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72> 미생물 사냥꾼-폴 드 크루이프(1890~1971)
- 1676년 세계 최초 미생물 관찰
- 英 왕실학회 보고한 레이우엔훅
- 병든 방광 사후 기증 스팔란차니
- 결핵균 발견한 시골의사 코흐
- 업적 인성 일화 소설처럼 소개
- 인류애 넘친 그들 뚝심 감동적
“저희는 대가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황열 인체 실험에) 자원하겠습니다.” 이등병 키신저와 군무원 모란이 리드 소령 앞에 부동자세로 서서 외쳤다. “제군, 나의 경례를 받게.” 소령이 집무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하며 중얼거렸다. ‘목숨 내놓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도 대가 없이 자원하다니’.
1900년 9월 쿠바 아바나 쿼마도 미 주둔 캠프에서 이 같은 장면이 나왔다. 이곳에 비상이 걸린 지 제법 됐다. 장병들이 황열(黃熱)로 죽어 나갔다. 황달에 검은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둬 흑토병(黑吐病)이라고도 불리는 전염병. 정체 모를 이 병을 퇴치하고자 미 군의관인 월트 리드(1851~1902) 소령이 현지로 날아와 지휘봉을 잡은 참이었다.
리드는 투철한 도덕성, 명령과 복종으로 무장한 천생 군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빼닮은 부하들과 함께 황열을 둘러싼 장막을 벗겨나갔다. 황열 환자 피를 빤 흰줄숲모기가 매개체였다! 이 모기가 건강한 사람을 물어 황열 바이러스를 옮겼다. 그 사실을 세계에 처음으로 증명해 보인 리드 연구진. 이제 최종 확인이 남았다. 리드 소령이 외쳤다. “사람들을 구하려면 우리가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은 금지된 인체 실험을 하겠다는 선언. 미생물과 육탄전을 벌이겠다는 말이다.
리드 소령이 자원하자 부하들이 막았다. 황열은 헌신과 희생에 쫓기다 무릎을 꿇었다. 군의관 러지어(1866~1900). 그는 황열 병동 내에서 자신 손등을 무는 모기를 보고도 그대로 둔 이후 12일간 황열 증세로 고통받다가 숨졌다.
▮ 미생물과 씨름한 19세기 과학자들
미생물학자이기도 한 저자 폴 드 크루이프가 1926년 펴낸 이 고전 ‘미생물 사냥꾼‘은 동식물만 알았던 19세기에 난적 미생물과 씨름한 13명을 다뤘다. 파스퇴르 메치니코프 코흐. 귀에 익은 이름이다. 레벤후크 브루스 에를리히. 미생물학에 관심을 둔 이는 안다. 스파란차니 리드 루 베링 스미스 로스 그라시는 미생물학도 머릿속에 들어가야 만나는 인물. 키신저나 모란 같은 ‘무명전사’도 여럿 나온다. 업적뿐만 아니라 인성 습관 일화 같은 인간미를 자세히 그려 소설 같다.
맨 처음 미생물을 본 이는? 20여 년간 호기심으로 미생물을 추적한 옷감 가게 주인이었다. 직접 만든 두께 3㎜ 유리 렌즈를 피부 각질, 고래 근육 섬유, 황소 눈알, 수달 털, 벼룩 주둥이, 머릿니 다리에 갖다 대고 보았다. 350여 년 전, 네덜란드 델프트에 살았던 그는 유리 렌즈로 온갖 사물을 확대해 보고 그 형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1632~1723)이 주인공. 그는 광학현미경(50~500배율)을 400대 넘게 만들었다. 1676년 5월 26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생물을 관찰해 이를 ‘극미동물’이라 이름 짓고 영국 왕실학회에 보고서를 올렸다.
‘미생물학의 아버지’인 그는 이 고전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미생물 사냥꾼’. 미생물 세계란 판도라 상자를 연 남자.
두 번째 사냥꾼은 라차로 스팔란차니(1729~1799)다. 그는 자연발생설(생물은 저절로 생긴다는 학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조)을 부정하고 ‘모든 생물은 어미에게서 나온다’로 요약되는 생물속생설을 내세웠다. 이탈리아 파비아 대학 교수이자 사제였고, 미생물 분열을 현미경으로 지켜본 첫 과학자였다. 철저한 실증주의자였던 스팔란차니는 병든 자기 방광을 사후 기증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오늘날 파비아 박물관에 가면 그걸 볼 수 있다.
9세 프랑스 소년이 헛간에서 새어 나오는 생살 타는 냄새와 끔찍한 비명에 식겁해 도망쳤다. 스팔란차니가 세상을 떠난 후 30여 년이 지났을 때. 헛간엔 미친 늑대에게 물린 농부가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대증요법을 받는 중이었다. 광견병은 다들 악마가 개 몸에 들어가 생긴다고 믿었다. 이 겁 많은 소년 루이 파스퇴르(1822~1895)가 과학자가 돼 광견병은 악마가 아니라 미생물이 일으키는 질병임을 알아냈다.
하지만 이 미생물(바이러스)은 너무 작아 당시 저배율 광학현미경은 파스퇴르에게 그 ‘얼굴’을 못 보여줬다. 그는 효모균 효능을 체험한 후 73세로 숨질 때까지 골수염 산욕열 폐렴 콜레라(닭) 탄저병(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찾아냈다. 백신을 만들었고, 질병미생물이 낮은 온도에 죽는 특성을 이용한 저온살균법을 세상에 내놓았다.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미생물 존재를 증명해 보였지만, 그게 어떻게 왜 생기는지는 몰랐다. 중풍으로 몸마저 불편해진 그는 너무 지쳤다.
그 숙제를 풀 실마리를, 미생물 사냥꾼 두목인 파스퇴르가 자리 잡은 프랑스에서 한참 떨어진 프로이센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는 로베르트 코흐(1843~1910)가 붙잡고 있었다. 그는 파스퇴르나 스팔란차니처럼 흥행사 기질이 전혀 없었고, 미생물학 지식·정보도 몰랐다.
시골 주민 진료에 지친 남편을 달래려고 아내가 선물한 현미경이 유일한 연구 기자재. 이 지경인데도 가축을 죽이는 탄저균을 분리·배양해 세계 최초로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힘들게 결핵균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도 이 냉혹한 사냥꾼은 한마디만 내뱉었을 뿐. “찾았다.” 불결한 위생 환경을 피한다면 콜레라를 예방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코흐는 190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 실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류 공헌
프랑스·독일에서 파스퇴르·코흐가 미생물과 싸우는 야전사령관으로 명성을 날릴 즈음 유럽에선 아기들이 디프테리아로 속절없이 숨졌다. 파스퇴르와 코흐를 돕던 ‘부관’인 에밀 루(1853~1933), 에밀 베링(1854~1917)은 디프테리아균 독소가 사망을 유발한다는 걸 알아냈다. 베링은 디프테리아 혈청까지 만들어 1901년 노벨의학상·생리학상을 거머쥐었다. 루와 베링은 숱한 기니피그 토끼 같은 동물을 실험에 희생시켜 인명을 살렸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일리야 메치니코프(1845~1916)는 좌충우돌하는 유대계 천재였다. 불가사리 유충에서 포식세포를 발견해 면역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말년엔 노화 현상을 다루면서 장수(長壽)에 도전한 장에 유익한 유산균을 발견해 유명 인사가 됐다.
미국인 중 첫 미생물 사냥꾼은 테오발드 스미스(1859~1934)다. 그는 진드기와 싸웠다. 소 감염병(텍사스열)은 진드기가 병원균을 옮겨 발생한다는 걸 밝혀냈다. 이제 농장주들은 텍사스열로 소를 잃지 않는다. 영국군 대령으로 퇴역한 데이비드 브루스(1855~1931)는 아프리카 체체파리를 애인처럼 찾아다녔다. 이 파리는 인축(人畜) 중간 숙주였다. 인간과 가축을 물어 수면병과 나가너병을 일으켰다. 원인 미생물이 트리파노좀이었다.
1902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로널드 로스(1857~1932)와 이탈리아인 바티스타 그라시(1854~1925)는 불편한 사이였지만, 말라리아를 없애는 데 같이 공을 세웠다. 로스는 회색 모기가 새에게 말라리아균을 옮긴다는 걸 알아차렸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흉은 모기. 그라시는 아노펠레스 클레비거(Anopheles claviger)라는 모기만이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발병한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유달리 시가를 좋아했던 독일인 파울 에를리히(1854~1915)는 ‘마법의 탄환’이란 표현을 즐겨 썼다. 이 탄환은 생체 내에 주입하면 병균만 죽이고 주변 조직은 손상하지 않는 화학 물질. 그는 매독 치료제인 살바론산 606을 개발한 공로로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다.
이들 13명 전사는 무엇보다 생각이 자유로웠다. 과학자이면서 인문학자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갖췄다. 그러면서 실험으로 확인한 실증으로 상상력을 발효시켜 새로운 생각과 신물질로 이 세상을 바꾸었다. 그들은 직진해 자기 길을 끝까지 가는 강력한 뚝심을 보여준다. 미생물을 무대에 세워 인류에게 이런 알찬 교훈을 알려주는 인생 연출가였다. 그들이 남긴 이 자산을 갈 길 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화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