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정치평설] 잼버리 파행을 부산엑스포 전화위복으로!
이달 첫 주말, 한 TV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다. 이날 최대 이슈는 시설 미비, 준비 부족, 운영 미숙으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 최대 인원을 보낸 영국이 조기 퇴영하고 미국은 아예 입영을 거부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두 차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여기다 30년 전 똑같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던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출연자 모두 혀를 차면서도 나름의 대책을 제시했다. 당장 원인과 책임을 따지기보다 국가적 역량을 모아 일단 대회부터 무사히 치르자는 의견이었다.
말미에 눈이 마주친 앵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번 세계 잼버리 파행으로 부산엑스포 유치가 힘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드는데요.” 당초 대본엔 없던 얘기. 오는 11월 말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여기다 필자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게다. 순간 떠오른 답변 논리는 전화위복. “정부, 다른 지자체, 기업에다 국민도 힘을 보태고 있는 만큼 잼버리 뒤엔 ‘역시 한국이야’라는 말이 나올 거라 믿는다. 모두 하나 돼 위기를 극복해 온 대한민국 저력만 발휘된다면 부산엑스포엔 오히려 긍정적 결과가 될 것이다.” 실제 잼버리는 이후 태풍 내습, 야영장 조기 폐쇄 등 돌발상황에도 무사히 끝났다. 여러 지자체와 기업의 도움으로 4만 명이 넘는 스카우트 대원 전원을 수용할 대안 시설이 거짓말처럼 뚝딱 마련됐다. 아울러 경쟁적으로 쏟아진 다양한 대체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청소년들은 잼버리 이상의 추억까지 만들었다. 귀국길 인터뷰에 나선 대원들도 대체로 만족감을 피력했다. 몇몇 나라는 체류를 연장해 ‘한국 심층 체험’에 나서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전화위복까진 몰라도, 부산엑스포가 잼버리 악몽쯤은 떨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 김한규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잼버리 파행으로 부산)엑스포 유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한 것. 당장 국민의힘이 발끈하고 나섰다. 김기현 대표는 유치 실패를 바라는 “민주당의 속셈이 들통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부산의원들은 규탄 기자회견에 이어 국회 윤리위에 징계안까지 제출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그 흔한 유감조차 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꼬리 잡지 말라”며 되받아쳤다. 원내 대변인이기도 한 그의 막무가내에 민주당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당 소속 3명의 의원도 침묵했다. 다만 그중 한 명으로 국회 엑스포유치지원특위 위원장인 박재호 의원은 우회적으로 김 의원을 반박했다. 지난 17일 국제신문과의 회견에서 “잼버리와 달리 엑스포는 전 세계적인 국가적 행사”라며 부정적 영향 가능성을 부인한 것. 왜 이런 생각을 진즉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을까. 당내 최고 엑스포 전문가인 그가 바로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면 김 의원도, 당도 다른 처신을 보이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당심 하나 제대로 모으지 못한 채 나선 외국 상대 유치전에서 그의 말발이 먹히기나 할까.
이제 엑스포 유치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 정도. 판세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오락가락하는 국가에 대한 집중공략에 초점이 맞춰진다. 부산시 정부 국회는 물론 민간까지 나서 막판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이번 논란에서 보듯, 국내 여론과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이다. 사실 ‘김한규의 망발’에 중앙언론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중계방송만 했다. 국가적 현안에 대한 정략적 접근을 질타하기보다 그저 여야 정쟁으로만 다뤘다. 그 바탕에는 부산엑스포를 ‘부산, 그들만의 잔치’쯤 여기는 시각이 깔려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세계적 행사를 유치하는 지역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다. 이번 잼버리가 파행하자 중앙 매체들은 이른바 ‘먹튀론’으로 일제히 공격하고 나섰다. 전북도가 잼버리라는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으로 대변되는 대규모 기반시설의 거액 예산 따내기에 급급하다 사고를 냈다는 것. 이런 삐딱한 눈총은 언제든 부산엑스포로 옮겨올 수 있다. 2년6개월 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될 때 “매표(買票) 공항”이라며 딴지를 걸었던 게 서울 신문들이었다.
사실 서울올림픽과 평창올림픽, 모두 지방정부가 유치한 행사였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서울시 강원도 ‘그들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대한민국 경제와 미래, 그리고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자기 일마냥 생각했다. 그래서 민심이 하나가 됐다. 당연히 유치도, 성공적 개최도 가능했다. 부산엑스포도 ‘대한민국엑스포’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물론 ‘김한규 비판’도 필요하다. 절대 이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부산시든, 국민의힘 부산의원이든 적극 반론권을 행사하시라. 부산엑스포가 한국 발전과 국민 개개인에 어떻게 보탬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라. ‘썰전’의 스타, 박형준 시장도 직접 대국민 홍보 총대를 메시라. 기존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뉴미디어 인플루언서도 적극 활용하시라. 어쨌든 잼버리 파행 불똥은 이미 튀었다. 그냥 발끈하기보단 이럴수록 역발상이 필요한 법. 이렇게 국민 지지를 모을 수 있다면, 부산엑스포로선 전화위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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