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들이 서로를 마주할 때
코로나19가 비춘 우리 안의 단절과 고립
기혼 유자녀 여성 모순적 현실 포착해
"나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들을 알고 있었다. 살다 보니 죽었지만 다시 살릴 엄두를 못 내는 것들. 다시 살릴 의욕도 기력도 없는 것들. 언젠가부터 접어 두고 사는 것들… 죽이고 사는 감각 하나가 깨어나 무언가가 열리면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견뎌 온 것들을 더는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외로움과 고통을 절절히 감각하면 버틸 수 없는 삶이 있다. 숨 쉴 틈조차 막혀 버릴까 봐. 소설 '마주'는 그래서 감각을 포기한 이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최은미(45) 작가가 6년 만에 선보인 이 두 번째 장편소설은, 2021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에 수록된 단편 '여기 우리 마주'에서 출발했다. 고립과 단절의 시대인 코로나19가 배경이다. 기혼 유자녀 여성이 오롯이 돌봄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가부장 체제의 압박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좋은 양육자가 돼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분열적 모습을 날카롭고 정교하게 그렸다.
소설의 화자인 '나리'는 초등학생 딸(은채), 남편과 산다. 아이를 키우며 비누와 초(캔들)를 만드는 홈 공방을 9년간 운영하다가 상가에 '나리공방'을 개업했다. 하지만 시련은 정말이지 금방 닥쳤다. 2020년 봄 코로나19의 확산. 전 세계 소상공인이 맞은 그 직격탄을 나리도 피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호흡으로 병원에 실려 간 후 잠복결핵 진단을 받는다. 나리는 잊고 지냈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부모님이 충청도 '여안'에서 사과밭을 운영하던 어린 시절, 일꾼으로 오던 아줌마. 그녀와 같은 팀 일꾼들은 결핵 환자들이 모여 산다던 '딴산마을' 출신이었다. 그때 결핵균이 옮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고 나리는 만조 아줌마 생각에 빠져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을 돌봐 줬던, 누구보다 친근했던 이. 자신의 실수로 아줌마가 곤경에 처해진 뒤 온 가족이 여안을 떠나며 아줌마와 멀어진 과거를 더듬더듬 짚어 간다.
만조 아줌마는 나리가 강압적 성향의 엄마에게서 벗어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 자신처럼 몸이 불어나지 않길 바라며 나리의 먹는 것 하나하나를 통제하려 했던 엄마. 나리가 또래 아이를 키우며 가까워진 '수미'에게 경멸의 감정을 느낀 건 그런 엄마가 겹쳐 보였기 때문일 테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고 의심하는 수미는 딸 '서하'를 "자신의 확장"으로 여긴다. 자신을 향한 불신도 서하에게 투사되고, 모녀의 관계는 뒤틀려 있다. 나리는 만조 아줌마가 그랬듯이 서하를 보호하려 든다. 수미는 그런 나리가 불편하다.
두 사람은 딴산마을을 찾아 만조 아줌마를 함께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나리는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여안의 시절을 직시한다. "내 안의 미해결된 감정과 단절될 때, 내가 나한테 벽을 쳐 버릴 때" 과호흡이 발생하는 공황장애를 앓는 나리가 내면 깊숙이 덮어 놓았던 자신과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사과밭에서 함께 일하고 사과 축제에서 일하면서 함께할 때 얻는 삶의 동력을 체감한다. 그렇게 만조 아줌마와 보낸 시간은 "면적이 점점 좁아지는 신문지 위"에 서서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며 버티던 둘 모두에게 감각, 그러니까 '생기'를 잃지 않고도 살아내는 쪽으로 용기를 내게 한다.
소설은 단절과 고립이라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포착한다. 코로나19 시대가 소설적 배경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학교도 유치원도 문을 닫자 더 많은 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된 여성들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고립에 더 취약한 소외 계층의 고통도 고스란히 담았다. 결핵환자 등이 모여 있다는 이유로 평소 바깥세상과 교류가 없던 딴산마을은 감염자가 발생하자 아예 봉쇄 조치를 당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도 작가는 희미한 빛 한 줄기를 적어 넣었다. 불편해도 외면하지 말고 감각하면, 서로 마주하고 깨운다면 살아낼 수 있다는 걸 나리를 통해 그리고 수미를 통해 보여준다. 개인이 아니라 함께라면 어쩌면 가능하다고. "죽을 데도 없어" 모여든 딴산마을 사람들이 수십 년을 함께하며 그들의 힘으로 아삭한 사과를 키워낸 것처럼 말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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