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51] 가쓰라-태프트 회담, 그 120년 후
1924년 미국 역사학자 타일러 데넷은 의회도서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문서고에서 한 통의 외교 통신문을 발견한다. 1905년 7월 일본을 친선 방문 중이던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비망록이었다. 데넷은 이를 바탕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對)일본 밀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흔히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부르지만, 태프트는 아무런 교섭 권한이 없었고,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밀약(Secret Pact)’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명칭이다.
일본과 영국은 러일전쟁 이후 극동 질서에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미국을 영·일 진영의 확실한 편으로 만들어야 극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침투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가쓰라는 정식 동맹은 아니더라도 사실상(de facto)의 동맹이라도 가능한지 여부를 집요하게 테이블 위에 올렸고, 난처한 입장의 태프트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의회 동의 없는 어떠한 공수동맹(攻守同盟)도 불가능하나, 극동의 평화 유지에 대한 영·일의 시각에는 공감하며, 필요 시 미국 정부가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리핀과 한국 문제가 논의되었고, 일본은 이를 통해 한국의 보호국화에 미국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것이 회담의 전모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한일병합의 원흉이라는 비난은 과녁을 벗어난 것이나, 미·영·일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국이 철저히 배제되고 한국의 운명이 체스판의 말처럼 취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생각할 때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적 반전에 해당하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한·미·일 삼각 협조 체제의 위상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차원에까지 함의를 갖는 것이다.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국익을 달성하는 국가적 역량 결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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