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예술가’ 주세페 피고니… 그의 걸작은 영원히 빛난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생산 방식 바뀌며 사업 쇠퇴
‘듀센버그’ ‘탈보라고’ 등 남아있는 작품은 고가에 경매
전문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이 소장하고 관리한 차들의 예술성과 보존 및 관리 상태 등을 살펴 우승자를 가린다. 상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클래식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피고니는 코치빌더 전성기인 1920∼30년대에 활동한 디자이너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피고니는 특히 세련된 곡선과 곡면으로 우아함을 구현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코치빌더였다. 그에게 붙은 ‘철의 예술가’라는 별명은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차체를 만들었는지 짐작게 한다.
피고니는 1892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그곳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14살 때 수습생으로 차체 제작 일을 시작해 차츰 재능을 보였다. 16살 때는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한 프레임을 디자인했는데 그의 제안을 반영해 만든 차는 나중에 스페인 알폰소 국왕에게 판매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로 돌아가 참전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파리로 돌아가 수습 생활을 이어 갔다. 그리고 1923년 자신만의 차체 제작 회사를 세웠다.
세련미와 특별함에 승부를 걸고자 했던 그는 두 가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나는 ‘아르데코’ 양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행기였다.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풍부한 색감과 장식으로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표현한 아르데코 양식은 1920년대 말부터 자동차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창 발전하고 있던 비행기는 공기역학 디자인과 더불어 속도와 첨단을 상징하고 있었다. 피고니는 이들의 특징을 차 디자인에 반영해 나갔다.
유행을 앞선 그의 디자인은 1935년에 새로운 사업 파트너와 손을 잡으면서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사업가 ‘오비디오 팔라스키’와 손을 잡았는데 경영은 팔라스키에게 맡기고 자신은 디자인에만 전념했다.
팔라스키를 영입해 회사 이름을 피고니 에 팔라스키로 바꾼 뒤로 프랑스 패션 업계와 협업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이어간 덕분에 그는 프랑스 코치빌더의 거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피고니의 화려한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 경제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자동차 생산 방식도 달라지면서 코치빌더의 입지는 아주 좁아졌다. 특히 협력자였던 팔라스키가 이탈리아로 귀국한 뒤로 주문이 크게 줄면서 그의 사업은 쇠퇴했다. 결국 그는 1955년에 일선에서 물러나 자동차 업체들의 디자인 자문을 하며 생활하다가 1978년 세상을 떠났다.
창조자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가 남긴 걸작들은 콩쿠르 델레강스와 클래식카 경매의 단골로 자리하며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2022년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서는 피고니가 차체를 만든 1932년형 듀센버그 J 스포츠 토피도가 대상을 받았고, 같은 장소에서 열린 RM 소더비 경매에서는 1938년형 탈보라고 T150-C SS 티어드롭 쿠페가 경매가 726만5000달러(약 97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차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천 시간을 쏟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피고니의 차체는 애호가들에게 진정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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