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마음 한편에 대나무숲을 가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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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땅의 모든 것을 구워 내겠다는 듯 지펴 대는 열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대숲에 가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하나를 툭 던져 오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나에게만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말이지 내가 뭐라고 하면 그 소리를 그대로 따라 호응해 줄 것 같은 대숲을 바라보는 며칠, 대숲이 불러젖히는 한가닥 노랫소리에 홀려서 나는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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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땅의 모든 것을 구워 내겠다는 듯 지펴 대는 열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더위에 약한 나를 딱하게 본 지인은 자신의 빈 시골집에 가서 며칠 지내면 어떻겠냐고 청했습니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창문을 모두 여는 일이었는데 집 뒤쪽으로 굉장한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숲 물결에 넋을 놓고 있자니 땀이 마르는 걸 의식할 겨를도 없이 몸도 식기 시작했습니다.
고운기 시인의 신작 시집 ‘고비에서’에 수록된 이 시는 누군가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듣고는 동시에 그 사실을 비밀로 부쳐 달라는 청을 듣게 되는 시인의 입장을 노래했습니다.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되 아쉽게도 그 사랑을 떠벌리는 즐거움은 금지된 상황입니다. 눈치 없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딱한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비밀을 외치는 바람에 이제 대숲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대숲에 가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하나를 툭 던져 오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나에게만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말이지 내가 뭐라고 하면 그 소리를 그대로 따라 호응해 줄 것 같은 대숲을 바라보는 며칠, 대숲이 불러젖히는 한가닥 노랫소리에 홀려서 나는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만 같습니다.
대나무 숲에 비밀을 숨겨 놓고 올 일이 생긴다면 어떤 애절한 비밀 하나 짊어지고 가겠습니까?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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