 생각이 바뀌어 실천하고, 나아가 주변에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생각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고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게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환경 관련 서적의 비중은 얼마나 되나.
“현재 장서 2만3000여 권 가운데 7000여 권이 환경 관련 도서이고 책에 띠지를 붙여 별도로 표시해놨다. 연말까지 장서 3만여 권, 이중 절반인 1만5000여 권을 환경 도서로 채울 계획이다. 정말 중요한 환경도서인데 절판이라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중고서점을 모두 뒤져서라도 가져왔다. 앞으로 전체 장서 중 환경 도서 비율은 계속 높여 나갈 예정이다.”
-도서관 이용객 대다수가 텀블러를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도서관에는 일회용품이 없다. 도서관 내 카페도 다회용컵만 사용한다. 이용객에겐 개인 텀블러 사용을 권장한다. 텀블러 세척기도 갖추고 있어서 누구든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쓰레기통도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세분화해서 만들었다. 우리 도서관을 방문해 한 번 경험이 있는 시민들은 대부분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온다. 방학과 휴가기간을 맞아 많은 방문객이 몰리고 있지만 쓰레기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 보다 환경적인 것에 동참하게 하는 것은 ‘환경도서관’ 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나.
“자연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한 강연, 도서관 탐조대 등 체험 프로그램, 캠페인, 전시 등을 많이 할 계획이다. 지난 22일 에너지의 날을 맞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깨알둥지 환경학교 에너지반’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성인 대상의 인문학강좌도 자연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린다. 도서관을 품고 있는 14만평 서리풀 공원을 모두 도서관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인들이 디지털에 접속하는 시간만큼 자연과 접속할 수 있도록 자연을 느끼는 환경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기획하고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각지에 또 다른 환경도서관이 생겨날 수도 있을 거 같다.
“우리의 역할은 최초의 환경도서관으로서 다른 도서관들도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롤 모델이 되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마다 도서관 중 한 개는 환경도서관으로 운영하여 각 지역시민의 환경 역량을 책임지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목적으로 도서관 사서들을 위한 환경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하지원 대표는 “쓰레기봉투랑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다. “어제 하루종일 도서관 전체 쓰레기통에서 나온 쓰레기가 이 정도”라며 절반도 차지 않은 75ℓ짜리 종량제 봉투를 들어 보였다. 하 대표는 “현대인 대부분이 삶 곳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많은 양의 일회용품을 소비하고 있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일회용품 줄이기가 사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 쓰레기봉투가 보여준다”며 “이 공간을 찾는 분들이 도서관 밖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생활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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